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주, 살아가는 이야기

by 노니

8일 토요일 날씨 : 맑음

한 달 만의 목장 모임이 있었다. 소수의 인원 중에도, 하나의 주제에 대해 이쪽 끝과 저쪽 끝의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너무 당연한 거다. 절대 좁혀질 수 없는 의견을 가진 우리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누구도 마음 상하지 않고. 달라진 건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풍성해졌다. 양쪽이 모두 서로를 존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르다는 것은 그저 다른 것뿐인데, 두려워져 그만 틀리다 해버리고 싶어 진다. 약해서 그렇고, 몰라서 그렇고. 잘 모르겠지만, 잘 모르겠다고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제일 쉬운 방법이다. 정말 잘 몰라서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지만. 두려움을 몰아내는 건 역시 사랑이다. 인정하는 것, 상대도 나와 같다고.

상대도 나와 같이 존재 자체로 귀하다면, 다르다는 건 그저 다르게 귀한 존재라는 것.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요일 4:18상)

역시, 이미 2000년 전에 하신 말씀이다.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말이 쉬워진다. 입만 살아 나불거리는 건 싫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나도 듣는다. 그러니 또 한번 더 말하고, 한번 더 듣는 편이 낫겠다. 불편한 것을 말하고, 무거워도 드러내고, 몰라도 생각하자. 귀찮아도 사람이면 사람답게. 그리고 믿는 사람답게(이 말도 용기가 필요한 말이 되어버렸다).


# 사실은 딱히, 바꿔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맘 편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소외당하는 것이 나라면, 거절당하는 것이 나 자신이라면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한 것 만으로 풍성해졌다고 만족할 순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별 수 없다. 모르는 것에 대해, 내 문제가 아닌 것에 대해 이 정도라도 말할 수밖에 없다.



9일 일요일 날씨 : 오늘도 맑음

약속한 기한을 한참이나 넘기고 어제저녁 강릉 웹진에 글을 올렸다. 회사를 다니니 좀처럼 뭔가가 써지지 않는다. 속상해. 좀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는 생각과, 스스로를 압박하지 말자는 생각이 때때로 충돌하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 압도적으로 스스로를 압박하지 말자는 생각이 승리한다. 늴리리야.


어제 올린 글이 카카오 채널에 올라간 건지, 조회수가 슉슉 올라간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으나, 가끔 이런 날이 있다. 조회수는 쭉쭉 올라가는데, 공감 하나 댓글 하나가 달리지 않는다. 제목으로 이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막상 글이 제대로 읽히지 않았던 걸까 짐작해본다. 공감을 사지 못했다. 슬퍼.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막상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이게 뭔 소리냐.


아주 오랜만에 동네 카페에 갔다. 이게 얼마만이야,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동네 주민들이 여기 다 모였나 보다. 너무 시끄러워서 한 시간 만에 나왔다. 그리고 날이 너무 좋아, 동네를 아주 오래 걸었다.



10일 월요일 날씨 : 내내 맑고 또 맑음

커피 값을 줄여 보기로 결심했다.



11일 화요일 날씨 : 오늘도 맑음

오늘도 모닝커피를 패스했다. 꽤 참을만했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커피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겼다. 그래서 내 돈 내지 않고 커피를 마셨다. 크. 하늘(?)이 도왔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회사 근처로 오셨다. 감사하게도. 보문동에서 회사를 다닐 때도 보문동 근처로 오셨었고 성수동으로 회사를 옮기니 성수동으로 놀러 와 주셨다. 오겠다고 말한 사람들은 많지만, 진짜 오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약속을 지켜주셨다. 사모님의 7시에 출발한다는 카톡을 대강 훑는 바람에 7시에 도착한다는 걸로 읽었다. 어른들 기다리시면 안 되지 싶어 10분쯤 미리 가 있었는데 총 1시간 10분을 미리 나온 셈. 똥 멍청이. 어디 들어가 있을까 하다가 날이 좋아 걷기로 했다. 성수동 구석구석 골목골목을 걸었다. 걷고, 또 걷고. 그런데도 시간이 잘 안 갔다.


7시 50분쯤 성수역에서 목사님 내외를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편안하게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게 너무 좋다. 감사할 일이다. 더구나 그게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이라니, 이건 복이다.



