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두 마음이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내 능력 밖의 일인데 덥석 맡겠다고 해버린 건 아닐까.' 두려워하는 마음과, '못할 건 또 뭐야, 미리 걱정하지 말자.' 용기 내는 마음. 사실은 두려움이 훨씬 많은 사람인데, 그래도 때때로 용기 내보자 할 수 있는 건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새로운 일이 닥칠 때마다 잘 해왔어, 고비를 잘 넘겨 왔어, 하는 성공에의 경험. 나 자신을 믿을 수 있게끔, 용기 내야 할 상황에 용기를 내게끔 해주는 건 다른 누구도 다른 무엇도 아닌 열심히 살아왔던 과거의 나였다. (과거의 나,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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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임원 면접 일정이 잡히지 않았는데 그 사이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번 회사는 쇼핑몰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광고 대행사였다. 포털사이트 검색광고 및 SNS 광고 대행 사업 등을 전문으로 하는 아주 작은 규모의 회사라고 했다. 이력서를 내고는 있지만 쇼핑몰에서 간간이 연락이 오는 게 전부였다. 처음엔 쇼핑몰 관리직만 클릭해보다가, 점점 해당 업계의 다양한 키워드를 넣고 검색하다 보니 결국 쇼핑몰 온라인 광고 대행사까지 이력서를 내게 되었던 것.
면접 날짜와 시간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짧았지만 꽤 기분 좋은 통화였다. 다시 한번 사이트에 들어가 통화한 회사의 공고와 회사 소개를 꼼꼼하게 읽었다.
"직원에 대한 보상 및 동기부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영업자가 아닌 내부 관리자에게도 연봉 외 인센티브 적용, 회사와 구성원의 동반 성장을 목표로 합니다. (...) 또한 직원 개개인의 내적 성장이 중요하다는 기업철학을 기반으로 각종 교육비, 도서비, 문화생활비 등을 지원합니다. 작지만 내실 있는 회사와 함께하실 젊고 열정적인 분들을 모십니다."
지금은 작지만 앞으로 나아질 모습을 더 기대하게 하는 문구들로 성실히 채워놓은 회사 소개를 여러 번 읽고 좀 전의 통화를 떠올렸다. 정중하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뭔가 괜찮을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내가 보낸 이력서를 다시 한번 읽어보며 면접을 준비했다. 면접 볼 곳이 또 정해지고 나니 갑자기 언제 볼지 모를 임원 면접에 대해, 마음이 편안해졌다. '솔직히 지난번 회사는 뽑힌다고 해도 너무 힘들 것 같으면 고사하자.' 갑자기 맘속 가득 여유가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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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서교동이었다. 마침 오후에 연남동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바로 몇 분 거리다. '오늘로 면접 시간을 옮겨볼까, 아니지 아니야. 방금 면접 시간 정했는데 내가 시간을 옮기는 건 좀 예의가 아닐 거야.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지, 이 정도 융통성도 없는 회사라면 내 쪽에서 별론데.' 취준생의 위축된 마음은 가끔 이런 식으로, 안 해도 될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냥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아까 그 정도 느낌의 목소리라면 충분히 이해해 줄 거라는 근거 없는 결론을 내고. 고민이 무색하게, 상대가 괜찮다고 오라고 했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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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을 보러 가는 버스 안에서, 임원 면접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지난주 면접 본 OOO이라고 합니다. 혹시 이번 주 면접 일정 확인 가능할까요?
연락 주겠다고 약속해놓고 며칠이 지났다. 문자를 보낸 지 몇 분 만에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았다. 정말 죄송하지만 임원 면접은 취소되었단다. 엥? 아니 그걸 내가 물어보니까, 이제야 말하는 건 뭐야. 혹시 왜 취소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 있냐고 물으니, OO 씨가 맡기에는 조금 부담되는 일일 것 같단다. 뜨끔했다. 자신감 없어하는 게 티가 났나. 상대가 계속 설명을 한다. 경력이 더 많은 분을 뽑아야 할 것 같다고. 쇼핑몰 오픈하고 조금 더 자리 잡고 나면 추가 채용이 있을 텐데 그때 제일 먼저 연락드리고 싶은 분이라고. 자기가 쳐놓은 설레발이 있으니 듣기 좋으라고, 계속 변명처럼 필요도 없는 말을 해댄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내가 거절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면접이 취소된다는 시나리오는 내 머릿속에 없었는데.
전화를 끊고, 한숨 한 번 푹 쉬고, 털어버리기로 했다. 시원 섭섭했다.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지만 내 쪽에서 거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뭔가 마음이 조금 상했지만,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쉬울 것도 없어. 나는 지금 꽤 괜찮은 느낌의 회사에 면접 보러 가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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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보내준 주소를 찍고 핸드폰 속 지도를 이리저리 돌리며 낯선 골목골목을 지나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사무실 건물에 도착하면 전화를 하라셔서 전화를 걸었다. "내려갈게요." 한마디에 전화를 끊고 기다리는데, 좀 떨렸다. 잘하고 싶었다. 면접을 잘 보고 싶었다. 회사를 찾느라 걸었던 골목들은 정감이 가고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회사 근처 환경은 이만하면 지나치게 좋다 싶었다. 기대가 점점 차올랐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려온다고 한지,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났는데 감감무소식이다. 혹시 외부에 계신 건가. 아니면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나. 알 수 없는 경우의 수를 세어가며 계속 기다렸다. 15분이 지났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슬그머니, 약간 짜증이 올라왔다. 20분을 넘기기 직전, 건물에서 사람이 툭 튀어나왔다.
인사하기도 전, 상대가 나를 아래 위로 빠르게 훑었다. 그런 건 아무리 빠르게 해도 다 보이는 법, 그리고 굳이 감추려는 태도도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몇 초 늦게 인사를 했다. 상대는 인사는 고사하고 상황 설명 없이 대뜸 앞서 걷는다. 내가 바로 따라나서지 않자, 카페로 가서 면접을 보잔다. 내 표정이 조금 굳어 있었던 걸 봤는지 한없이 가벼운 말투로 묻는다. “긴장했어요? 아님 뭐, 낯가리나?”
아, 이상하다. 말투가 왜 저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