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수업 듣는 박은정입니다.
과제를 위해 그림 속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꽤 금방 한 그림 속 여성에게 시선이 멈췄습니다.
<Flaming June>, 프레데릭 레이튼
왜 그렇게 느꼈는지 이유를 설명해야 할까요? 그럴 필요 없겠죠?
너무 아름답네요. 아름다운 서양 여성.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일반적인 이미지에 잘 부합하는 여성입니다. 피부가 하얗고 볼이 발간, 금발의 긴 머리, 피부색과 찰떡같이 어울리는 오렌지 시폰 원피스까지. 살짝살짝 비치는 속살은 매끈하고 부드러워 보입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습니다. 여자의 모든 것이 조화로워, 아마 이 여성은 부족한 것이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결핍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 없을 것 같은. 눈을 감고 있지만 뭔가 느껴집니다. 콤플렉스가 없으니 타인의 시선에서도 자유로워 보입니다. 어떻게 봐도 참 아름답네요.
이번에는 추한 여성을 찾을 차례입니다.
계속해서 여러 그림을 보면 볼수록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림 속에 있는 어느 여자도 딱히 추하다고 생각되는 여자는 없었습니다.
저는 살이 찐 체형에 대해 다소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소 저의 나신을 주의 깊게 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욕실에서 씻기 위해 옷을 벗었을 때조차도 제 몸을 잘 보지 않는 편인 것 같습니다. 익숙한 저의 집 욕실이 아닌, 여행을 가서 새로운 숙소나 친구 집에 묵게 되었을 때 익숙지 않은 동선 때문에 낯선 거울에서 의도치 않게 제 몸을 마주하게 될 때면 그저 외면하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벗은 몸뿐 아닙니다. 옷을 입고 있을 때도 전신 거울에 몸을 비춰보는 일은, 외출하기 직전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보기 싫기 때문입니다.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아름답지 않다 정도가 아니라, 싫다, 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여성의 그림을 고르는 건 너무나 쉬웠습니다. 그럼 이제 그녀와 반대되는, 아름답지 않은 여성을 고르면 될 텐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그림 속에 그려진 여성들은 모두가 '그 나름'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정말 어떻게든 골라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추하다고 느껴지는 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에겐 그렇게 박했던 시선이 타인을, 그림 속 대상을 바라볼 때는 어쩜 그리 관대해지던지요. 살이 겹쳐질 만큼 뚱뚱하건, 갈비뼈가 드러날 만큼 빼빼 말랐건, 노골적으로 홀딱 벗고 있건, 남루한 옷을 걸치고 있건, 검은 피부건, 아니면 제대로 색도 칠해지지 않은 구석의 흐릿한 여자일지라도...
어느 한 그림도 고를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녀의 어떠함 때문에' 아름답지 않다'라고 느껴지진 않았기에.
계속해서 그림을 휘휘 넘겨보다가 또다시 한 여자에게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The blue room>, 수잔 발라동
그림 속 세상 편한 자세로 누워있는 여인. 어머나, 방금 노트북을 켜기 전까지의 제 포즈였습니다. 거실 소파에, 저는 저 자세로 자주 누워 있습니다. 바깥에서는 절대 안 입는 나시지만, 집에서는 종종 입습니다. 게다가 어쩜... 세로 줄무늬 파자마 바지는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입고 있답니다. 어떻게 봐도 제 모습 같습니다. 둥근 어깨선, 퉁퉁한 손과 발, 나시 사이로 삐져나온 겨드랑이 살, 풍만한 가슴과 배, 굵은 허벅지, 무너진 얼굴선...
아무것도 신경 쓰고 않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는 저 여인. 제가 싫어하는 제 몸을 하고 있는 그림 속 여인. 어떻게 뜯어봐도, 전혀 추해 보이지 않습니다. 아! 아름답다 경탄하게 되진 않지만, 뭐 나쁘지 않은데요? 그녀의 표정을 좀 보세요. 그녀 그, 자체로 누구에게도 평가를 바라지 않는 표정입니다. 아무리 봐도 좋네요.
결국 추한 여자의 그림은 찾지 못했습니다. 노트북을 덮으려다가 다시 한번 그림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중 가장 편하지 않은 그림을 골라봅니다. 아직 해보지 못한 경험에 대한 두려움일까요?
<나의 탄생>, 프리다 칼로
여성이라면 누구나, 아니 일반화할 수 없지만 저에게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게다가 흔히 말하는 산부인과 포즈, 다리를 벌리는 저 포즈 자체도 저는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검색하다 보니 마돈나가 프리다 칼로의 <나의 탄생>을 거실에 걸고 "이 그림을 싫어하는 사람은 결코 내 친구가 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상상해도, 마돈나와 친구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적어도. 마돈나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가장 쉬워 보이는 진입장벽조차도 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내가 불편한 건 불편한 거지의 마음, 두 마음 모두가 제 속에 존재합니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것은 불편하다 느끼고 마는 촌스러운, 아니 세련되지 못한? 아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아직도 불편해하는 저를 봅니다. 프리다 칼로가 어떻게 이런 그림들을 그렸는지는 대강 찾아보았습니다.
굳이 고르자면 제가 과제를 위해 찾아봤던 여성 들 중, 제 마음속에 가장 편하지 않은 여성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녀를 더욱 이해하게 된다면, 불편하다 느끼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제 감정에 접근해 나가는 것이 무척 즐겁습니다. 또한 어렵습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에 도취되는 것으로 끝내기에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 고민하고 더 소화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어렵다 느끼게 되는 거겠지요. 맞아요, 조금 버겁습니다.
지나가겠지요? 네 아마도 언제나처럼 소화할 수 있는 것만 소화하고 나머지는 적당히 어딘가에 뱉어 내게 될 것 같습니다. 부디 꼭꼭 씹어 소화 시킬 것들이 많아지길.
그럼, 남은 주말 편안히 쉬세요.
저희는 수업시간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