brunch

매거진 퇴사 이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디브라운 Jun 15. 2018

다른 사람 말고 나

어설프게 남아 있는 기억이지만 예전에 돛단배로 세계 일주를 했다는 어떤 이의 인터뷰 기사를 들었다. 그 약한 배로 폭풍우를 어찌 견뎠느냐는 질문에, 그럴 때는 온몸을 바닥에 납작 붙이고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는 대답을 했다. 아주 오래전에 들은 말인데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썩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을까. 사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하면서, 남의 삶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쉬울까. 

가끔은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말하고 싶기도 하다. 
신경 꺼. 후회도 내가 해. 

_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다. "여보세요, OOO인데요. 이력서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내가 지원한 회사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회사 쪽에서 먼저 이력서를 열람하고 연락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때는 여러 곳에 이력서를 내다보니 회사의 이름이 단박에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다. 설명이 길었는데, 그래서 되 물었던 것뿐이었다. "혹시... 제가 지원한 회사인가요? 아 죄송한데 회사 이름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확인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당연히 공손히 물었다. 면접을 보게 될지 모르는 회사인데 함부로 대할 이유가 있을까. 그런데 전화를 걸어온 상대의 말투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면접 시간은 13일, 2시 30분으로 통보해주셨다. 잠깐만 13일? 수요일? 지방선거일? 순간 당황해서 말이 바로 튀어나왔다. "13일이요? 수요일 선거날이요?" 수화기 건너편에서 '하'하고 큰소리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네. 수요일, 저희 그날 안 쉬거든요." 

회사 사정에 따라 빨간 날 출근을 할 수도 있다. 나도 연차 없는 회사를 몇 년이나 불평 없이 다녔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선거일도 출근을 했었다. 빨간 날에 내가 자처해서 출근을 한 적도 있었다. 회사 형편이나 상황에 따라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그런 회사를 다녔을지언정, 내가 빨간 날에 출근을 했을지언정, 적어도 새 직원 면접을 빨간 날에 잡는 짓은 하지 않았다. 많이 급한 건가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이력서를 낸 지 두 주가 지나서 온 전화였다.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는 않는다. 

수화기 너머 상대의 말투는 이미 처음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 질문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걸까. 

빨간 날 출근하는 회사도 속상하고, 그날에 굳이 면접을 잡는 회사인 것도 참 속상하다. 면접에 가지 않기로 했다. 

_

어제는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다. 뭘 굳이, 왜 굳이 아르바이트 면접을. 
누군가가 그리 생각할 것만 같아서 주위 사람들 누구에게도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는데, 문 앞에서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내가 지금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이유가 뭐야. 글을 정말 쓰고 싶다면 회사 다니면서는 못 쓰나? 무수히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순식간에 스치고 지난다. 아, 여기까지 와 놓고 이 앞에서 또 고민이라니. 머리가 정리되질 않았는데 자꾸 이력서를 찔러 넣고 있으니 안 해도 될 고민까지 하는 거다. 머리가 정리되지 않았는데 왜 자꾸 이력서를 넣는 걸까. 불안해서 그렇다. 뭐가 불안한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이 불안하다. 아무것도 안 할까 봐 불안하다. 

_
생각이 여기까지 오니, 참...
나를 괴롭히던 상대의 말이 사실은 내가 가장 나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말이라는 걸 알겠다.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시간 있을 때 뭐라도 좀 해놓지. 너무 편하게만 살려고 하는 거 아니야?

_
며칠 전에 친구에게 물었다. 
"나 너무 막 살고 있나"
생각해보면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도, 돈을 벌 때도 고민은 많았다. 이게 맞을까, 계속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내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고, 이렇게 살아도 되나. 

_
나를 얘기하는 것이 자꾸 설명이 아니라 변명이 되어버리는 까닭은 그 무엇도 아닌, 스스로 확신이 없기 때문. 그리고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살기란 누구에게라도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만 이렇게 어려울리,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서 고생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입니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