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한 달 뒤, 성수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면접인 줄 알고 나간 자리였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이미 강릉 지역 매거진의 에디터가 되어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을 해주시면 된다고 했다. 아직 아무런 방향도 정해지지 않았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주시면 된다고 했다. 컨셉은 '서울 여자 강릉 산책', 최소 한 달에 한 번, 2-3주에 한 번씩 글을 올리기로 했다. 대표님이 조심스럽게 원고료에 대해 말을 꺼내셨다. 너무 적어서 죄송하다고, 이제 막 시작하는 프로젝트 들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열심히 해서 꼭 더 많이 드리겠다고 말씀하시는데 내 가슴이 쿵쿵 뛰었다. 계약을 한 원고에 대해 돈을 받는 것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처음 있는 일. '에디터'가 된 걸로 만족하려 했는데 내 글로 돈까지 받을 수 있다니, 아 용기 내길 잘했다. 얼마면 어때, 나에겐 위대한 한 걸음이었다.
성수동 만남으로부터 한 달이 지나기 전 첫번째 글을 보냈다.
1. 왜 강릉이냐고 물으신다면
글의 마무리엔 이렇게 적었다.
서울 토박이가 왜 굳이 강릉을 기록하기로 했냐고 묻는다면, 먼저 몇몇 강릉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다음 찬찬히 몇몇 강릉의 풍경과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한마디로는 적을 수 없는 그리운 마음들 덕분에, 나는 당분간 강릉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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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사이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건 나와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친구였다. 만나면 마음이 편해졌다. 말하지 않아도 그냥 통했다. 주로 한낮의 카페, 한낮의 남산 산책로, 한낮의 청계천 같은 곳에서 만나 한낮의 여유를 즐겼다. 우리 나름대로 꽤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사는 게 쉽지 않아 죽겠다고 서로 푸념했다. 그래도 또 이렇게 같은 처지에서 죽는소리 나눌 친구가 있다니 나름 근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야 할 때도 있었다. 주로 상대가 사주는 밥을 얻어먹고, 커피를 내가 샀다. 마주 앉아 내가 보내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 그렇게 한심하게만 살고 있는 건 아니야'를 증명하듯 내 시간을 설명했다.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일 수도 있는 말을 마구 흘려 들었다. 사실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봤던, 콜센터 면접 이야기에 마주 앉은 상대가 나보다 더 속상해하며 말했다. "조금 더 전략을 세워서 이력서를 내보는 게 어때?" 맞다 나는 아무런 전략도 없었다. 그저 불안함이 턱 끝까지 몰려올 때면 참지 못하고, 연락이 올 것 같은 회사에 이력서를 던져 넣고 있었다. 내 기분을 상하게 할, 어떤 의도도 담지 않고 그저 나를 걱정해서 건넨 말에 적당히 대꾸를 하려는데 입이 마치 본드를 붙인 듯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감정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입을 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을 그때만큼 온몸으로 강력하게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움찔움찔 입술이 들썩였지만 끝내 입을 열지는 못했다. 상대가 너무나 당황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그랬다. 사이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너무 자주 쓸데없이 비참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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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마음이 헤집어졌다 아물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상처야 봐서 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어찌 아냐고? 방법은 있다. 가서 닿아보면 되는 거다. 자극을 주는 거다.
가만히 있어도 쿡쿡 쑤시는 아픈 상처가 있다, 그건 상처가 깊은 거다. 건들지 말아야 한다. 물론 치료를 하면 더 좋을 테고. 뭔가 와 닿아 스칠 때 아프면, 상처가 아직 성해 있는 거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꾸욱 상처를 눌러서 그제야 아프면, 많이 나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아물지는 않은 거다. 스쳐도, 건드려도, 눌러도 아무런 느낌이 없으면 그땐 좀 괜찮은 거다. 그 부분의 상처가 아문 거다.
(혹, 이런 경우도 있겠지. 굳은살이 된 경우. 웬만한 자극은 느껴지지 않는. 이 경우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걸로, 일단은 아물었다 생각하기로 하고.)
내가 어딜 찔린 적이 있던가, 어디 긁힌 적이 있던가, 마음이 쿡쿡 쑤셔 생각해보면 나를 찌를 만한, 헤집을 만한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자주 혼자 상처가 나 있었다. 그러게, 어디 상처를 내는 게 꼭 흉기뿐이던가. 책장을 넘기다가 손끝을 베일 수도 있는 거다. 상처 입히려는 마음 따위 조금도 없이 휘두른 말에, 내가 마음대로 가닿아 상처 입을 수도 있는 거다. 이미, 스스로 엉망으로 헤집어 놓은 마음이라, 뭐든 쉽게 상처로 남았다. 까진 살에는 물만 닿아도 아프듯, 너무 쉽게 고통을 느꼈다. 가만히 있는 문지방에 혼자 가서 엄지발가락을 부딪히듯이 그냥 아무 데나 가서 쿵쿵 마음대로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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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는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듯, 상처가 아무는 순간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에겐 너무 많은 시간이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시간이 필요한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