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습도
그 날 따라 출근길 만원 버스의 갑갑한 공기가 견디기 힘들었다. 충동적으로 열린 버스의 뒷 문으로 내려버렸다, 원래 내려야 할 정류장보다 몇 정거장이나 앞서서. 평소와는 다른 길로 출근하는 바람에 회사 근처 낯선 골목에서 처음 보는 장소를 발견했다. 낡은 건물 1층, 근처 주택들과는 안 어울릴 듯 어울리는 힙한 카페였다. 퇴근길에 들러봐야지, 다짐을 하며 카페를 지나쳐 출근을 했다.
퇴근 후 들른 널찍한 카페 안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럼 그렇지, 여기가 카페 오픈하기에 괜찮은 위치는 아니지.' 어련히 알아서, 얼마나 고심해서 고른 위치일 텐데 쓸데없이 남 걱정을 하고 있는데 마침 사장님께서 라테를 들고 오신다. "여기에 카페가 들어올 줄은 몰랐어요" 사장님께 조심히 말을 건넸다. 많은 생각이 있으신 듯, 찰나의 머뭇거림. 그리고 대답하셨다.
"복합적인 이유들 때문인데 무엇보다 1966년에 지어진 이 낡은 건물이 좋아서, 내가 제대로 뭔가로 사용해보고 싶었어요. 카페 생기기 이전에 이 건물의 용도가 너무 별로였었거든요. 사랑하는 공간을 의미 있게 사용해보고 싶어서 카페로 오픈했어요."
멋진 대답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니 의미 있게 사용되길 원해서 공간을 사들였다니. 시쳇말로 힙이 터진다. "자주 와야겠어요. 의미가 있는 공간이니, 앞으로 더 좋아지겠네요. 기대돼요." 내가 다시 말을 건네자 사장님이 웃으며 덧붙이신다.
"그렇게 되면 좋겠네요. 공간을 위해서 이것저것 감수하고 무리해서 카페를 열었거든요. 지금도 계속 무리하고 있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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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무리하다'라는 말에는 부정어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내가 힘들어할 때, 어느 누구도 나더러 계속 무리하라고 하는 경우는 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힘겨워 보일 때 건네는 말은 "뭐 하는 거야, 좀 더 무리해야지"가 아니라 "괜찮아,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였다. 나 스스로에게도 건네는 말은 항상 "나는 왜 좀처럼 무리하지 않는 거지"가 아니라 "나 너무 무리했나 봐."였다. 무리하는 건, 좋지 않은 것. 자연스럽게 공식을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한없이 버거웠던 그 말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을 때는 뭔가, 신기할 만큼 경쾌했다. 그 낯선 무게감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자꾸 사장님의 마지막 말이 귀에 맴돌았다. 물론 처음 본, 그리고 언제 또 볼지 모르는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호기로움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감수한다고 할 때의 '감'은 한자로 달감자를 쓴다. 단 걸 달게 받을 때 우리는 감수한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달지 않은 것을 달게 받아들일 때 쓰게 된다. 사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보통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삼켜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삼켜야 하는 쓴 약에는 맛을 감추기 위해 캡슐을 씌우거나 단 맛을 코팅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공간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달디 단 목표가, 쉽지 않은 것을 견뎌야 하는 이 시간 위에 단맛 나는 코팅을 뿌려줬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가볍지만은 않겠지만 심각해지지 않을 수 있는.
그리고 우리는, 때때로 무리하지 말라는 위로를 주고받기보다 무리해도 좋을 의미 있는 것들을 위해 조금은 무리하고 싶어 지는 때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지금 계속 무리하고 있는 중이라고, 건네는 말의 무게에 비해 너무 가벼운 얼굴로 웃고 있었던 그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