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는 기대는 거야

by 노니


하루에도 두세 번씩 사무실을 드나들던 반가운 이가 최근 뜸했다. 마침 조금 가벼운 얼굴로 사무실에 들르셨길래 그간 뭔가 일이 있으셨나 싶어 조심스레 여쭤봤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이것저것 문제들 때문에 속을 좀 끓이는 시간을 보내셨단다. 어떤 고민이셨을지 내 맘대로 지레짐작하고 있는데 툭 말을 내뱉으신다. “결국 내가 바라는 게 많아서 그렇지 뭐.” 그리고 이어지는 한 마디, “기대는 기대는 거야.”


어쩐지 말장난 같은, 라임이 살아 있는 이 문장이 입 끝을 맴돌았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마음은 서늘해진다. 타인에게 기대는 것이 마치 잘못된 거 같아서, 그렇다면 뭐든 혼자서 다 잘 해내야 할 것 같아서.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 멋대로 기대를 품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기대한 상대에게 실망해 보지 않은 사람 있을까. 다른 문제라면 남 탓이라도 하겠건만, 내 맘대로 한 기대와 실망은 탓할 사람이 나뿐이다. 그러니 쉽게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애초에 기대를 한 내 잘못이지’ 한사코 내 탓을 해놓고도 속절없이 씁쓸해지는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이제라도 지킨답시고 꽁꽁 싸매보지만 이미 식은 마음은 ‘내 다시는 사람에게 기대하나 봐라’ 같은 다짐을 하는 데까지 이른다. 그리고 결국 말하는 거다. “내가 바라는 게 많아서 그렇지 뭐. 내 탓이지 뭐. 사람한테 기대하지 말아야 해. 기대는, 기대는 거야!”


지나가면서 들은 말 한마디를 되짚으며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건 지금 혼란스럽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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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음을 선택해야 할 시간, 변하는 상황들이 막연하고 막막해져 ‘당연히 모두가 내 마음 같을 수는 없지. 그걸 바라는 건 내 욕심이지.' 주절주절 혼잣말이 나오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기대를 했었나 보다. 그리고 어쩌면 실망을 했나보다. 낯선 곳이라 더 쉽게, 더 많이 의지했을테지, 나도 모르게 모두에게 기대고 있었던게지. 내 탓을 하며 마음이 움츠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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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제, 한 학인의 글을 읽다가 한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한 번도 타인에게 기대어 살아본 적이 없는가?”


이 문장에서 눈이 한참이나 멈춰 있었다. 한참을 한참을 머금고 있는 동안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주저 없이 댓글을 달았다.


[아니요, 저는 반대로 한 번도 타인에게 기대지 않은 채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늘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 건 기대어 살아갑니다. 자주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편입니다. 마음이 강퍅해질 때마다 하루를 돌아보면, 결국엔 말하게 됩니다.

오늘도 살았다,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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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영부영 머릿속에서만 맴돌다 말았을 생각들은, 지난주 응원 카톡을 보내온 상영님 덕분에 글이 되었다. 다시 한번 같이 글을 써보지 않겠냐고, 나는 그리 다정한 설득은 처음이었다. 그 다정한 격려와 응원에 기대가며 글을 썼다. 다시 한번 상주에서 살아보겠다고 용기 낼 수 있었던 건, 사실은 곧 서울에 올라갈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떠난 동료들 덕분이었다. 새로운 곳에서도 원래의 내 모습대로 살아가면 된다고, 함께 웃고 함께 울어준 사람들이었다. 그 다정한 동행에 기대어 6 개월을 살았다.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화면을 보니, 어! 서울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알게 된 J 님의 이름이 뜬다. 어쩐 일이시지. 궁금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보다 조금 앞서 지역에 내려와 살게 된 J 님은 최근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내 글들을 보다가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과 너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고, 비슷한 용기를 내고 있는 내게 '우리 어떤 선택을 해도 그리 큰 문제 아니지 않냐'라며 특유의 유쾌한 웃음으로 웃었다. 그 유쾌한 웃음에 기대어 웃으며 통화를 했다.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다. 함께 웃거나, 함께 울 사람이 누구라도 있어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 기대고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매일 생각할 거다. 오늘도 살았다,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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