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날이 좋아 부암동을 산책하다가 윤동주 문학관에 살짝 들어갔다. 작은 전시관을 돌다가 문학관 한쪽 구석, 작은 흑백 사진 속에서 도시샤 대학을 만났다. 일 년 전. 그날의 마음이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갔다. 한 없이 외로웠던 도시샤 대학 속 그들과 달리 전시실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손마다 태극기를 쥐고 흔들었을, 언젠가의 3월 1일. 그 순간을 위해 누군가는 죽임을 당했고, 누군가는 소중한 이를 잃었으며, 누군가는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일을 당했다. 그날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오늘, 그 뼈아픈 과거의 주체 일본에서 삼일절을 맞았다. 일부러 쉬는 날을 끼워서 최대한 길게 여행을 계획한 참이었다. 삼일절 = 쉬는 날. 그러게, 나는 삼일절에 대해 그것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3월 1일 아침, 일본은 여느 때처럼 고요했다. 모두가 출근하는 평범한 날이었다. 너무 평안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보로 3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지만,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고 그냥 걸어서 가기로 했다. 여행을 계획했을 때부터 시간 되면 한 번 들러봐야겠다, 했던 곳인데 아침부터 다른 곳은 가볼 생각이 나질 않았다.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없는 마음으로 한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시샤 대학.
윤동주, 정지용 시인의 시비가 있는 곳이었다. 한눈에 봐도 꽤 큰 캠퍼스의 규모에, 선뜻 찾아 나서지 못하고 입구에 멈춰 섰다. 우뚝 멈춰 서있는 나를 보고 경비 아저씨께서 먼저 다가와 친절히 길을 안내해주셨다. 덕분에 무사히 시비 앞에 도착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그렇다고 아주 구석도 아닌 그곳에 두 시인의 시비가 나란히 서있었다. 정지용 시인의 시비에는 <압천>이 새겨져 있다. 시 속의 ‘鴨川’이 아침에 걸었던 ‘카모가와 강’이라니. 해 질 무렵 흐르는 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차마 꿈엔들 잊힐 리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젊은 시인이 생각났다. 윤동주의 시비에는 <서시>가 새겨져 있었다. 많은 사람이 다녀간 듯, 그 앞에 꽃들과 메모들이 놓여 있었다. 아직 시들지 않은 꽃들로 인해, 그곳에 생명력의 온기가 느껴져 괜히 마음이 놓였다. 사이좋게 놓여있는 시비 중 사람들의 손길이 조금 덜 느껴지는 정지용 시비 아래에, 준비해 간 화분을 놓아두었다. 시비 앞에 놓인 꼬깃꼬깃한 편지들을, 쪼그려 앉아 한참이나 읽었다. 생각보다 훨씬 감정이 출렁였다. 아침부터 이상하게 무거웠던 마음에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더해져 왈칵 눈물이 났다. 다행히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주 가끔씩 지나가는 일본 학생들은 시비 옆에 있는 작은 연못가에 멈춰 서 그 안을 들여다볼 뿐, 이쪽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시비 앞 벤치에 앉아 노트를 꺼내 편지를 썼다.
“삼일절에 일본 여행이라니. 왔으면 또, 그만 신경 쓰지 않고 놀 일이지 자책하는 마음이라니.
‘그래도 잊지 않았다. 마음 쓰고 있다’ 합리화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동주>를 보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부끄러운 세상 속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적고 또 적고, 고쳐 적은 당신의 시를 보며 울었습니다.
그 시를 지금도 우리가 읽고 있습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시차를 두고 누군가에게도 반드시 일어난다고 했던가. 정말로 그렇다면 자기 아픔을 드러내는 일은 그 누군가에게 내 품을 미리 내어주는 일이 된다.’
아침에 읽은 책의 글귀에 계속 당신이 생각났습니다.
부끄러움을, 슬픔을, 아픔을 드러내며 먼저 당신의 품을 내어주어서 지금 이 현실이 아주 외롭지는 않습니다.
당신을 아는 모두가 그러합니다. 감사합니다. 부끄러움을 알며 살겠습니다.
서울에서 은정”
모두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여들던 연말을 지나고 나서도 나로서는 처음 경험해보는 풀리지 않는 답답한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음은 괴롭다 하면서 촛불을 켜는 일도, 수많은 군중 속에 그냥 자리를 지키는 것조차도 결코 쉽지 않았다.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시대를 살면서, 또 언제고 맞닥뜨릴 괴로운 순간들에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두 시인의 시 앞에 서서 바랐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여린 젊은이의 결코 나약하지 않은 고백이, 그저 내 문제에만 마음 쓰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나약하지 않은 삶인지 아직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젊음에게 되려 위로가 되어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끊임없이 소리 내면 된다고, 놓지 않고 잊지 않으면 된다고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가끔 SNS에서 누군가 올려놓은 도시샤대학의 사진들을 찾아보곤 했다. 기모노를 차려입은 수많은 학생들의 졸업 사진들, 활짝 핀 봄꽃 아래서 환하게 웃고 있는 입학식 사진들이 올라왔다. 기뻐하고 슬퍼하는 젊음들 속에 '그들은' 함께 하지 못하고 있었다. 쉽게 외로워지려다가, 그만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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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문학관 안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여전히 헤매고 있지만, 먼저 내어준 따뜻한 품을 잊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 먼저 품을 내어준 그들 덕분에, 언제고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우리 덕분에, 사실은 누구도 쉽게 외로워지지 않을 수 있으리라. 오늘도 혼자는 나약하지만, 함께라서 아주 외롭지는 않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