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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니 Mar 02. 2020

어느새 회사에 적응해버렸다

어떻게든 회사를 이해해보려는 마음 



181106


아침엔 졸다가 버스를 타고 그대로 영동대교를 건널뻔했다. 다행히 영동대교 직전에 기적처럼 깨어나서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유후. 아침 버스에서 저 정도로 졸다니. 입사 후 석 달 보름 만에 처음이다. 피곤하다. 피곤하다. 하루 종일 피곤하다. 퇴근하기 전까지 계속 피곤하다. 




181107


알았어 알았어 뭔 말인지 알겠지마는 그건 니 생각이고. 

니가 나로 살아봤냐 아니잖아. 내가 너로 살아봤냐 아니잖아. 아니잖아 아니잖아 그냥 니 갈 길 가.


장기하의 신곡을 듣는데 무릎을 탁 치게 된다. 

하. 이제부터 그건 니 생각이고 정신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깊은 울림을 주는 가사다. 크. 




181112


아픈데 출근했더니 서럽다. 


지난주 비 오는 날, 점심으로 뜨끈한 칼국수를 먹고 나왔는데 갑자기 이게 뭔 일인지. 점점 몸에 힘이 쭉 빠지더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기절할 것 같아서(오버) 반차를 내고, 택시 타고 집에 왔다. 그리고 심한 감기 몸살로 주말 내내 앓았다. 침대와 소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골골댔다. 아직도 컨디션이 60%도 안 돌아왔는데 출근해야 했다. 이게 뭐라고 너무 서러웁다. 




181113


오늘부터 새로운 직원이 출근했다. 그분 퇴근 후, 남은 직원들끼리 이야기를 하는데 C가 그런다. "저분 내일 나오시겠죠?" 그리고 덧붙이는 말에 깜짝 놀랐다. "사실 N도 그만 두실 줄 알았어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물론 고민은 많았지만. 


계속 말을 이어간다. 최근 회사에 새로 오셨다가 며칠 못 가 그만두신 분들이 몇 있었는데, 그분들을 보면서 '우리 회사가 정말 뭔가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을 심각하게 했다고. C는 초창기부터 함께 일했던 오래된 직원 중에 하나다. 대학 졸업 후 이 곳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저 물음은 순도 100%의 의문을 담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회사가 첫 직장인 직원이 나와, 한 둘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들이 많이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오늘 새로 오신 분이 무심코 던진 회사에 관한 질문과 돌직구 같은 현실 분석에 제대로 답을 줄 수 없었다며 답답해하는 동료도 있었다. 


거기 있던 직원들 중 내가 가장 신입이니, 새로 오신 분의 답답함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히 회사가 체계가 많이 없는 편이다. 그런데 개선할 의지가 없긴 없다. 그 답답함을 나도 깊이 공감하고 있기에, 오후에 잠깐 신입 직원과 대화를 나누면서 보인 태도에 나 스스로 좀 놀랐다. 경력직 신입 직원이 하루 만에 파악한 회사의 문제점에 대해, 내가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던 것. 회사가 아직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내가 아는 한 있는 힘껏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함께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며(대표에게 말하면 바꿀 의지가 없다고 말하는 걸 알면서도) '함께 열심히 해보자' 격려까지 했다. 그때 새 직원이 고개 끄덕였던 걸 기억하며 "걱정 말라고, 내일 오실 것 같다고." 오지랖을 부리고 나서 퇴근을 했다.  


내 뒤로 입사한 직원이 없어서, 계속 신입 직원이라 몰랐다. 내가 어느새 입사 4개월 차 라는걸. 회사의 입장에 대해 이해한 면도, 포기한 것도, 무뎌진 부분도 꽤 있었다. 이런 걸 적응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_


정말이지 이상한 날이었다. 나는 자꾸만 새로 오신 분의 마음이 되었다가, 새로 온 분을 인수인계하는 C의 마음이 되었다가, 넉 달 전 긴장했던 출근 첫날 나의 마음이 되었다가, 어느새 입사 넉 달이 지난 오늘 나의 마음이 되곤 했다. 자꾸만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 아, 새로 오신 분은 다음 날 출근하지 않으셨다. 역시 선배님들의 연륜(짬밥)은 무시 못 한다. 


어쩐지 유화의 한 장면 같은 카페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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