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불합격하셨습니다

by 노니


곧, 내 이름과 함께 3명의 이름이 더 불리고 우리 넷은 면접실로 향했다. 나는 앞에서 두 번째로 들어가서,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의자에 앉았다. 나보다 앞서 들어간 이는 나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는 여자분이셨고 내 뒤를 따라 들어오는 이들은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남자분들이었다. 전혀 공통점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나란히 앉은 우리 앞에는, 깔끔하게 슈트를 차려입은 남자 면접관이 앉아 있었다.


예전 회사에서 내가 했던 업무 중 꽤 큰 영역을 차지했던 것이 구인이었다. 회사의 성장이 빠른 편이었기 때문에 늘 인력이 부족했다. 거기다가 야근이 많은 쇼핑몰은 나뿐 아니라, 누구라도 그리 오래 다니고 싶은 회사는 아니었던 건지 툭하면 사람들이 무단결근에 무단 퇴사를 했다. 구인공고를 하도 자주 올려서 각종 구인 사이트의 VIP 회원으로, 서비스 쿠폰과 혜택을 잘 받아 누렸다. 공고를 올리고, 면접자를 선별해 전화를 돌리고, 약속을 잡아 면접을 보고, 사람을 뽑았다. 이 과정을 거의 매주했다. 그렇게 뽑아 놓고 일을 좀 가르칠만하면 금방 또 그만두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쇼핑몰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직장을 얻는지도, 그리고 또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직장을 그만두는지도.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지난 회사에 있는 동안, 몇 백 명쯤 면접을 본 것 같다.



앞에 앉아있는 멀끔한 남자 면접관의 얼굴에 자꾸 과거의 내가 겹쳐졌다.

면접관의 질문은 왼쪽 면접자부터 시작되었다.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했다. 지금까지 했던 일들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했다. 보이는 것과 달리 이십 대 후반이라는 청년은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일들을 몇 가지 읊었다. 면접관이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이력서를 뒤적이며 물었다. "제대로 하셨던 일은 딱히 없는 거네요? 3개월 이상 한 일이 있으세요?", 말투는 점잖았지만 공격 같은 질문에 청년은 당황한 듯 버벅대며 대답이 아닌 변명 같은 말을 시작했다. 열심히 하고 싶었단다. 오래 하고 싶었지만 다 이유가 있었단다. 편의점은 다쳐서 그만두고, 콜센터는 집에 일이 생겨서 그만두고... 그만둔 이유를 몇 개 대기 시작하니 면접관이 말을 잘랐다. 청년의 면접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 사이 나는 갑자기 며칠 전 받았던 서류전형 합격 축하 문자가 떠올랐다. 그래도 아주 오랜만에 받은 합격 문자라고, 싱숭한 마음에 몇 번이나 그 문자를 들여다봤던 게 떠올랐다. 서류전형이라니 맙소사.


왼쪽에서 두 번째 면접자에게 질문이 시작되었다. 남자는 멋을 잔뜩 낸, 끽해야 갓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역시 자기소개와 지금까지 했던 일들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거의 바로 입대를 했다가,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았단다. 군대 가기 전에는 스포츠 브랜드 매장에서 판매 알바를 해봤다고 했다. 그리고 묻지 않은 말들이 이어졌다. "저는 잘 몰랐는데 여기 쇼핑몰이 꽤 괜찮은 데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말이야 저건. 목소리에는 왜 저렇게 허세가 잔뜩 들어간 거지. 면접관은 누가 그러더냐고, 입만 웃으면서 질문을 이어갔다. "집이 서울이 아닌데, 직장을 여기로 다닐 수 있겠어요?", "어차피 서울로 나와 살 거라서요. 괜찮아요.", 여전히 허세가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저희가 월급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서울에 나와 살며 생활이 가능해요?", "집에서 집 구해주신다고 했어요. 아빠는 대학 가라고 하는데, 저는 그냥 일하고 싶어서요." 질문도 별로고 대답도 오글거린다. 면접관은 면접자의 허세를 비웃는 듯한 질문을 이어갔지만, 그는 자신을 비웃는지도 모른 채 계속해서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실제로는 전혀 비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전혀 허세를 부린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자격지심의 필터를 끼고 있던 내 귀가 멋대로 들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면접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아니 면접 대기실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이곳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 있을 내가 아니라고, 이런 마음으로 앉아 있었으니 면접관의 웃는 얼굴은 비웃음 같았다.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을 때도 비웃음의 대상이 내가 된 것 같아서, 곧 내가 될 것만 같아서,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계속 마음이 가라앉았다.