12일 수요일 날씨 : 맑고도 맑음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대표님과 회의를 하다가 그렇게 말해버렸다. 저도 노니랑만 소통이 잘 안돼요. 대표님도 그렇게 말한다. 그렇구나, 우린 정말 말하는 방식이 안 맞는구나. 알아도 별 수 있는 건 없다. 누군가 참고 맞추는 수밖에. 어느 쪽이든.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는 게 이게 뭐 울 일인가? 고구마 오백 개 먹은 것 같은 기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게 울 일이냐는 말이다. 근데 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목소리가 흔들거렸다. 아 왜 울어 너무 싫어ㅠ 누구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내가 할 말이다. 핑계를 대고 싶은 게 아닌데. 그건 나만의 생각인 걸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책임을 회피하거나 누군가를 핑계 댄다고 느껴지는 걸까. 모르겠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대화가 대강 마무리되었다. 점심을 먹을 수가 없어 그냥 바깥으로 나갔다. 나가서 걸었다. 한 없이 휙휙 여기저기를 걸었다. 그리고 들어와 다시 일을 했다.


너무 배가 고프기도 하고, 오늘의 감정을 털어버리고 싶어서 뒷자리에 앉는 동료에게 밥을 먹고 가자고 졸랐다. 나보다 반년 앞서 입사한 동료. 처음 회사 와서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그거 말고 좋은 것도 참 많았다고. 어려운 점 보지 말고, 좋은 거 보고 다니는 거죠. 동료가 어른스럽게 말한다. 이 분도 나보다 열 살이 어리시다. 딱 열 살이. 지혜로운 말이다. 그러게, 어려운 게 왜 없겠어. 더구나 여긴 회사잖아. 시선을 돌리는 것이 내게 필요한 지혜일지 모른다. 적어도 지금은.


좋은 걸 봐야 하는데. 좋은 게...



13일 목요일 날씨 맑음

어제 대표님과 그렇게 회의를 마무리하고 나서, 오늘 아침부터 회의였다. 대표님이 회의실에 정신없이 들어와 앉으면서 한숨을 푹 내쉬는데, 마음이 짠했다. 요새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다는 걸 안다. 잘 안다. 요즘 많이 바쁘시죠, 먼저 말을 걸었다.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 외부에서 사람들이 왔는데 나는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선 그게 맞는 거였는데, 뭔가 불편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시간이 힘들었는가 보다. 그랬나 보다.


일찌감치 퇴근을 하고 안전가옥에 와서 책을 실컷 읽었다. 회사 근처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건 정말이지 행복한 일이다.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감성 에세이 같은 제목의 책은, 딱 하나 제목이 미스다. 지금도 좋지만, 더 좋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표지와 제목 덕에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감성 에세이 아니고요. 한겨레 신문에 연재했던 인터뷰를 모아 책으로 낸, 인터뷰집이다. 사람이 하나도 없는 벙커에서 빈백에 거의 드러눕다시피, 몸을 누이고 엄청 울면서 책을 읽었다. 엉엉.


그리고 질질 울어 싸며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나는 서른여섯 해동안 내 삶은 나를 증명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겉으로도 울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다르게 살고 싶은 열망에 흐느꼈다. 느끼고 깨닫고 알게 된 것대로, '살아내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 하는가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뭐라도 좋으니 단 하나라도 읽기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건 좋은 책이다. 암만. 증명받으려고 애쓰지 말자. 그것보다 중요한 게 너무 많다.


그리고 얼마 전 작년에 써 놓은 기록을 보게 되었다, 8월 29일의 일기다.

증명받으려 애쓰지 말자, 일상의 A컷 만을 만들려 애쓰지 말자. 그럼에도 자책하지 말고 생긴 대로 살자.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생긴 것을. 나는 그냥 씩씩하게 살 거다.


참나 일 년 전에도 알았다는 거 아냐. 내가 그동안 기를 쓰고 증명받으려 하며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왜 그렇게 살까 자책까지 했다는 거 아냐. 결국 생긴 대로 살자, 오늘과 똑같은 결론을 냈다는 거잖아. 아효. 그런데도 일년만에 오열을 하며 깨닫는다. 망각의 동물이여. 일 년을 또 돌았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은 대로 살아낸다면 인생의 피로가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 괜찮다 괜찮아. 그리고 일 년 뒤를 지켜보겠어.


