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면접의 추억

by 노니

걸어오면서 봤던, 예쁜 테라스가 있는 카페로 쑥 들어간다. 음료를 시키고 테라스 쪽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대뜸 묻는다.

“그냥 지원했죠? 별생각 없이?”

말투는 여전히, 여전히 상당히 무례했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묻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내가 그다지 별생각 없이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있긴 했다. 바람이 나를 이끄는 대로,라는 기분인 것 같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본 면접 상대에게, 자기 회사에 지원을 한 면접자에게, 면접관이 하기에 적합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다소 머뭇거리며 대답을 시작하자 내 말에는 관심이 없는 태도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혼잣말 같은 말을 한다.

“통화할 때랑 되게 느낌이 다르네.”

헉. '저기, 저랑 몇 마디 해보셨다고 그런 말을 하세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쪽도 통화할 때랑 느낌 되게 다르거든요', 이 말도 역시 내뱉지 못했다.

계속 이런 식의 면접이 이어졌다. 면접관으로 나온 상대의 말투도, 표정도, 태도도 모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지만 '그런 건 한번 봐서는 제대로 모른다고' 애써 애써 차분히 대답을 이어갔다. 간단히, 본인 회사가 하는 일을 소개했다. 그리고 나에게 전에 근무했던 쇼핑몰에 대해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내 전 직장에 대해 쉽게, 함부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딱 사이즈 나오네." 같은 느낌으로 다 안다는 듯, 멋대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입이 점점 꾹- 다물어졌다. 그 사람 앞에서 회사에 대해 그 어떠한 이야기도 해주고 싶지 않았다.

“입사하면 거기 광고 따오면 되겠네?” 내가 대답 없이 입으로만 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더니 내 표정을 흘낏 보고 다시 묻는다. “왜요, 못하겠어요? 우리 그런 일하는 거예요. 그러라고 OO 씨 뽑는 거예요.” 하. "네네. 해야 되는 상황이면 해야죠." 내가 뻣뻣하게 대답했더니, 대뜸 묻는다. “거기 분위기 좋아요?” 뭐지, 저 무례함은. "네 좋아요." 빠르게 단답형으로 대답했더니, 픽픽 웃는다.

“근데 왜 나왔어요?”

거의 대부분의 면접에서, 이전 회사를 퇴사 이유에 대해 묻는다. 그런데 저렇게 거지같이 묻지는 않는다.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어서 내가 대꾸를 안 하고 있건만,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님 내 입을 완벽하게 막아 버린 것이 신이라도 나는 건지. 도대체 뭔지, 뭐가 웃긴지 계속 피식피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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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간의 개소리를 다 옮길 수는 없지만 좀 적어봐야겠다.

자기한테 질문할 거 없느냔다. "입사하게 되면 정확히 제가 해야 할 일이 뭔지 궁금해요. 제가 광고 대행 쪽 일은 처음이라서." 질문하라 하더니, 정말 갑자기 얼굴을 싸늘하게 굳힌다. “아까 얘기했잖아요. 이해 못 하셨어요?” 아까 앉자마자 회사가 하는 일이 설명했던 걸 말하는가 보다. 나는 회사가 하는 전반적인 일을 묻는 게 아니라, 입사하게 된다면 당장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좀 자세히 듣고 싶었던 거지만, 역시 입을 닫는 쪽을 선택했다. 어차피 입사 안 할 거니까.

