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서 우리는 모두 특별하고 사적인 존재였다.

by 노니

벌써 보름이나 지나버렸다, 어쩐지 신기하고 조금 벅찼던 그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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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서점의 마지막 영업일, 북나잇의 밤에 갈 수 있는 사적인 손님으로 선정되었다.

첫 방문은 2017년 초여름이었다. 포스팅도 했었다. 처음 어떻게 알게 된 건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서점이 영업을 한 2년 동안 내내 핫했으니, 누구라도 서점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밖에 없었을거다. 매일 문을 열지 않는 서점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만 오픈 데이가 있었다. 어느 날인가 토요일 오픈데이에 '주섬주섬장'이 열린다는 소식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 귀여워라. 일본 여행에서 '주섬주섬' 모아 온 물건들을 판다는 소식. 그전까지 인스타그램으로 훔쳐 보던 서점에 다녀올 명분이 생겼다. 가보자.

날이 참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4층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플라타너스 나무 사이로 들어오던 빛이 아름다웠던게 기억나는 걸 보니. 그덕이었을까, 고 작은 서점 안이 따뜻한 햇빛과 함께,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아늑했다.

그 뒤로 한수희 작가님의 북토크 때문에 한 번, 책을 사러 오픈데이에 한 두번, 막상 직접 드나든건 한손에 꼽힐 만큼이 전부인데 나는 왜 자주 '좋아하는 서점'하면 이 곳을 떠올렸을까. 아이돌 덕질을 할 때도 은근 그룹에서 제일 인기 없는 사람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내가. 인기 많은 상대에 대한 공포증이 있어서, 사적인 서점은 항상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았다. 내가 쏟은 애정이 적다고 생각해서 자신감 있게 표현은 못해봤다. 이렇게 표현에 박한 사람이다 내가. 그래도 되는 상대를 가려가며 한다, 나만 그런건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백수 생활이 길어지던 올 해 초여름, 바닥이 보이는 퇴직금을 탈탈 털어 사적인서점에서 하는 수업을 신청했다. 그즈음에는 뭔가 간절한 마음이었다. 뭐라도 되고 싶었다. 뭐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기획의 신, 사적인 서점에서 기획에 대해 배워보고 싶었다. 무얼 하고 싶은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일단 사적인 서점에서 하는 수업을 들어보자 싶어 퇴직금으로 들은 수업이었다. 고작 다섯번의 수요일, 그럼에도 그 곳에서의 시간을 나는 아직도 자주 더듬어 본다.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얘기를 하며, 좋아질 것 같은 사람들과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웃을 수 있는 시간. 게다가 적응이 안될만큼 자주 자주 진심 어린 응원을 받았다. 이제야 겨우 사적인 서점과 '아는 사이'가 되서 조금 더 자신있게, '좋아하는 서점'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는데 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 아쉽지만, 아쉬울게 아닌가 싶고. 조금 서운하지만, 서운할게 아닌가 싶은 마음을 가지고 마지막 날을 축하하겠다고 손을 번쩍 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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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모인 열 댓명의 사람들 한 명 한 명과의 인연을, 지혜님은 상세히 소개할 수 있었다. 부르고 싶은 사람들을 부른 밤이라고 했다. 그 속에 속할 수 있어서 조금 기뻤다. 너무 좋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자제했지만 나는 사실 기뻤다. 퇴근후 너무 서둘지 않기 위해 그 날 8시에 출근 했다. 점심을 거르고 회사에서 조금 멀리 있는 샵까지 찾아가서 올리브 나무 화분을 샀다. 칼퇴근을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서점을 향했다. 행사 전에 들러 여유있게 책도 고르고 싶어서 일찌감치 먼저 서점에 들렀다. 깜짝. 사람이 많았다. 뭐 당연하지,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 날이니. 분주하게 책을 고르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나도 책을 골랐다. 근처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카드를 썼다. 그렇게 설렜구나 내가.

뭔가 긴장되어 보이는 모습으로 지혜님이 사람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소개를 받은 사람들은 일어나 다시 스스로 서점과 자신의 인연을 소개했다. 다들 하나같이 말하기 시작. 사적인 서점이 나에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패턴은 비슷했다. 나는 서점에 몇 번 안 온 것 같은데, 지혜님이 나를 누군가에게 단골로 소개하더라. 나는 그냥 서점에 책을 사러 몇 번 온건데, 어느새 내가 특별한 손님이 되어 있더라. 그러다보니 나에게도 특별하고, 이제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적인 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듣자, 내 일부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고. 참으로, 참으로 용기있는 고백들이었다. 듣고 있는데 뭔가 벅차오를만큼. 서점은 그냥 서점일 뿐인데.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이 곳에 특별함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격하는 지혜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서점을 정말로 '나만의 사적인 서점'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한 건 우리였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특별한 의미를 만들어 준 건(헥헥) 지혜님이었다. 그랬다 정말 그랬다.

내 순서가 되었다. 딱 한 번 수업을 들은게 전부다. 그 전에 2-3번 서점을 찾은게 전부였다. 그런 나를 소개하기를, 참 잘 통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수업시간에 내게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소개처럼 모두에게 해줬다. 지나치게 잘 긴장하는 내가, 그날도 역시 잔뜩 긴장한 채로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능숙하게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설피 이야기를 이어가는 나를 보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수업 시간에도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아, 그랬었나, 내가. 마음이 누그러진다. 또 나를 소개한다. 나는 스토리텔링을 정말 잘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사람들이 모두 집중하게 만든다고. 그런가, 정말 그런가요.

그냥, 너무 매끄러운 말이 흘러나오면 사람들은 되레 흘려 듣게 마련인지 모르겠다. 노력하지 않아도 들어와 박히는 말에는, 노력하지 않을테니까. 앞뒤가 이어지지 않는 어눌한 이야기는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집중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웃기는 건 은근히 자신있어 하지만, 내가 스토리텔링을 잘해서 사람들을 집중하게 하는지는 몰랐었다.

암튼. 그렇게 특별한 서로의 소개가 끝나고. 그녀가 부여해준 특별함 속에서, 우리 모두는 특별하고 사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누구에게서랄 것도 없이 각자에게서 흘러 넘친 애정이 한데 모여 마구 버무려진 시간을 우리 모두가 풍성하게 누렸다.

예상했던 시간을 한참 넘기고서야 마지막 날의 모든 순서가 끝이 났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생각했다. 사적인 서점의 성공 요인(?)은 특별함을 표현할 줄 알고, '너는 좀 특별해'라는 고백을 아무렇지않게 받아줄줄 아는데 있다고. 아. 정말 그렇다.

누군가에게 '너 나한테 특별해'라고 사심 없이 표현해주고, 누군가의 '너는 참 특별해' 라는 표현을 뭘 또 그렇게까지 라며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라며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 않고 받아줄 것 같은 존재에 누가 마음을 열지 않을까. 그 열린 표현들이 열린 마음들이, 그 날 밤 우리를 사이의 거리를 확 좁혀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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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함의 표현이라는 건, 정말이지 뜻밖의 행복을 주는 일이구나.

많이 많이, 행복하게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근래에 보기 드믄, 새벽 귀가였으나 좀처럼 쉽게 잠들고 싶지 않은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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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바빠, 그 특별했던 마음을 이제야 기록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