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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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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디브라운 Jun 04. 2018

사서 고생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입니다만

[ 국가대표 양궁 선수들의 화살 길이는 모두 다르다. 선수 각자의 팔 길이가 제각각이고, 활시위를 당기는 폭이 다른 탓이다. 우리는 쉽게 평균이 존재하고, 그것에 맞게 조율을 시도하면 대체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사고(思考)의 게으름에서 벗어나야 한다. 버트런트 러셀은 말했다. "인간 만사에서는 오랫동안 당연시해왔던 문제들에도 때때로 물음표를 달아 볼 필요가 있다."

백영옥 소설가 / [백영옥의 말과 글] / 조선일보 2018. 6.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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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는 4일, 정확히는 72시간을 보냈다. 물론 노트북도 사용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아주 빠르게 적응을 했다. 휴대폰의 존재를 잊고 살다가 다시 내 손에 휴대폰이 쥐어졌을 때, 전원 버튼을 빨리 켜고 싶기도 그렇지 않기도 했다. 전원 버튼을 누르는 것은 곧, 현실로의 복귀를 의미하고, 내가 복귀해야 할 현실은 그다지 정돈되어 있지 않기 때문.

막연하지만, 내가 놓쳐서는 안되는 무언가가 벌어져 있는 것을 상상했다. 예를 들면 면접 합격 소식이라거나, 아니면 면접 합격 소식, 혹은 면접 합격 소식 같은 것들. 연락 올 가능성이 있는 곳이 딱히 없는데 그랬다. 핸드폰을 켰으나,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세계 안에는 어떤 일도 벌어져 있지 않았다. 실망할 것도 안도할 것도 없이 곧바로 일상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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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오전 조심스럽게 문자를 남겼다. 마지막으로 면접을 본 회사에 채용이 완료되었는지를 물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네 채용 완료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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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고 있다, 이 시간이. 결론만 놓고 보자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사건들의 흐름이 내 안에서는 무진 자연스럽다. 그래서 모르고 있다가, 결론을 겉으로 꺼내야 할 때가 되면 순간순간 '나 뭐하고 있는 거지?' 설명이 좀 어렵다.
나조차 정의 내리지 못하는 시간을 오드리가 '애써서 움직이고 있으면서, 혹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서 막막함을 견디는 것 밖에 안된다 싶은 시간'이라고 의미를 붙여줬다. 그런 것 같다.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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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는 것만 듣고 있다면, 얼른 취업을 하고 싶어서 무진 애를 쓰는구나 느낄 것이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정말 취업을 하고 싶다면 왜 관련 있는 업무를 익히거나, 교육을 받거나, 더 나은 환경을 위해 해야 할 것을 알아보지 않고 있는 거지. 왜 더 적극적이지 않을까. 왜 움직이지 않을까.
당연히 그럴 것 같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왜냐면 내가 괜찮아 보이지 않으니까. 분명 괴로워하고 있으니까. 면접에 가서 기분 좋지 않은 일을 당하고, 혼란스러워하고, 혹은 자괴감에 빠지고 자존감이 낮아지고, 흔들리고 울고 있으니까. 그러니 그런 괴로움을 겪지 않고 정말 일이 하고 싶다면, 움직여야지. 그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지, 왜 그렇게 움직여지지 않는가도 생각해봐야지. 그렇게 말하는 게 자연스럽다. 맞다. 내가 힘들어하니까.

그럼 나 자신에게 묻는다. 얼른 취업을 하고 싶으냐, 하고 묻는다면 아주 솔직히는 잘 모르겠다. 민망하고 부끄럽고 서글픈 기분인데 잘 모르겠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만 있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마음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럼 조급해하질 말던가. 좀 더 편안히 있어보던가. 그런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막막하고 먹먹하다. 움직이고 싶은데 자꾸 발이 멈추고, 멈추고 싶은데 자꾸 몸은 움직인다. 하고 있는 거라고는, 이력서를 넣으며 '취업 준비'라는 명분을 앞에 세워두고, 사실은 막막하고 먹먹한 것이 어떤 것인지, 무딘 손끝으로 오돌토돌한 돌기들을 더듬어 가고 있는 것 밖에 없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가 너무 느리고, 바로 앞의 내용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걸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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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갑자기 취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나는 또 와락 울어버렸다. 그럼 곁에 있던 이들은 생각할 것이다. 아, 은정이가 지금 이 시간이 너무 힘들구나. 그러면 당연히 좋은 해결책을 알려주고 싶어질 것이다. 삶의 지혜가 있고 경험도 있고, 눈에 보이는 길도 있으니, 빙둘러 돌아가고 있는 사랑하는 이에게 바르다고 생각하는 길을 알려주는 건 당연한 거다. 옆에 앉은 오드리가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울었다. 옆에서 계속 울었다. 내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주변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꽤 한참 그랬던 것 같다(요즘 자주 격해지고, 자주 주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자주 울지만 또 꽤 아무렇지 않다).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을 받자. 내가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 귀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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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힘들어하지 않으면 된다 사실. 그럼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수 있다(같이 사는 부모님은 별개 일 수 있지만). 아니면 이 불확실함을 나열하지 않고, 고백하지 않으면 된다. 명확하지 않아 확신이 없고, 내 방식대로 머뭇대고 있는 이 모습을 이해받으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끊임없이 말하고 싶어하고 그러면서 힘들어 하는 답이 없는 사람이 나다. 조금도 어른스럽거나 의연하지 못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건 어느 때고 어떤 모양으로 살 건 쉽지는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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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있다고 보일 수도 있지만 아프게 고백해보자면 나는 가만히 있었던 적은 없다. 마음이 움직이든 몸이 움직이든, 어느 쪽으로든 늘 움직이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보암직한 무언가가 조금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적은 없었다. 어제의 나는 나를 감싸 안지 못했지만, 오늘은 내가 나를 안아준다. 나는 나를 아니까,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어찌 보면 결국 우리는, 비슷비슷한 삶을 다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는 것, 그저 그것뿐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남의 어려움에 '누구나 다 그래, 다 힘들어' 하고 눙쳐버리는 일이나, 내 어려움에 '내가 제일 힘들어, 나에게만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거야' 하고 날 새우는 일이나 무심하기는 매한가지 아닐까. 남에게는 '너 힘들어서 어떡해, 왜 너에게 그런 일이 생겼니' 아픔을 이해해주고, 나에게는 '사는 게 별거냐, 다 쉽지 않지' 하고 툭툭 털어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자꾸 그 반대가 돼버린다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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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전시하고 싶은 걸까. 왜 공개적인 곳에 자꾸 기록하는 걸까.
이 시간들의 기록이야말로, 이 시간들의 눈물이야말로 어쩌면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 그러는가보다. 울고, 기록한다. 자꾸 안에 있는 걸 내보낸다. 나 그렇게 괴롭지는 않다, 그럴 이유도 없고. 당장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는 알 수 없으나 또 해야 할 것들을 나열해본다. 그럼 오늘도 살 수 있다. 옳은지 그른지는 따지지 말아보자. 견딜 수 있을 때까지는 조금만 더 그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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