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 외로운 도시의 밤

2017. 10. 11의 기록

by 노니

아침부터 날씨가 우중충했다. 떠나는 날이라 내 마음도 우중충. 매림에서의 2박, 너무 짧았다. 아쉬웠다. 그랩도 우버도 안 되는 시골이라는 말만 듣고 너무 겁먹었던 게 좀 아쉬웠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말이지. 여튼 돌아가는 길, fax에게 부탁해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택시가 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기에 숙소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잊고 싶지 않은 매림의 풍경들을, 열심히 사진 속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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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림에서 30분 만에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한 올드타운에 입성했다. 치앙마이 올드타운 안 쪽에서 2박을 할 예정. 숙소에 짐을 풀고, 손빨래를 좀 하고, 큰 옷들은 들고 나와 카운터에 세탁을 맡겼다. 왠지 모르게 내내 미뤄왔던 밀린 일들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낯선 동네와 친해지는 나만의 방법, 숙소 주변을 걷는다. 그리고 구석구석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소한 풍경들을 찾아낸다. 걸어서 걸어서 도착한 곳은 BAAN BAKERY.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서 자주 봤던 곳이었다. 걷는 동안 빵집이 많았는데 기어코 여기까지 와서 성실히 클리어. 빈티지 핑크와 빈티지 간판. 그 아래로 산세베리아, 외관이 무척 러블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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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라테와 달달한 빵 두 개. 애매한 시간대라서 그런지 내부는 한산했다. 사실 여기에서 제일 좋았던 건 창에 달린 레이스 커튼이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창 밖의 초록도 좋고. 주인은 일본인, 손님은 주로 외국인들. 테이블 위의 꽃이 너무 예뻤던 야외 좌석. 머리 위로 팬이 돌아가서 바깥에도 앉아 있을만했다. 치앙마이에 오는 여자 여행자들이 거의 들렀다 간다는 핫플레이스, 여기서 유명하다는 빵들을 못 먹어봐서 그런 건지 빵 맛이 어마 어마하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커피도 그냥저냥. 인테리어는 아기자기 예쁘다. 한 번으로 족하다. 땀을 식혔으니 걷는다. 또 걷는다. 길 가에 색 조합이 예쁜 건물들, 예쁜 건물 옆에 또 예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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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시티를 빙 두른 해자 주변을 걸었다. 차가 꽤 많고 지나치게 쌩쌩 다니고, 매연 때문에 숨이 불편하고. 은근 그늘이 없어 땀 쫄딱 나게 덥지만 주변 풍경은 참 예쁘다. 사진 속은 마냥 평화로울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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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걸어서 걸어서 찾아온 곳은 치앙마이 국립 도서관이었다. 여행 전, 치앙마이 여행 카페에서 국립 도서관에 한국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꼭 와봐야지 했었다. 다시 봐도 신기한 한국말 간판과 태극기. 검색으로 알게 된 사실은 용인시 중앙도서관에서, 치앙마이 한인들과 한국을 알고 싶어 하는 태국인들이 즐겨 찾는 이 곳 도서관에 북뱅크 사업으로 도서를 기증했다는 것. 약 1500권 이상의 책이 있다고 했는데 기증기사가 검색되는 2014년 이후에도 책이 꾸준히 기증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만고진리. 도서관이니 조용하고, 겁나게 시원하다. 시원하다 못해 추웠다. 책 종류가 아주 다양한 편은 아니지만 읽을만한 책들이 있다. 이 정도면 감사하지. 고를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게. 한참 뒤적이다 고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위화 작가의 <제7일>, 순식간에 3일까지 읽어버리고 아쉬웠지만 문 닫을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나왔다. 