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찾는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 창문을 두드린다.
이럴 수가, 퇴사한 회사의 사장님 부부였다.
예상치도 못했던 얼굴에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먼저, 3초쯤 놀란 얼굴로 있다가 뛰어나갔다. 어떻게 여기서 이렇게 보냐고,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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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다. 함께 달리는 동안, 나 또한 잘 달리는 경주마라고 생각했다. '막상 달려보니 누구보다 신나게 달릴 줄 아는 경주마였잖아!' 달릴 수 있는 것에 자랑스러워했다. 한참 뛰다가 어느 순간 뭐에 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팍 고꾸라졌다. 엎어진 채로 달려온 길을 되짚어 보니, 앞만 보고 뛰는 동안 흘려버린 것들이 너무 많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의 불안한 마음에 대해서도 '바쁘니까'로 후드려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니다 생각했다. 그 모든 시간이 누군가의 잘못이 아닐 텐데, 나는 순간순간 미워할 대상이 필요해서 언젠가부터 사장님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이 나를 망가트린 것만 같아 시도 때도 없이 원망이 올라왔다. 감사히도, 내가 선을 넘어버리기 전 적당한 시기에 회사를 마무리하고 달리기를 멈췄다. 끝까지 최선을 다했고, 웃으며 헤어졌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나고, 그들을 처음으로 마주한 것이다. 의외의 만남에 반가워하며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 어쩐지 조심스러운 태도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회사 이야기를 먼저 듣고, 그다음 지금의 내 생활과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확신 없이 이야기했다. 내 얼굴이 불안해 보였던 탓일까? ‘확신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믿어서 가능했던 성공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해야 하는 거라고, 아마도 나를 응원하기 위한 말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옆에서 지켜봤으니 나도 안다,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내 귀로 듣기에도 흐릿한 목소리로,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갔다. “성공 좋지요. 그런데 열심히 한다고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내 말에 마침표가 찍히는 그 순간, 동시에 둘이 말했다. “그건 열심히 안 한 거지.”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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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같이 있으니 옛날 생각난다며, 반가움에 취해 예전 기억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상대가 꺼내는 추억에 맞장구를 쳤다. 맞장구는 쉬웠으나 내 생각을 얘기하는 건 어려웠다. 이제는 더 이상 나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도, 나를 평가하는 사람도 아닌데 여전히 어려웠다. 그들 앞에서 나는 여전히 숨이 막히고 긴장하고 있었다. 모처럼 꺼내 든 기억. 퇴사 몇 달 전, 언제나 상승 곡선을 그리던 매출 그래프가 반대 방향을 향하기 시작했을 때가 있었다. 매일같이 이어진 대책 회의 덕에, 다행히 금방 위기를 극복했다. 위기를 극복한 것으로 모자라 경쟁사들을 제치고 좋은 성적을 거뒀었다. 퇴사 전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처음 해보는 경험에 우리 진짜 많이 배우지 않았냐며, 내가 신이 난 목소리로 말하자, 사장님이 바로 덧붙인다. “실장님은 즐거웠을 수 있겠죠. 저는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세요.” 나는 성장에 즐거워했지만 사장님은 늘 성공을 말했다. 당연한 것이다. 매출이 어떻건 나는 단지 월급 받으면 그만인 직원이었으니까.
몇 개월이나 지났다고 잊고 있었을까.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 하고,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건 어딘가는 열심히 하지 않은 것. 성공은 과정이 중요하지 않고, 오직 결과로만 말하는 것. 그러니 언제나 성공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열심히 달려야 하는 것. 사장님이 자주자주 했던 말이었다. 바라보는 곳이 달라 삐걱대기 시작할 때부터, 내가 상대를 힘들어했던 만큼 상대도 내가 마뜩잖았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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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최선을 다해 대화를 마무리하고, 웃으며 헤어졌다. '열심히 하라고, 곧 나의 좋은 때가 올 거라고' 응원을 받으며 헤어졌다. 가슴이 조금 답답해서 버스를 타야 할 몇 정거장을 그냥 걸었다. 어디 성공을 말하는 그들이 문제일까. 언제까지 다른 사람이 말하는 성공, 다른 사람이 말하는 기준에 이리저리 흔들릴 거냐고. 나는 나를 다그치며 걸었다. 정말 내가, 그놈의 '열심'을 내지 않아서 이렇게 머뭇대는 걸까. 정말 내가 간절하지 않은 게 문제인 걸까. 그럼 난 성공이라는 걸 원하긴 하는 걸까. 스스로도 조금은 지겨워진 질문들을 던지며 걸었다. 이 지겨운 질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하며 걸었다. 뜻 없이 던진 돌팔매 열 번에 세 번쯤 만 아파할 수 있는 내가 있을까. 돌이 더 이상 돌이 되지 않는 내가 있을까. 쉽게 마음 답답해지지 않는 내가 있을까. 쓸데없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그냥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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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이런 생각들에 마음을 끓이느라 2월이 얼마나 길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주문처럼 되뇌었다. 3월이 오면 달라질 거야. 막연히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지금보다도 더 자주 절망에 빠질 것 같아서. 나는 그냥, 회사를 쉬고 있는 것뿐인데 돈 버는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뿐인데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3월이 되면 회복이 시작될 거라고. 꽝꽝 얼었던 마음이 해동되기 시작할 거라고, 막연히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버텨내기 위한 장치가 없으면 지속되기 힘들었던 2월이 끝이 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3월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