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해도 사실은, 사랑하고 싶은 마음
181006
집에 온 언니와 형부에게 회사 이야기를 했다. 내 편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다 보니 조금씩 엄살이 붙기 시작한다. 아니다 싶으면 차라리 빨리 정리하라는 형부의 말에, '이 정도도 안 힘든 사람이 있나.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 내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슬그머니 태세 변경을 하는 마음. "아니 뭐 또 그렇게 당장 그만둘 정도로 회사가 힘들진 않고." 뱉었던 말을 수습해본다.
어쨌든 하고 싶은 말(회사 욕)을 잔뜩, 뇌를 거치지 않고 해댔더니 조금 덜 말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욕을 하건 편을 들건, 좀 하나만 해줄래.
내 마음이지만 나도 헷갈릴 때가 있는 법이다.
181008
참 굉장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퇴근 후, 지난여름 몇 주간 함께 글쓰기 수업을 들은 학인들을 만났다. '그랬지 그랬어. 좋은 얘기 나누고 매주 참 즐거웠지' 라며. 수업서 나눴던 이야기들을 곱씹는 걸로 내가 추억팔이를 하는 동안, 두 명의 학인이 스스로 책을 펴냈다. 수업 시간에 나눴던 계획들을 멋지게 실현해냈다.
회사에서 온종일 쓰고 있지만, 나를 쓰는 일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를 쓰는 걸 게을리했다. 글이 쓰고 싶어서 에디터에 지원했고, 어쨌건 회사에서 매일 뭔가를 쓰고 문장을 만들어 내다보니 어느 정도 쓰기에 관한 욕구불만이 해소된 건지도 모르겠다. 에디터로서의 역할은 아직 전혀 불만족스럽지만.
자신들의 책을 들고 웃는 그녀들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올라오는 '그럼 나는 그동안 뭘 했나'하는 자책의 마음이, 모임을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어느새 '맞아 맞아, 나도 글 쓰는 거 이마만큼 좋아하지.'로 바뀌어 흐뭇해져 있었다. 조급함이 아니라 뭔가 벅찬 마음이 올라온다.
181012
열심히 열심히 준비한 신제품 펀딩 콘텐츠를 마무리해서 사이트에 올렸다. 무언가, 엄청나게 엄청난 게 아니더라도. 눈 돌아가게 멋지거나 이마를 탁 칠만큼 기발하거나 탄성을 나올 만큼 새로운 것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없던 제품을 새롭게 만들어 낸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전혀 몰랐던 세계를 경험한다, 매일매일.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회사에 들어와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면서, 적응이 어려워 혼란스러운 중에도 좋은 제품에 대한 기대와 좋은 일을 하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은 차곡차곡 성실히 쌓이고 있나 보다. 그리고 지금은 좀 부족하지만 더 좋아질 거라 믿고 있고. 회사뿐 아니라 나 또한.
새로운 직장에 가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늦깎이 신입 사원, 응원해주라 줘!!!!
181015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은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세계의 끝 여자 친구》, 김연수 작가의 말 중
(...)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우리는 아마 신의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정확히 이해했느냐가 아닌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사랑은 노력에서 피어난다.
《다시, 포르투갈》109p, 김창열
주말 동안 밑줄 그어놓은 문장들을 보면서 지금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여전히 계속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나 봐, 한 구석에 시린 마음이 있다.
181016
신경 쓰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오그라드는 마음을, 때때로 신경 써서 펼쳐줘야 한다. 일하랴, 마음 펼치랴 오늘도 바쁜 하루가 되겠지.
"제발 일만 좀 하면 안 돼?"
자기를 속 썩이는 후임 직원에 대해 말할 때마다 친구의 얘기 끝에 자주 붙는 말이다. 회사에 일하러 오는 건데 뭐 이렇게 신경 쓰는 게 많고 신경 써줘야 할게 많냔다. 어떤 의도로 하는 이야긴지 잘 알면서도,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게 친구의 푸념을 들을 때마다 조금씩 쓸쓸해진다.
구질구질한 마음에 신경이 자주 가닿는 나는, 쿨하지 못한 나는 일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항상 많아서.
181017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친구들이 회사 앞으로 놀러 오기로 했다. 회사 앞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스 왕돈가스 - 최애 카페에 갈 생각이다.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아침부터 설렜다. 퇴근 후에 뭐가 날 기다리고 있는지가 근무시간의 질을 좌우하기도 한다는 걸 안다. 많은 직장인들이 만족스럽지 못한 회사 생활에 대한 대안으로 퇴근 후의 시간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꽉꽉 채워나가는 이유겠지. (나는 북 토크와 글쓰기 수업 마니아)
그러나 또 언제까지고, 퇴근 후에 대한 즐거움으로 고단한 근무 시간을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