평일은 5시까지. 도서관에서 나와 걷는 도서관 옆길이 뭔가 좋았는데, 살짝 가을 느낌이 나서 그랬다. 한국의 가을이 시작될 무렵 떠나오게 된 여름 나라 여행이라, 가을 빠순이는 놓쳐버릴 2017년의 초가을에 어찌나 마음이 쓰이던지. 매년 손꼽아 기다리는 가장 좋아하는 가을을, 점점 짧아지는 가을을 놓치는 것이 아쉬웠는데 이 곳 길이 뭔가 가을을 느끼게 해줘서 참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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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있다 나오니 아까랑은 또 다른 빛을 담고 있는 해자. 해가 기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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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들어가는 길에 카페에 들렀다. 아카족이 운영하는 커피 농장에서 커피를 재배해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하다는 카페, 산지가 치앙마이랑 가까워 신선한 원두를 사용한다고 한다고 하더니 커피 맛이 진짜 진하고 좋았다. 원두도 좀 사려는데 판매하는 원두의 종류가 너무 많다. 직원에게 설명을 들어도 못 알아들을 것 같아 그냥 곁에서 원두를 고르고 있던 한국 분께 여쭤봤다. 바로 어떤 맛의 커피를 좋아하냐고 물으시는 걸 보니 제대로 물어봤다 싶었다. 추천해주신 걸로 원두도 구입했다. 원두 가격이 거의 200밧 내외니까,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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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길가에 빼곡한 가게들을 구경했다. 해가 지는 길은 어둑해지고 있지만 곳곳에 가로등이고, 여전히 문을 연 가게들도 많았다. 역시 도시는 도시구나. 하루 종일 뭔가 정신없이 돌아다녔는데 뭘 했지, 싶었다. 아마도 주변에 뭐가 많으니 해야 할 것도 많고, 봐야 할 것도 많고, 가야 할 곳도 많아진 것 같은 바빠진 기분 탓이다. 신기했다. 치앙마이도 분명 우리나라에선 손꼽는 슬로시티인데 말이지, 그럼에도 도시는 도시구나. 언제고 도시에 살았지만 내가 막상 하지 않았던 생각, ‘도시에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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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나름 큰 도시 포르투에서 만났던 청년이, 서울서 왔다는 나에게 자기도 서울에 와 본 적이 있다면서 서울은 정말 빅빅빅-시티라고 빅을 세 번이나 반복하며 양 손을 바깥으로 휘휘 돌리던 장면이 생각났다. 서울과 이 곳 포르투는 너무 다르지 않냐고 묻던 그 청년의 얼굴이 생각나고, 그 뒤로 내 일상 속 서울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꾸 그 빅빅빅-시티가 힘겨워지는 지금, 떠나온 치앙마이에서 그 장면을 떠올릴 줄이야. 평생을 머문 곳에서 느껴지는 새삼스런 위화감이 낯설었다.



숙소에 들어와 공용룸에서 포장해 온 음식을 먹는데, 저쪽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사투리를 쓰는 여자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듯했다.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닌데 목소리가 참 크고 통화가 참 길었다. 어쩔 수 없이 듣게 된 통화 내용은 주로 장기 여행자의 외로움이었다. 엄마랑 통화를 하고, 친구랑 통화를 하고, 또 친구랑 통화를 하고. 내리 몇 통, 실컷 한국말로 울먹이며 훌쩍이며 통화를 한 그녀는 그 사이 꽤 씩씩해져서 전화를 끊었다. 내내 그 통화를 듣고 있는데 나도 조금 외로워져 버렸다. 딱히 통화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핸드폰을 이리저리 뒤적였다. 좋자고 떠나온 길 위에서, 어떤 밤은 참을 수 없이 외로워져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에서 온기를 찾아 헤매고, 그리고 겨우 겨우 다시 힘을 내서 여행을 이어가기도 한다. 이상하지. 그녀도 나도, 누가 등 떠밀어하는 여행도 아닐 텐데 말이지. 내 외로움에 겨워, 괜스레 그녀에게 말이라도 붙여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에게 외로움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니까.


치앙마이에서 도시를 느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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