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계시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어어... 아저씨가 눈을 떼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신다. 그 뒤를 아주머니도 이어서. 익스큐즈미. 토종 한국인처럼 생기셨는데 발음이 상당히 외국인의 그것. 내미는 핸드폰 화면을 보니, 종로 어디쯤에서 인사동까지 150번 버스를 타고 가도록 안내된 구글맵 페이지였다.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고 싶어 하는 사람. 더구나 외국인 여행자라면 기꺼이, 기쁘게. 우리가 서 있는 정류장은 150번을 타고 혜화로 가는 방향, 그러니 반대로 가서 타라고 말할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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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영어울렁증, 영어멍충이라서. 노노노 낫 히어를 세 번쯤 반복하고 길을 건너라는 말을 머릿속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데. 하필이면. 15분을 기다린,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들어온다. 마음이 급해져, 대강 느낌으로 손을 뻗어 길 건너를 가리켰다. 쏘리 마이 버스가 왔어요. 다행인지... 아저씨가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으셨다. 버스 문이 열리고 내가 올라타자, 부부는 마치 일행을 보내듯 두 손을 열정적으로 흔들며 땡큐를 연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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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되는 버스 안 승객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뿌듯. 자리에 앉고 버스가 신호에 걸려 신호등 앞에 섰다. 신호등에 서서 기다리던 부부가 또 버스 안의 나에게 슬며시 아는 척을 하며 손을 뻗어 앞 쪽을 쭉쭉 가리킨다. 여기로 건너라고? 이런 의미. 그렇죠 그렇죠. 나도 버스 안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올려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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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이 먼저 길을 건너셨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이 두 분을 따라간다. 길을 다 건넌 두 분이 또 멈칫거린다. 오른쪽? 왼쪽? 그러게 방향이 헷갈리실거다. 내가 보통 걸어 다니는 왼쪽 길엔 정류장이 없었으니... 그렇다면 오른쪽이다! 알려 드리고 싶어 몸이 근질대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 분이 뒤를 돌아 눈으로 나를 찾는다.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오른쪽을 가리켰다. 신호가 파란 불로 바뀌고, 버스가 출발하자 부부는 자리에 서서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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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여행 즐겁게 하세요, 서울에서 좋은 기억 많이 만드세요. 나도 기분 좋게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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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정류장을 찾았다. 근데...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정류장이 없다. 150번 정류장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버스 정류장 자체가 없다. 종로 5가에서 거의 마로니에 공원까지 가는 동안, 건너편에 딱히 정류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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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버스는 보통 길 건너편에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 거 아니었나. 아니 뭐 땜에 그렇게 확신을 했지. 대체 무슨 용기야. 어떡하지 버스 정류장 왜 없지. 멘붕에 두리번대다가 서둘러 검색해보니 반대 방향의 150번은 혜화에서 서울대병원을 거쳐 종로로 나가는 코스. 앉지도 서지도 그렇다고 뭐 어찌할 수도 없는 상태로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안절부절했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뒤, 이런 마음일 줄 알았으면 그냥 내려서 거슬러 돌아갈 걸 그랬다 싶을 만큼 마음이 불편했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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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서서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두 손을 흔들어 주던 부부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아마도 난 서울에서 만난 완전 이상한 여자로 기억될 예정이다. 친절하게도 몇 번이고 틀린 길을 안내해준 여자. 다음에 이런 일이 또 생긴다면(생기지 않길 바라지만)... 내려서 돌아가고 싶다면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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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아주머니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서 인사동 잘 찾아가셨죠? 죄송해요 제가 많이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