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문이 열렸다.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 무리가 순식간에, 비어있는 내 양쪽 자리에 나눠 앉으셨다. 일행이신가 보네, 같이 앉으시면 좋겠지? 내가 자리를 옮겨드려야겠다. 아주 빠르게 생각이 진행되고 엉거주춤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찰나, 왼쪽에 앉으신 아주머니가 내 팔을 잡으며 말씀하신다.
"괜찮아요. 우리 금방 내려요. 고마워, 마음 써줘서."
살포시, 다시 엉덩이를 내리고 여전히 아주머니 무리에 낀 채로 생각했다. 마음을 쓴다는 말이 새삼 낯설게 다가왔다. '마음은... 어떻게 쓰는 거지.’
마음 쓰다 : 신경을 써서 깊이 생각하거나 걱정하다.
신경을 쓴다는 건 말 그대로 몸속의 어떤 부분들을 사용해서 몹시 세심하게 살핀다는 의미. 상대에 대해 세심하게 생각하고 살피는 것이 마음을 쓰는 것이구나. 몰랐던 건 아니지만 정확히 다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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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고 간단한 글도 잘 써지지 않아 좀 괴로웠다. 단지 글이 안 써진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어디에도 마음을 쓰지 못했던 건가 싶다. 고민이 머릿속에 꽉 들어차 신경이 둔해져, 아님 지나치게 예민해져 무슨 일에도 마음이 가닿질 않았다. 그러니 쓰고 싶은 게 없을 수밖에.
멍하니 손을 놓고 다시금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상이 무엇이건 세심하게 살피고 나면 쓰고 싶어 지는 경우가 많았다. 내 마음이든, 내 옆에 있는 사람이든. 지하철에서 마주 앉은 사람이든, 카페에서 커피를 건네는 직원이든, 오늘 내리는 눈이든, 친구가 건넨 말이든. 아니면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상황이거나.
생각이 거슬러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1학년, 같이 놀던 친구들에게 갑자기 따돌림을 당하게 됐다. 흔한 얘기지만 아픈 얘기다. 아직도 슬픈 얘기다. 그때부터였다. 그때부터 비밀 노트를 만들어 마음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학교서 시켜서 쓴 일기 외에, 처음으로 내 마음을 스스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남을 의식해야 하는 학교에서의 시간을 버티고 나면 마음에 하고 싶은 얘기가 남았다. 쓰면서 버텼다. 망가질까 봐 자주자주 들여다보니 자꾸 쓰고 싶은 말이 생겼다. 그렇게 그 시간을 견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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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마음 써줘서."
버려두지 않고, 모른 체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지 않고. 늘 세심히 들여다 봐줘서, 언제나 마음 써줘서 고마웠다고, 스스로에게 전해 본다.
나에게 ‘쓴다’는 건, 내가 내 마음에 건네는 감사 인사 같은 것. 잘 버티고 있다고 알아주는 것. 그러니 외로워지는 일이 잦아질수록 내 마음을 ‘쓰는 것’에 더 마음을 '쓰기’로 했다. 더 집요하게 내 이야기를, 당신 안의 나의 이야기를, 책 속의 나의 이야기를, 세상 속의 나의 이야기를 적어보리라. 제대로 쓸 수 있도록 마음을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한결 한결 손 끝으로 쓸어줘야지.
흑. 말장난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