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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니 Mar 02. 2020

내일은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야지

여전히 매일, 오르락내리락 요동치는 마음 


181114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 보통 떡볶이를 먹는다. (그래서 자주 먹는다.) 

몇 년째 단골인 떡볶이 가게는 집에서 한 정거장 떨어져 있다. 몇 분 더 걸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떡볶이를 위해 그런 수고로움쯤이야. 


주인아주머니는 평소 자기 집 튀김과 떡볶이에 대한 자부심이 어마어마했는데, 그 자부심은 종종 다른 집 디스로 이어지기도 했다. 내가 한 정거장 걸어서 떡볶이를 사러 온다는 걸 안 뒤로는 나만 가면 자부심이 배가 되는 듯, 매 번 어김없이 비슷한 레퍼토리가 시작됐다. "집 근처에도 떡볶이 가게 많은데 뭐더러 여기까지 오냐"고 겸손을 가장한 자부심을 티 나게 드러내시면서, "맞다, 늬 집 근처에 있는 떡볶이 가게는 위생이 엉망이라고, 그 동네에서 오는 또 다른 손님이 그러더라" 역시 디스도 잊지 않으신다. 실제로 제일 맛있고, 깨끗하고, 양도 많고 싸고, 아주머니 말씀 틀린 거 하나 없으니 적당히 맞장구쳐드리고 편을 들어 드리곤 했다.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오늘도 평소 내리는 정류장보다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렸다. 주인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오늘 아주머니 반응이 영 별로다. 내 얼굴 보면 매번 빼먹지 않고 건네시던 "아우 또 한 정거장 걸어서 왔어? 안 귀찮아?" 다분히 의도 섞인 인사도, 전혀 하지 않으셨다. 사실 말 안 걸면 더 좋지. 나도 별 말없이 포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가게 안에서 초등학생 한 무리가 몰려 나갔다. 그때까지 아무 말씀 없으시던 아주머니가 확 분을 내셨다. "애들이 아주 약았어. 몇 백 원 때문에 내가 이 더러운 꼴을 본다." 그리고 다시 입을 꾹 다무신다. 오늘 무슨 일이실까. 처음 보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이유를 여쭙지도 못했다. 


오늘 내 스트레스는 아주머니의 떡볶이가 풀어줄 텐데, 아주머니의 스트레스는 뭘로 풀 수 있을까. 조금 속상했다. 평소처럼 자부심 섞인 자랑을 실컷 하셨으면 적당히 맞장구치며 기분 좋게 나올 수 있었을 텐데... 튀김 1인분, 떡볶이 1인분을 포장해 나오면서 계속 뒤를 흘낏거렸다. 끝까지 괜찮으시냐 묻지는 못했지만. 




181115


회사에서 정성껏 키우던 식물이 시들었다. 지난주 감기로 쉰 이틀, 그리고 주말. 그 4일 동안 내 화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내가 아픈 동안, 화분도 많이 아팠나 보다. 내가 회사에 가지 않은 동안 아무도 화분에 물을 주지 않은 거지. 별게 다 섭섭했다. 


한 주 동안 지켜봤는데도 전혀 회복이 되지 않는다.




181116 


내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걸 매일매일 잊지 말아야 한다.




181120 


코이즈미. 얄팍한 자존심의 껍질을 깨고 나와라. 온 힘을 다해 일하면 자기 주위의 풍경이 변한다. 넌 아직 그 쾌감을 몰라. 


《중쇄를 찍자》, 155p, 마츠다 나오코


<중쇄를 찍자>를 추천합니다 


온 힘을 다해 일하고 싶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건 과연 내 얄팍한 자존심 때문일까. 




181122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이유가 딱히 없는데 뭔가 우울하고, 까딱했다가는 슬퍼지기까지 할 것 같은 그런 하루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이유는 딱히 없는데. 


퇴근길 버스 안. 한 정거장 한 정거장 버스가 멈춰 설 때마다 내리는 사람을 향해 아주 크고 정성스럽게 “안녕히 가세요.” 기사님께서 인사를 건네신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그러나 기사님께서는 매 정거장마다 인사를 하고 계셨다. 그 목소리에 꿈틀, 마음이 움직인다. 30분쯤, 회사에서 집까지 오는 내내, 한 번도 거르는 법 없이 공평한 목소리로 건네는 인사를 음악처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냥 누군가 자기 일을 정성껏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수가 있다. 오늘은 이렇게 가만히 앉아 힘을 받지만, 내일은 나도 누군가에게 힘을 건넬 수 있을지 모른다. 힘을 내봐야지. 


회식하러 갔던 와인바의 천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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