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을 번복해도 괜찮아

by 노니


되새겨야 하는 시간, 잘 다듬어서 꼭 기록으로 남겨주세요.

서경이의 DM에 정신이 든다.


기록해야지, 이 시간을. 잘 다듬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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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계약을 갱신하지 않은 동료들이 있었다. 처음엔 둘이었다가, 설득과 상황탓에 한 분이 돌아왔다. 다시 함께하기로. 100명 중 2명이면 모를까, 7명 중 2명은 난자리가 좀 컸다. 게다가 한바탕 감기가 휩쓴 사무실은 재난이 지나간 마을처럼 고요하고 침울한 분위기였다. 괜히 마음이 울렁댔다. 룸메가 옆에서 많이 고민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곳에 남아야 할지, 아니면 올라가야 할지. 올라가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너무 혼란스러움이 느껴져 나도 흔들렸다. 탓하려는게 아니고, 덕분에 나도 고민을 좀 했다. 지역에 함께 내려온 서울 청년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내가 좋아했던 직장의 분위기, 내가 좋아했던 동료들의 분위기…


언제나 내 마음 같을 수는 없겠지. 언제나 변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 내 욕심이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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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마음에 꼭드는 카페가 생겼었다. 지역에 내려온 뒤 처음 가보게 된 곳이라, 연말에 서울에 올라갈 때마다 힘껏 방문했다. 2019년 마지막 날을 가장 편안하고 기분 좋게 보내기 위해 일찌감치 집에서 나와 카페를 찾았다. 좋은건 표현해야 하므로, 여기 너무 좋다고, 마음에 쏙 든다고 열렬히 표현했는데 사장님이 덤덤히 말씀하신다. “아 근데 오늘이 마지막 영업이에요.”

왜 하필.


“카페는 늙어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공부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하려던 공부를 계속 할 생각이라고 하셨다. 내놓은지 일주일도 안되서 공간이 팔렸다며, 그만두게 되려니까 또 이렇게 딱딱 맞아 떨어진다고, 좋으면서도 아쉬운 표정으로 웃으셨다. 정말 딱 그런 표정이었다. 좋으면서도 아쉬운. 왜 아니겠어.


앞에 서서 내가 더 울상을 하고 있었더니, 사장님이 입구에 놓인 책을 가리키며 말한다. “제가 이 책을 좋아해요. 이 책을 내내 여기에 뒀었는데, 카페 하면서 알은 척 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거든요. 사실 며칠 전에 학회 사람들이랑 제주도에 워크숍을 갔었어요. 거기서 밤에 이 책을 필사하고 있는데 누가 뭘 쓰고 있냐고 물어봐서 시를 말했더니, 시인을 아는거에요. 여기서(카페)의 시간도 좋았지만,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지? 하는 기분이 한 번씩 들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얼마나 좋던지.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을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사장님께서 말한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지? 하는 기분, 너무 잘 알고 있다. 내가 연말에 내내 했던 생각이다. 연말동안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그 생각은 더해졌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더해졌다. '이렇게 소중하고 편안한 사람들과 떨어져서, 나 그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이랑 뭐하고 있지.' 이 생각에 사로잡히니 만사가 다 귀찮아졌던 것.


쉽게 돌이켜지지가 않았다. 한 번 들어온 생각은 좀 처럼 빠져나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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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바닥을 친 날, 가족 카톡 방에 와다다다 참지 못하고 퍼부었다.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을 쏟아냈다. 아빠가 듣고 계시다가 말씀하신다. “월세 두 달은 내가 내줄께.(갑자기 재계약 일정이 한 달 밀려서 2달 동안 백수로 지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내려가서 계속 일만 했으니 여유가지고 주변도 돌아보면서 쉬어도 좋겠네. 쓰려던 글도 좀 쓰고. 이사도 여유있게 하고.”

난 어쩔수 없는 파파걸 마마걸인가봐. 갑자기 왕- 눈물이 났다.


나 그냥 동료가 나를 소중히 대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 짜증났어. 회사 동료들이 그만둬서 불안했어. 서울 청년들 다들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데 나만 인생을 너무 쉽게 쉽게 결정해서 사는건가 싶어서 걱정됐어. 다들 다시 서울로 올라가니까 나만 잘못된 선택을 하는게 아닐까 두려웠어. 그러니까 사소한 것 하나 하나가 다 내 안정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 처럼 느껴졌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으니 아빠가 위로해준다.

“기도해보자. 올라오는 것까지 모두 포함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도 좋지. 번복해도 되니 천천히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원래의 일정이 밀린것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룸메도, 자신의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난 동료들도, 두 달이나 미리 계약해야 할 월세집도, 통제되지 않는 나의 일정들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아니 큰 문제지만 나를 위협하는 문제들이 아니다. 절정으로 차오르던 감정이 풍선에 바람빠지듯 푸슈슉 소리를 내며 쪼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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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마감을 앞두고 활동수기를 쓰면서 지역에 내려왔던 첫 마음을 떠올려봤다.


어떤 일을 하고 싶어, 보다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어,가 훨씬 강했다. 그렇다면 5개월은 어땠나. 일은 불안 했을지라도 사는 건 꽤 만족스러웠다. 하나 하나 차분히 불안한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간다.


창 밖의 풍경, 텅 비어 있는 버스, 조용한 거리, 가깝고 흔한 자연,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다시 떠올려 본다.


지금은 고민을 해야 할 시기인갑다. 고민이 되면 고민하면 된다. 그리고 때가 되면 또 제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결국 또 나를 믿는 수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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