곧 내 차례가 되었다. 시키지 않았지만 내 소개와 경력을 말했다. 길게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면접관이 대뜸 묻는다. "여기 왜 지원하셨어요?", 화끈. '도대체 내가 여기 왜 앉아 있는 거지.' 마음이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대답했다. 쇼핑몰에서 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잘해왔노라고 여기서도 잘 할 수 있다고. "여기 OOO 몰이 아닌 건 아시죠? 여긴 그 쇼핑몰 콜 아웃소싱 업체에요."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질 않았다. 아까보다 더 부끄러워졌다. 사실 잘 몰랐다. 대강 공고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지원했던 거다. 뭐가 그리 급해서 그랬을까. 그 뒤로 나에게는 쓸데없는 질문 몇 개를 더 던졌을 뿐이었다. 직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질문이었다.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면접실 밖으로 나갈 순 없었다.


마지막, 내 오른쪽에 앉아 있는 여자분께 질문이 이어졌다. 여자는 십 년 이상 콜센터 업무를 했다고 했다. 지금까지 일했던 업체들을 줄줄 댔다. 마지막으로 일했던 곳도 소셜커머스 콜센터였다. 면접관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진지한 얼굴을 하고 고쳐 앉았다. "이전 회사에서 월급 얼마 받으셨어요?" 대놓고 그런 걸 묻는다. "전의 회사는 왜 그만두셨어요?", 너무 월급을 적게 줘서 짜증 나 그만뒀다고 말했더라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그만뒀었다고 말했더라면, 철부지 같은 내가 덜 부끄러웠을까? 여자가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간호를 해야 했노라고, 지금은 괜찮아지셔서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여자에게 구체적인 직무와 급여 등에 관한 질문이 이어지고 면접이 마무리되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순간순간 나란히 앉은 우리 넷이 어떤 모습일지, 면접관의 자리에서 한눈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 곁에 앉은 이들과 비슷하게 보일까? 아니면 아주 다르게 보일까? 같은 참 건방진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더 자주 '나는 너희들과는 조금 달라.'라고 생각했다. 면접관이 우리 넷의 이력서를 가지런히 모으는 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면접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한마디만 더 할게요. 일을 구하는 게 급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내가 해야 할 일인지 생각해보고 일을 구하셨으면 좋겠네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 귀에는 명백히 나를 콕 집어 하는 말로 들렸다. 나에게 하는 말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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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실을 빠져나와 우리 넷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당연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초쯤 지났을까, 내 왼쪽에 앉았던 청년이 나에게 말을 건다. "예전 쇼핑몰이 어디였어요? 큰 데였어요?" 적당히 대꾸하고 지하철로 연결된 통로를 걸어 지하철을 탔다. 벗어나고 싶었던 면접 자리에 나를 데려간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내 조급함이었다. 나는 저런 일을 할 사람은 아니라고, 함부로 생각하는 내가 한없이 부끄러우면서도 콜센터에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거기 있는 어느 누구와도 동료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 무얼 할 수 있을까, 누구와 동료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또 집으로 돌아가면, 또 내일이 되면, 나는 이다음에는 또 무엇을 해야 할까. 자꾸 마음이 먹먹해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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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뒤, 다시 문자가 왔다.

[OOO 면접 결과 안내] 이번 면접에 아쉽게도 불합격하셨습니다. 소중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드리며, 기회가 된다면 다음 좋은 채용건에서 다시 뵐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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