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좋으셨어요?"
어젯밤, 가져갔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터라 새 책을 사러 책방에 들렀다. 계산을 하면서 사장님께 ‘여기서 가볼 만한 장소 추천해주세요’ 하고 어려운 부탁을 했더니, 나에게 되물으신다. 그동안 여기서 어디 어디 갔었는지, 그중 어디가 좋았는지. 마음에 쏙 드는 분위기의 책방이라, 사장님의 취향대로 추천받고 싶어 물었더니 내 취향 먼저 공유하자 신다.
"오늘 아침에 신천 강 산책했는데, 카모가와 강 같았어요. 완전 좋던데요. “
"신천 강이요? 어... 거기가 지금... 그래요?"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이 아침에 산책했던 숙소 앞 신천강 풍경, 신나서 말씀드렸더니 당황하신다. 하긴 지방에서 서울에 며칠 놀러 온 친구가, 오늘 아침에 중랑천 다녀왔는데 세상에 세상에 너무 좋았다, 하면 '굳이 거길 왜 갔냐' 생각하겠지. 이렇게 따지고 보면 여행 중에는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다. 낯설고 반짝거리는 것들 사이에서 어디서 무얼 하다가 가슴이 뛸지 모를 노릇, ‘여행자’의 색안경을 끼고 보면 쓰레기통도 예뻐 보이는 걸 뭐.
"음악 좋아하세요? 혼술은요?"
신천강이 제일 좋았다는 까다로운 손님에게 혼술 하기 좋은 펍을 추천해주셨다. 가야지 가봐야지. 사실 음알못에 술도 잘 못 마시지만 마음에 든 책방 사장님의 추천 장소라는데 의미가 있다. 여기로 가는 거 맞나, 세 번쯤 이 고민을 하고 나서야 후미진 골목 끝에 있는 펍에 도착했다. 네이버 지도에도 뜨지 않는 가게라니, 이미 마음에 들었다.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직 이른 저녁 시간이라 펍 안에는 바에 앉은 손님 두 명이 전부였다. 내가 들어가자 바 안쪽에 있는 사장님까지, 셋의 눈동자가 모두 나에게 향했다. 펍 자체도 어색한데, 게다가 나 혼자라니. 어색함에 몸이 삐걱댔다. 의자 몇 개를 사이에 두고 냉큼 바에 앉았다. LP로 음악을 트는 조용한 펍이었다.
“어떤 타입 좋아하세요?”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한참 머뭇대자 사장님이 물어 오신다. 내가 어떤 타입의 맥주를 좋아하는지, 사실 나도 모른다. 그럴 땐 보기에 예쁜 걸로. 가장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랐다. 블루문(Blu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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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어떤 책방에서 책을 고르는데 책방 사장님이 그랬다. "책 좋아하시나 봐요. 책을 잡고 넘기는 게 참 편안해 보이네요." 그땐 그냥, 사장님 장사 참 잘하시네, 하고 넘겼었는데,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 서점 안의 분위기를 한눈에 확인하고, 책장과 진열장을 죽 둘러보다가, 가까이 다가가 책꽂이를 훑는 중에, 관심이 생기는 책을 발견하고, 그 책을 꺼내 책 표지를 몇 장 넘겨보는 일은 정말이지 한 호흡도 쉬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이 순간에, 그때 그 말이 생각났다. 지금 나는 남이 보기에도 어색해 보일까, 분위기에 스며들지 못하니 머릿속 생각만 선명해진다.
이렇게 어두우면 책을 꺼내서 볼 수도 없고, 그럼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나는 뭘 해야 하나.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뭘 하나 봐야겠다. 옆에 앉은 손님들을 보니 사장님께 편하게 말을 걸고, 서로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눈다. '펍 좋아하시나봐요. 그 자리에 앉아 계신 게 참 편안하게 보이네요' 속으로 말을 건넸다. 작은 그릇에 담아주신 프레첼을 집어먹으며 또 생각이 이어진다. 맞다, 이 펍은 음악이 좋댔지. 신경 써서 음악을 듣는다. Lp의 차이를 느껴보자.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름처럼, 파란 라벨처럼 청량한 맛이다. 향이 좋네, 끝 맛도 깔끔하고. ‘여유 있게 천천히 마셔야지’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몇 모금 마시니 병이 비었다. 핸드폰 화면을 보니 들어온 지 30분쯤 지나 있었다. 7천 원을 내고, 약간 따뜻해진 얼굴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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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흐르던 ‘김오키’의 <Fuc ma dreams>를 플레이리스트에 담았다. 여전히 내가 어떤 타입의 맥주를 좋아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블루문의 맛은 알았다. 무엇보다 다음에 펍에 간다면 좀 더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땐 한 시간쯤 버텨봐야지.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