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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디브라운 Apr 17. 2019

요즘 내가 곱씹는 말들

요즘 자주 곱씹는 말이 몇 가지 있다.


"어쨌든 궁금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힘들어?"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거야."


첫 번째는 몇 주 전 인스타그램에서 읽었다.


어쨌든 궁금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_는 생각을 한다. (...)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글을 써도, 누군가의 이야기는 듣고 싶고 누군가의 이야기는 듣기 싫다. 알면 사랑할 수 있고, 알면 싫어할 수 있다는 말도 진리다. 문제는 ‘알려고 하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그 의지를 발현시키는 사람이 위대하다. 아침부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김영민 교수님의 글이라고 했다. 울컥했다. 공감했다. 같은 얘길 해도 듣기 싫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궁금한 사람이 있다. 그 극명한 차이를 알기에 공감했다. 나는 어쨌든 궁금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보다. 궁금한 글을 쓰고 싶고 말이지. 그렇다는 건, 내가 지금은 누구에게도 그닥 궁금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참 어려운 일 맞다.  그 어려운 일에 대한 의지를 발현시키는 사람이 위대하다. 정말로.

이 글을 읽은 뒤로는 말을 많이 하고 싶을 때 조금 참으려고 한다.

굳이 다 설명하려고 하지 말자.
조금은 궁금하게 비워두자.

이게 소용이 있는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두 번째는 월간 이슬아에서 읽은 인터뷰의 한 부분이다. 월간 이슬아는 요즘 나에게 꽤 큰 행복을 준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로 읽거나 점심시간에 읽는다. 모든 글이 좋았지만 특히 정혜윤 PD와의 인터뷰는 중간중간 글을 잘라 복사해뒀다. 읽고 싶을 때 읽으려고.

​호시노 미치오라는 알래스카 사진작가가 있었어요. 그 사람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야영을 많이 해요. 추우니까 습관적으로 모닥불을 피워요. 무심코 야영지에서 불을 피우는데 어떤 할머니가 와서 호시노 미치오에게 물어봐요. 지금 뭐하고 있냐고. 호시노 미치오는 불을 피우고 있다고 대답하지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한 마디 해요.
“미치오, 그렇게 추워?”
저는 그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그 지방에선 나무가 귀한데 더 추워진 겨울에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나무가 필요할 텐데, “그렇게 추워?”라고 물으면 순식간에 쪼그라들지요. 저도 가끔 저에게 물어요.
“그렇게 힘들어?”
그럼 저절로 이 대답이 나와요.
“그렇게는 아니고.”
그러니, “그렇게 추워?” 도 저를 형성한 말 중에 하나예요.


요즘 습관처럼 힘들다는 말을 하려고  할 때가 있다. 나는 그런 말을 쉽게 하는 타입의 인간이니까. 그때 이 말이 생각난다. "그렇게 힘들어?" 그럼 잠깐 생각하다 나도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게는 아니고." 자기검열이나 자기비판이 아니다.  지나치게 자기 연민을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저 말이 와닿았다. 요즘 힘들다는 말을 하게 될 때마다 생각해보면 새로 생긴 힘듦이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입사하고부터 내내 비슷한 문제로 힘들었다는 것. 그런데 꾸준히 끈질기게 매번 같은 부분에서 힘들어한다. 왜냐면 상황이 새롭기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그만하고 싶을 때는 그만하는 게 좋겠다. 언젠가 또 들숨날숨처럼 힘들다는 말을 내뱉고 싶을 때가 있을 거기 때문에.


​_

신제품 촬영을 하러 스튜디오로 출근했다. 굳이 따지자면 싫어하는 쪽의 업무다. 불편하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스스로 무능하다고 느끼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예민해진다는 것을 선명하게 알게 해준 곳이다. 내가 이렇게 확신이 없는 사람인가? 몇 번쯤 질문을 던지다 보면 촬영이 끝난다. 확신이 없는 채로 확신에 차서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바스락 부산을 떨다 보면 사람들 동선에 걸리기나 할 뿐이라서 잠자코 견디는 훈련을 하는 곳이다. 해야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데 해야만 할 것 같아서 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해야 할 말도 삼켜버리기도 하지만.

벌써 다섯 번째 촬영이라, 이 편치 않은 시간도 익숙해지긴 했다.

점심은 일부러 맛있는 걸로 먹었다. 다행히, 생긴 것만큼 맛있었다.

모든 일은 좋기만도 그렇다고 싫기만도 할 수 없는 법이지. 스튜디오에 오는 게  좋은 이유도 몇 가지 있는데 그중 제일은 고양이들이다. 되게 사랑스럽다.

스튜디오에서 내가 좋아하는 포스터. 내가 좋아하는 한구석. 한 장 구해서 내 방에 붙여 놓고 싶다.

그리고 해 질 녘의 풍경이 아름답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물 일층에 있는 카페. 무지무지 무지하게 촌스러운 카페인데 커피 맛이 좋다. 게다가 디저트도 맛있다. 오늘도 다쿠아즈와 라테로 혼자만의 촬영 뒤풀이를 했다. 파티로구나 파티.

_

세 번째는 회사 업무로 힘들어하는 나에게 경옥 언니가 해준 말이다.
맛있는 저녁을 사주고 내 얘기를 한참 듣고 있더니 언니가 말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거야. 다른 상황이라면 달랐을 거야."

회사에서 업무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인정을 못 받으니 자신감이 떨어진다. 그 태도에 오해까지 받고 있다. 매사에 수동적이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오해가 아닐 수도 있다. 대표 앞에서 나는 금방 그런 사람이 되고 만다.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언니가 말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거야. 다른 상황이라면 달랐을 거야.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닌 걸 내가 알아." 엉엉엉 눈물이 났다.

회사에서 일 못한다고 뒤에서 조금 씹히는 직원이 있다. 몇 번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 직원에 대한 내 이미지는 '일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페어 준비를 같이 하면서 너무 놀랐다. 손이 무척 빠르고 일 머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일 머리가 없는 내 눈에는 그게 보였다. 속으로 무척 놀랐다. 언니의 말을 듣는데 그 직원이 생각났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나에게 좋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상황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나는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수동적인 자존감 낮은 직원이 될 것 같다. (대표가 말했다. 자존감이 좀 높아져야 할 텐데.)

요즘 회사에서의 고민을 이야기하면 일단 "네가 열심히 안 했을 리는 없고, 네가 잘 못했을 리는 없고" 같은 반응으로 받아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다. 깊이 감사함을 느낀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나를 세운다. 상황을 바꾼다. 열심히 하고 싶다, 잘하고 싶다 나는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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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궁금한 사람이 되는 것에는 실패한 것 같다.
잠깐 일기나 쓰고 집에 가야지 생각하고 노트북을 열었는데 금방 지나치게 많은 말을 쏟아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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