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아름답지 않은지를 우리는 배운다는 의식 없이 배운다. (...) '지금 내가 누구의 시선으로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음을 판단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됐다. 책에 나온 예술사적 정론보다 내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는지에 더 집중한다. 당연한 믿음들로부터 한발 물러나 긍정과 부정의 증거를 곰곰 따진다. 오래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관점을 갖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함을 배운다. 맑은 눈으로 나를 본다. 내 생각의 주인이 된다.
<2018. 01.16 조선일보 '일사일언' >
어제 집에 들어가는 길에 장기하와 얼굴들의 신보를 들었다. 가사가 정말 사이다. 앞으로 당분간은 니생각 정신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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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주 수업을 듣고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감정을 따라가는 수업인데, 몰랐던 사실이 아닌데도 내 묵은 감정을 발견하고 나면 편치 않다. 차라리 몰랐던 걸 알게 되는 거면 알게 됐다는 기쁨에 취해 그걸로 족하오니, 하고 넘어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알고 있고, 또 알고 있고, 또또 알고 있던 감정을 불쑥 또 발견하면 그건 하... 막막한 거다. 그래서 그다음은 뭐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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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바로 이 문제가 그렇다.
나는 지나치게 타인의 의식하면서 살아왔다. 그 상태로 평생을 살아왔더니, 이제는 내가 타인을 의식하는지 의식하지 못할 만큼 의식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면서도 나는 꽤 자유로운 사람이기도 하다. 분명히 타인을 의식하고 있고, 그러고 싶지 않다고 인식한지 굉장히 오래되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꽤 자유로운 편이기도 하다. 이 모순되는 나란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는데, 이해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할 테니까. 누구라서 타인에게서 온전히 자유로울 것이며, 누구라서 타인에게 온전히 사로잡혀 있겠는가. 뭐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수업을 들으며 내내 생각했다. 나는 누구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몇 달 동안 성취감 없는 일들에 대해, 형편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난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회사 시스템을 욕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뭔가 결과를 만들어 내면 금방 우쭐해졌다. 거봐, 나 그렇게 무능한 사람 아니야. 날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하지 않는데, 나는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겁내고 있었다. 사실은 나 아주 무능한 사람이면 어쩌지...
타인의 시선으로, 혹은 평가자의 시선으로 나를 봤다. 기분이 자주 더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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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누구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거야.
끄적끄적 내 감정을 파헤쳐 가며 질문지에 나온 질문을 따라갔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은 어떤가요?
나는 대체 왜 그런 거지? 기억나지도 않는 사람들, 기억해 낼 수도 없는 사건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황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면... 나는 왜 기억할 수도 없는 모든 것에 매여 있는 거지. 스스로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 기준엔 부합해 본 적이 없으므로 자격지심을 느끼며 살았다.
내 감정 같은 글씨체로 지금의 감정을 적어 내려갔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 준다면?
한참을 생각했지만 적확한 감정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냥 천천히 네 글자를 적어보았다.
가슴 아파
내 뒤를 지나가던 선생님이 내 종이를 읽으시다가, '아이고' 하시면서 어깨를 안아주셨다.
몰랐던 사실도 아닌걸, 알고 있었던 감정인데. 순간 또 자의식이 발동한 나머지 선생님께 저 괜찮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선생님이 지나가신 후, 다시 낙서가 시작되었다.
시선에 매이지 않겠어. 나도 남을 평가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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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고, 이틀이 지났는데 여전히 찝찝한 기분이기에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다. 왜일까.
아마, 감정 끝의 내 다짐조차 이미 알고 있던 다짐이기에.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혹은 달라질 수 없다고 믿고 있고 있기에. 방법을 알지 못해 계속 찝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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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이 성실함이 크시도다.
아버지의 눈, 무슨 안경을 써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안경을 바꿔끼기로 했다.
나, 방법을 모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