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잘 쓰고 싶다

by 노니


'지금까지는 네 생각을 읽는 사람에게 주입시키려는 의도가 많이 묻어나서, 좀 무거웠는데 오늘은 그냥 툭 던진 느낌, 그래서 읽는 사람도 마음이 가벼운 느낌이네.’

블로그에 올린 글에 이런 코멘트가 달렸다. 요즘 글을 쓸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읽는 사람에게 내 생각을 '주입'시키려고 하지 않는 것, 게다가 상대에게 주입 의도가 느껴지기까지 한다면, 쩝.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을 때 나도 그랬다. 너무 친절하게 설명하는 글은 좀 지루하더라.
티브이를 돌리다가 ‘슈가맨’ 재방송을 보게 됐다. <Dog>라는 추억의 그룹의 ‘경아의 하루’라는 곡이 나오고 있었다. 꽤 신나는 분위기의 무대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구태의연한 표현이긴 한데, 정말 그랬다.

Oh Happy Girl's Life
햇볕에 눈부셔 뒤척뒤척거리다 배고파 눈 비비고 일어나
먹을 건 없고 쓰레기 냄새만, 잘 됐지 뭐 다이어트하는 거야
경아의 하루의 시작은 항상 두시에(아님 다섯 시) 인정 많고 싹싹한 그녀의 하루
무엇이든 해야 해 지루한 건 너무 싫어 어제같이 썰렁한 느낌 너무 싫어
그래도 한때는 부모 밑에 잘 나갔어 가까운 거리도 택시 아님 아빠 차로
그래도 창피하지 않을 만큼 공부했어 멀지만 일 년 동안 너무너무 잘 다녔어
경아의 만남의 시작은 저녁 일곱 시(아님 아홉 시) 인정 많고 싹싹한 경아의 하루
시간은 남아돌아도 기다리는 건 너무 싫어 어제같이 늦는 건 너무 싫어
오늘은 춤만 추고 신나게 놀아야지 하지만 내 앞에 술잔이 날 유혹해
강제로 끌고 가는 미영이의 등쌀에 딱 한번 부킹하고 빨리 가서 놀아야 해
나를 아직 사랑하지 엄마 아빠 말해봐요 내가 아직 믿는 건 엄마뿐인데
엄마 나 내일 꼭 머리를 해야 해요 그리고 약간의 옷가지도 필요해요
아빠 나 내일 아침 집에 꼭 들릴게요 이번엔 용돈이 많이 좀 필요해요
Oh Happy Girl's Life
오늘도 모두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행복한 경아의 하루

노래 가사에서 알 수 있는 건 '경아'라는 여자의 하루 일과와 몇 마디의 말뿐이었다. 그녀의 내면이나 그녀의 생각을 구구 절절 더하여 적지 않았다(물론 노래 가사니까). 의도를 가지고 대상 대해서 나열해놨을 뿐이다. 주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걸로도 충분히 전달이 됐다, 뭘 말하고 싶은 건지. 그리고 어차피 우리는 각자가 느끼고 싶은 대로 느낄 뿐이다. 사실 그게 맞다.
생각해봤다. 내가 '경아'라는 여자에 대해 쓴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뭐 이렇게 시작했으려나.
‘눈을 떠보니 시계는 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나마, 제대로 닫히지 않은 커튼 새로 들어오는 햇볕이 아니었으면 오늘도 다섯 시가 돼서야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로 몸을 뒤척였다. 조금 더 잘까, 잠깐 생각이 스쳤지만 배가 너무 고파 일어나기로 했다.’
일상 묘사로 시작해서, 글의 마지막으로 간다면 이런 말을 넣고 싶어 안달이 나지 않았을까.
‘오늘도 술에 취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하루가 지나갔다.’ 내지는,
‘엄마에게 옷을 사달라고 했다. 머리도 해야 한다고. 그저 아무 생각 없는 애처럼 철없이 말했다.’
그리고 고민 고민하다 맨 마지막 줄에 덧붙이겠지.
‘모두를 사랑하는, 그러나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매일이다.’

크, 진지충. 근데 좀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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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고개 숙인 모습에서 그녀가 부끄러워하고 있음을 보고, 턱을 괸 모습에서 그녀가 원망하고 있음을 보고, 혼자 서 있는 모습에서 그녀가 그리워하고 있음을 보고, 눈썹을 찡그린 모습에서 그녀가 수심에 차 있음을 보고, 난간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누구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파초 잎사귀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그녀가 齋를 올리는 중처럼 가만히 서 있지 않고 진흙 소상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지 않는다고 책망한다면 이는 양귀비에게 치통을 앓는다고 꾸짖고 전국시대의 미인 번희에게 쪽을 찌지 말라고 금하는 꼴이며, 미인의 맵시 있는 걸음걸이를 요망하다고 나무라고 춤추는 자태를 경망하다고 질책하는 격이다.


요새 옛 문장에 다시 관심이 가서 몇 개 찾아 읽었다. 연암 박지원의 문장이다.

한시에서 '드리운 버드나무에 여인이 기대어 있네' 같은 구절이 나오면 주제를 미루어 알 수 있었다. 시구에는 다만 대상을 묘사했을 뿐인데, 으레 '사랑에 빠진 여인'에 대한 시로 읽었다. ‘버드나무’는 꽃 피는 봄을 상징하는 나무고, ‘나무에 기대어 있다’는 건 보통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상징하고, 여인이 기다리는 대상은 백이면 백, 낭군님이니까. 설레는 봄기운에, 설레는 봄처녀.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때로는 대상의 일부를 보여줄 수도 있는 거다. 그리고 읽는 사람이 알아서 해석하게 두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철저히 내 입장에서의 기록이다 보니 쓰면서 점점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많다. '아, 이거 너무 사소한 얘긴가', '아, 이건 지극히 내 사적인 얘긴가', 이게 과연 공감받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우려의 코멘트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건데 잘 따라오고 있어? 하고 주입하려 한다. '왜냐하면~ 때문이다'로 꼬치꼬치 이유를 설명하거나, '잘 모르겠지만 ~일지 모른다'를 써서 애매하게 표현하고 만다. 능숙하지 못하게.
하지만 ‘사소하다’라는 이유가 공감을 얻거나, 얻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다. 공감을 얻을 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한 거지. 지극히 사적인 마음으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 아니, 지극히 사적인 것이 되려 읽는 이의 마음을 더 깊이 파고들기도 하는 것 같다. 사람은 생각보다 꽤 비슷하고, 또 너무나 다르니까. 어차피 우리는 각자 느끼고 싶은 대로 느낄 뿐이다. 그리고 사실 그게 맞다.

길게 말했지만 결국 이거다. 아, 잘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