# 여러모로 일기를 적는다는 건 참 좋은 일이네. 일 년 전 나의 생각을 이렇게 생생히 알 수 있고.



14일 금요일 갑자기 비

일찍 퇴근을 하고 홍대로 향했다. 강연이 있는 날.

한 시간쯤 시간이 비어 예스 책방에 들렀다. 무가지 채널 예스를 읽기 위해 매달 한 번 이상은 예스 책방에 들른다. 윤종신 님이 표지에 나온 9월호를 챙겼다. 무가지지만 필진이 좋아 매우 읽을만하다. 프랑소와엄님, 팬입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반짝이는 순간>은 엄지혜 편집자님의 인스타를 보고 질른 책이었구나.


언젠가의 금요일, 출근길에 보게 된 인스타그램에서 이 책의 리뷰를 읽고, 당장 읽어야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교보문고에서 당일 도착을 클릭해서 책을 시키고 하루 종일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 평소 당일 도착이라는 시스템은 좀, 숨 막힌다고 생각했다. 인간적이지 않아. 그렇게 급하면 서점에 가서 사 읽으면 될 것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날은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퇴근할 때까지 책은 도착하지 않았다. 평소 생각이 그랬으면 좀, 그러려니 했으면 좋았을 것을 혹시나 곧 오시려나 하는 마음에 택배사에 전화를 했다. 확인해보고 연락을 준다더니 연락이 없다. 마음이 슬슬 부글거리기 시작,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다시 전화를 걸었다. 책이 10시에 도착한단다. 하. 기재해놓은 주소가 회사라 그때 못 받을 것 같으니 월요일에 배달해주십사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정신이 돌아온다. 10시? 밤 10시?

기사님은 당일 도착을 위해 10시에도 택배를 돌려야 한다. 역시, 숨 막힌다. 다시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당일 주문은 하지 않을 거다. 교보 문고에서 책도 안 살 거다. 결심했던 게... 몇 주 전. 그렇게 급박한 마음으로 구입해놓고, 책을 어제가 되어서야 겨우 다 읽었다.


<당신이 반짝이는 순간>에 인터뷰이로 등장한 손아람 작가님의 <소수의견>과 전부터 읽고 싶었던 <세 여자 1>을 샀다. 천천히 강연 장소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엄청 퍼부었다. 비 맞으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뛰지 않고 걸었다.


강연은 상상했던 것만큼, 그것보다도 더, 행복했다. 포스트잇 플래그가 잔뜩 붙은 책을 들고 사인을 받으러 갔더니 작가님이 책을 촤르륵 넘겨보시며 놀라신다. 뭘 이렇게까지 밑줄을 그으면서 읽었냐고. 정말 좋았고, 오늘은 더 좋았어요. 이 간단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버버 했다. 좋았어요. 어째 점점 말솜씨가 준다.


작가님이 싸인 옆에 적어주셨다.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5일 토요일 날씨 흐림

아빠가 눈이 안 좋아 진료를 받았는데, 생각도 못했던 진단을 받고 큰 병원에 재진료를 받으러 가셨다. 아빠랑 엄마가 진료 끝나고 나올 시간만 기다렸다가 전화를 했다. 병명은 그대로지만,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진행을 늦출 수 있도록 잘 관리하자는 말을 하셨다고. 목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아빠랑 엄마가 괜찮으면 됐다. 나간 김에 영화 보시라고, 진료 뒤에 영화를 예매해드린 게 신의 한 수. 좋은 영화를 보고 들어온 엄마 아빠의 기분이 좋았다. 감사히도.


일상이 깨진다는 건 참 두려운 일이다. 두려워하며 지키고픈 일상은 별거 없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읽고 싶을 때 책을 읽고. 보고 싶을 때 티브이를 보고, 마시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시는 것. 어떻게든, 어떤 일상이건 살면 또 살아가겠지만 막연히 두려웠다. 갑자기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긴 경험을 해본 엄마, 아빠와 나는 말은 안 했지만 서로 많이 두려워했다. 근데 뭐. 엄마랑 아빠가 괜찮으면 됐다.


오후에 따릉이를 빌려 자전거를 탔다. 너무 재밌었는데, 엉덩이가 너무 아프다. 살이 쪄서 그렇지 뭐. 비가 올 것 같이 흐린 하늘인데 사방 시야가 선명해 달리는 기분이 끝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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