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몇 학년 때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여름 방학 마지막 날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숙제를 미리 하는 타입은 아니기에 ‘오수의 개’에 관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숙제는 방학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시작했다. 독후감 쓰기에 대해 배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책을 읽게 된 계기로 시작하고 줄거리를 요약하고, 느낀 점으로 마무리.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룬 뒤에 시작한 숙제니 뭐 얼마나 정성껏 썼겠는가. 대강 써서 낸 독후감이 상을 받았다(무슨 상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리고 생각했다. ‘아, 글쓰기 참 쉽구나.’
초등학교 때 살던 연립 주택 1층 마당에 라일락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우리 집은 2층이었는데, 우리 집 앞 복도 높이까지 자라 있는 키가 큰 나무였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가 되면 나무에 꽃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가 되면 현관문이고 창문이고 활짝 열어 꽃향기를 집 안으로 가득 들였다. 집 앞 복도에는 아빠가 달아주신 칠판이 있었다. 언니와 나는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가 밤이 늦으면 집에 들어와 복도에서 칠판 놀이를 하며 놀았다. 그때만 해도 온종일 밖에서 뛰어놀던 시절이었으니까.
어느 여름밤이었다. 언니가 칠판에다 시를 적었다. 놀랍게도 그 시의 첫 구절이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어젯밤 밤새 하얀 눈이 내렸나
나무 위 온통 하얀 꽃이 피었네
시의 제목은 라일락이었다. 우리가 매일 칠판 놀이를 하고 있는 뒤로, 나무 위에는 온통 눈송이처럼 자잘한 꽃이 피어있었다. 매일 보고 느낀 그대로를 적은 시였다. 언니의 시도 아마 상을 받았었지 싶다, 내가 받은 게 아니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생각했다. ‘아, 시 쓰기 어렵지 않구나’
일기를 매일 쓰거나 하는 성실한 타입은 아니었어도 학창 시절 내내 거의 매일 글을 썼을 거다. 워낙 친구에다 목숨을 걸었던 시기라 매일 편지를 쓰고 교환 일기를 썼다. 글쓰기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함께 놀던 친구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절교의 편지를 받은 그 날, 수업을 모두 마치고 굳이 내가 가지고 있던 교환 일기장에서 내가 쓴 편지를 박박 찢어내고 남은 일기장을 그 애들에게 던져주고 집으로 오던 하교길. 내 손으로 적은 내 글에 대해, 나름대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뒤로 악의적인 괴롭힘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던 기세가 푹 꺾였다. 전혀 괜찮지 않지만, 적어도 괜찮은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시작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괜찮아 보이기 위해서 비밀 노트를 적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와의 교환 일기 같은 개념이었을거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언제든 교환일기를 써왔으니까,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못하던 그 시기가 견디기 쉽지 않았을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썩 솔직한 기록은 아니었다. 노트는 늘 책상 위에 올려뒀고, 어디든 가지고 다녔다. 마치 표지에는 ‘비밀 노트’라고 크게 적어놓고,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운동장 한가운데 활짝 펼쳐놓은 꼴이었다. 다분히 보이기 위한 글이었다, 보는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기 한창 라디오 천국을 들었고, PAPER를 정기 구독했고, 거기서 알게 된 음악을 듣고, 거기서 소개된 책들을 읽었다. 늘 감성 과잉이었다. ‘나 지금 말도 안 되게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거든’ 이 얘기를 온갖 있어 보이는 말을 끌어다 적었다. 의도야 어쨌건, 비록 감성의 모방이었겠지만, 고3이 돼서 다시 친구 다운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 일 년도 넘는 시간 동안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적었다. 적고 또 적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아닌 척 해봐도 늘 슬펐고, 늘 비참했다. 그게 견딜 수 없어서 괜찮아지려고 뭐든 적었다.
그 뒤로 감정을 기록하는 건 나에게 꽤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약간 습관이 되었다.
대단한 기억도 아니지만,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어려서부터 글쓰기는 딱히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늘 많은 것을 적어 왔다.
글쓰기가 취미가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