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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니 Mar 01. 2020

다짐의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진다

흔들리고 있지만, 괜찮다고 믿고 싶은 마음 


181018


회사 사람들 절반쯤 심한 감기에 걸렸거나, 심한 감기에 걸렸다가 회복 중에 있다. 오늘은 옆자리 동료가 콜록거리더니 내일은 건너편 동료가 콜록거린다. 가뜩이나 사무실이 좁고 환기가 잘되지 않는 구조라서, 사무실 안의 공기는 들이마시기 두려울 정도다. 언제 앓아누워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이 와중에 용케 감기에 걸리지 않고 있다는 게 기특할 뿐이다.




181022


연쇄 수업마. 회사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 같아서... 새로운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나는 아마도 글쓰기보다 글쓰기를 배우는 걸 더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소설 수업, 시 수업, 매거진 수업에 이어 그림에서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아직도 배워야 하는 학인이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해 놓고 글쓰기에 대해 최대한 유보하고 싶은 비겁함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오늘이 첫 시간이라 열댓 명의 학인들 이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아 역시나. 아무리 덤덤하게 말하려고 다짐해도, 자기소개는 늘 너무 떨린다. 멍청이같이 헤헤거리고 말았다. ‘멍청이같이’보다, ‘언제나처럼’이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언제나 멍청이 같은 건가 그럼)

형식이 없이 주어지는 자기소개는 대개 초반 몇 명의 소개 방식에 따라 굳어지게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이름, 현재 하는 일과 수업을 신청하게 된 이유 등의 소개 항목이 압축되었다. 두 가지에 놀랐다. 첫 번째, 이 수업을 위해 여수와 광주에서 올라오신 분들이 계시다. 무려 전라도 광주와 전라도 여수. 수업하시는 작가님은 얼마나 기쁘고, 또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두 번째, 자기소개가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의도적으로 직업을 말하지 않았다. 나 참. 나를 에디터로 소개하지 않았다. 앞사람들이 차례로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내 머리가 바쁘게 움직였다.


내 직업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에디터라고 말할 것인가. 과연 나를 에디터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나.  


짧은 시간 치열한 검열(?) 끝에 현재 하는 일을 말하지 않았다.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아- 스스로에게 이렇게 가혹해서야.


예전에 백수일 때 백수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쉬웠다. 직업을 얼버무리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이야.




181023 


아침 일찍 출근했다.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 것보다 일찍 가서 먼저 시작하니 좋지만,  점심시간부터 이미 퇴근 시간의 피로감을 느낀다는 건 함정. 나는 이 회사의 유일한 8 to 5, 다른 동료들은 대부분 10 to 7로 출퇴근한다. 그러다 보니 나만 일을 덜하고 일찍 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것은 느낌일 뿐, 사실이 아니다.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니니까 쓸데없는 걸로 눈치 보지 말아야지. 




181024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회사에서 탈출했다. 그런 날이 있다. 퇴근이 아니라 정말 탈출이라도 한 것 같은 날. 




181025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에서 ‘가을이 가고 있다’는 글을 읽고 마음이 급해졌다. 조금 서글프기도 했고.


오늘의 일력




181027


급 반차를 내고 춘천에 왔다. 

도착해보니, 아 다행이야. 아직 가을이 절정이다. 


카펫 같던 은행잎 


도로 위에 흩뿌려진 은행잎, 그 위를 차들이 쌩쌩 달리니 노란 잎들이 사방으로 팔랑댄다. 차 뒤꽁무니가 한없이 경쾌하다. 그냥 도로 위, 차들이 달리는 걸 보고만 있는데도 막 행복해졌다. 역시 일상에는 컬러가 좀 있어야겠다. 한결 경쾌해진다. 아니면 그냥, 회사 밖은 뭐든 아름다운 걸지도. 


아직 다 떨어지지 않은 낙엽들이 대롱대롱
시리게 푸른 가을 하늘


다짐같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가을을 보내고 있다. '괜찮을 거야. 괜찮아질 거야.' 다짐의 유효기간은 짧았고 그래서 자주 반복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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