갑자기 내 성격을 까기 시작했다. “성격이 어때요?”로 시작한 질문은 “사교성 없죠? 주위에 인맥 많이 없죠?”로 이어진다. 부정형의 질문이었다. 결국엔 내 성격의 단점을 말해보란다. 면접에서 본인의 단점과 극복 방안에 대해 묻는 경우도 왕왕 있다는 걸 안다. 그런데 이런 식은 아닌 거다. 숨을 들이마시고 몇 가지 단점을 얘기했더니,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을 끊는다. "그런 거 말고." 저 새끼는 나에게 도대체 뭘 원하는 걸까. 이어지는 말이 가관인다.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보란다. 사람들 참 그렇다면서 자기 약한 걸 숨기려고만 한단다. '방어기제'라는 단어를 써가며 뭐라도 되는 양 군다. 면접 와서 속 얘기라도 터놓길 원하는 건가. 물어보는 질문이 궁금해서 묻는다기보다는 그냥 ‘네 성격 별로다. 사람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우리 일은 마케팅 업무라 고객들이랑 의사소통도 잘 되어야 하고, 성격이 밝고 직접 대면했을 때 편안한 느낌이 나야 하는데, 날 더러 어떻느냔다.

사람들과 관계 맺는 거 어려워하지 않는 하는 편이고, 사회생활할 때는 더욱 외향적인 편이라고 대답했더니 예의 그 '피식피식'이 다시 나왔다. “아~ 전화로만? 전화로는 잘 하시더라고요. 근데 대면해서는...”하고 다시 피식피식 거리며 말 끝을 늘인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이 사람은 나에게 왜 이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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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내 능력을 까기 시작했다. 뭐도 못해? 뭐도 못해? 전에 직장에서 그런 건 왜 안 했어? 질문이 죄다 부정형이다. 다른 면접이었다면 "지금은 잘 못하지만, 입사하게 된다면 배워서 잘 할 자신 있습니다.", 내지는 "필요하다면 입사 전에 공부하겠습니다." 의지를 보였겠지만 지금은 그리하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었다. 제가 다녔던 회사는 사용하지 않았던 툴이라 못한다 했더니 “다른 쇼핑몰 실장 정도 되면 그런 거 다 잘하던데"에 이어 “여자라 그런가”로 이어지는 알 수 없는 의식의 흐름을 보여줬다. 정말 저렇게 말했다. 컴퓨터 활용 능력도 없고, 주로 맡았던 업무도 딱히 뭐가 뭔지 모르겠고, 헐 심지어 운전도 못해? 잔뜩 내 부족함을 열거하더니 “참 애매한 포지션이시네요, 특별히 잘하는 게 없으시네요.”라고 나의 능력을 정리했다. 중간중간 ‘적은 나이도 아니신데’와 ‘이제 나이도 있으신데’를 양념처럼 쳐가며.

새로운 일을 하게 될 건데 잘 할 수 있을 것 같냐는 도발에 적당히, '새로운 일 배우고 적응하는 것 잘한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좋아한다' 했더니 “좋아하고 그런 거 말고” 싸늘하게 표정을 굳혔다. '뭘 단단히 착각하고 있네'의 뉘앙스로 도전 이딴 거 말고, 구를 각오가 되어 있냐는 말이란다. "하하하하." 이번엔 내 쪽에서 현실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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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얘기하고 싶은 건지. 마지막으로 다녀온 여행지가 어디냐를 묻지 않나, 주말에는 뭘 하면서 쉬냐고 묻지 않나, 부모님과 같이 사는지, 왜 안정적인 교사 생활 안 하고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는지, 정신없이 왔다 갔다 물어대더니 또 기어코 성격 얘기로 돌아간다. 내 성격이 꽤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슬슬 면접을 마무리 지으려는지 연봉 얘기를 꺼낸다. 들어보니 신입이나 다름없어 신입 연봉으로 드려야 할 것 같단다. 결국 신입 연봉을 주기 위해 내 능력을 끝도 없이 깐 걸까.

아침에 처음 면접 연락이 왔을 때, '저 전혀 경력이 없는데 괜찮으시겠냐'했더니 '마케팅 경력이 어설프게 있는 것보다, 쇼핑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 도움 될 것 같다.', '이력서에서 OO 씨가 하셨던 일 보니까 쇼핑몰에 대해 통찰력이 있으실 것 같다'라고 말했던 사람이랑 동일 인물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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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헛소리도 끊겨갈 때쯤 일어나자고 하더니, 나를 다시 한번 위아래로 훑었다.

"강북 살아서 그런가?"

몸이 굳었다. 저게 무슨 말이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픽픽거리더니 마지막 개소리를 덧붙인다. "거기 뭐가 있나요? 산이 있나? 그쪽에 산이 있나요?" 내가 사는 곳과 미묘하지만 내 외모를 깠다.

폭발했다.

"하고 싶으신 얘기를 하시라"라고 말했다. 픽픽 웃으며 '너 되게 유니크하단다. 4차원이라는 소리 들어봤냔다.' 정색을 하며 대꾸했다. 들어 본 적 없다고, 실제로 들어본 적 없으니까. 또 묻는다. “아 그럼 본인은 굉장히 평범한 편이다?”, " 네, 적어도 상식적인 편이죠." 대답을 하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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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을 하고 싶은데 욕이 나오질 않았다. 먹먹해진 마음에 불같은 것이 올라온다. 언니한테 전화를 걸어서 면접 얘기를 하는데 펑펑 눈물이 났다. 말을 하기 시작하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언니 옆에서 조잘거리던 조카가 전화를 바꿔 받아, "이모 근데 나 내일 소풍 가"하는 얘기를 듣는데도 눈물이 계속 났다. "이모 언제 놀러 올 거야, 이모 사랑해."하는데 미친 듯이 계속 눈물이 났다. 계속 계속 연남동 골목을 걸으며 질질 울었다.

'어디서 개가 짖냐' 개소리는 훌훌 털어버리면 좋을 텐데 이게 안됐다. 너무 괴로운 마음인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고 털어버리고 싶었는데, 마땅히 그럴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까 들었던 말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정말 그 사람 말대로 인맥도 사교성도 없는,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친구 하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얼마 전에 취업을 한 친구에게 카톡을 남겼다.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한창 열심히 일하고 있을 시간이라 전화를 걸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마침 외부에 나와 있어서 통화할 수 있다며 '무슨 일이야!' 묻는 친구의 말에 왈칵, 간신히 멈췄던 눈물이 다시 터져 나왔다. 사람이 없는 골목을 찾아 들어가 오열을 했다. 맛깔스럽게 욕을 해주는 친구 덕에 나는 울다 웃다 했다. 힉힉거리며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할 만큼 우는데, 친구가 계속 위로를 건넸다. "야, 웃기지 마. 너 주위에 얼마나 좋은 사람이 많은 줄 알지?". 맞다. 감사한 사람이 정말 많다. "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알지" 평소라면 오글거렸을 이런 친구의 말에 나는 겨우 고맙다는 말만 계속하며 꺽꺽대며 울었다. 너무 많이 울었다. 친구가 나 대신 너무 분노해준 통에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개운해져 있었다.

골목 끝에 있는 카페에 들어와 생전 가야 돈 주고 사 먹을 일 없는 아이스 초코를 주문하고, 받아온 명함을 8조각으로 찢어서 화장실에 변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이제야 속으로 '미친놈' 하고 욕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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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나오지 그랬냐고, 아니면 앞에 있던 아메리카노라도 얼굴에 부어 버리지 그랬냐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면접을 어떻게 내가 먼저 끝내느냐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선택해서 가지 않을 수는 있을지언정, 어딘가에 입사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겐 필요한 사람이고 싶었던 것 같다. 면접을 벼 보지도 않았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합격하지 못했다. 그게, 내심 많이 힘들었는가 보다.

친구는 전화를 끊으며, 얼른 집에 들어가서 저녁 먹고 일찍 잠들어 버리라고, 자고 일어나면 오늘 들었던 말 다 잊어버리라'라고 했는데, 그날 면접에서 들었던 말들은 한동안 내게 찰싹 붙어 나를 괴롭혔다. 머릿속으로는 상대의 말이 나의 어떠함과 전혀 관계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디선가 튀어나와 나를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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