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강릉에 갔다. 정해놓은 일정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도착했으니 어딘가로 이동은 해야겠기에 버스를 타고 근처 오죽헌으로 향했다. 바람은 꽤 불었지만 모처럼 시리게 깨끗한 하늘이라 좀 걷고 싶은 날이었다. 오죽헌의 댓잎들은 바람에 흔들이며 서로 몸을 비벼 기분 좋은 소리를 만들어냈다. 예전에 배웠던 한시 몇 구절이 생각날 듯 생각날 듯, 온전히 떠오르질 않았다. 한 밤 중 들리는 소리에 손님인가 반갑게 나가보니 바람이 댓잎을 지나고 있었다는, 뭐 뭐 그런 내용의 시였다. 조금 외로운 이야기다. 삶이 얼마나 고요하면 잎을 흔드는 바람소리마저 반가울까. 오죽헌에 왔다고 한시를 생각하다니 생각의 흐름 한번 참 전형적이네.
한가로이 오죽헌 마당을 걷고 있는데 나무 하나에 사람이 몇 명이나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뭐 하는 거지, 궁금하다. 너무 궁금하다.’ 나는 여행 자니까, 용기를 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근처를 지나며 쓱 묻자 힐끗 나를 보더니 빠르게 대답해주신다. “나무속이 건강하지 않은 것 같아서, 나무의 상태를 살피고 있어요.” ‘얜 뭐야’ 하는 표정과 ‘말해준다고 뭘 알아?’ 하는 말투였다. 그러나 나를 대하는 표정과는 달리, 나무를 대하는 표정이 참 다정하다. 곁에서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마치 보물이라도 대하듯 애지중지하는 손길이 인상 깊었다. 실제로, 오죽헌이 보물 165호이긴 하네. 나무를 지나 마당을 걷는 동안 내내 ‘속이 건강하지 않은 것 같아서, 상태를 살피고 있다’는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얼마 전 낯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화는 이런저런 주제를 이슈들을 자연스럽게 떠돌다가, 현재 각자의 상황에 대한 내용들로 주제가 모아졌다. 내 차례가 돼서 그냥 가볍게, 내게 가장 큰 이슈인 퇴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세히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입을 열수록 이야기가 자꾸 고생담으로 흘러가기에, 대강 마무리 짓기 위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많이 배우고 좋은 경험 했죠.” 그렇게 눙치며 넘어가려는데, 맞은편에 앉은 낯선이가 말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굳이 안 해봐도 괜찮은 경험이 있더라고요."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에 적잖이 당황해서 ‘뭐 그렇긴 하죠'같이 애매한 답을 얼빵한 표정으로 뱉어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그랬다. 별것도 아닌 그 날 이후,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맞은편에서 무심하게 뱉은 그이의 말이 내 속 어딘가에 여전히 불편하게 얹혀 있었다.
겉으로는 아직 멀쩡해 보이는 나무의 속을 살피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서, 불쑥 그 날의 그 말이 떠올랐다. 계속해서 그 말을 곱씹고 있는 게 되는 걸 보니, 아마도 나에게는 고된 회사 생활을 버티게 했던 동아줄 같은 거였나 보다. 그러니까 ‘그래도 많이 배우고 좋은 경험을 했다’라는 믿음이, 자기 위안이. ‘그동안 나는 아깝지 않은 시간을 보낸 거야.’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예쁜 포장지로 싸고 리본까지 달아 놓았는데 누군가 와서 허락도 없이 함부로 포장을 열어버린 기분이었다. 소화시키지 못한 말을 애써 떨쳐보지만, 다시 속이 부대꼈다. 뭘 해야겠다 딱히 정한 것도 없이 강릉을 찾은 건, 아마도 나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아직 멀쩡해 보이지만 속이 건강하지 않은 것 같으니 살펴봐야 하는, 그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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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바람을 쐬고 서울로 올라와 얼마 뒤, H를 만났다. 스물여섯, 어엿한 4년 차 직장인이 된 H는 먼저 밥 값을 계산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막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스무 살의 H를 만났다. 매사에 귀차니즘이 심한 아이였다. 함께 지내다 보니, 그건 아주 어려서부터 쌓이고 쌓인 우울감의 표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열 살이나 많은 나도 겪어 보지 않은 일들을, 스무 해 동안 질리게 겪어 온 아이였다. 아마도 분류해보자면 대부분이 굳이 안 해봐도 될지 모르는 경험들이었을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H가 들려주는 그동안의 이야기는, 여전히 편안히 들을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았다. 벗어날 수 없는 우울과 함께, 절망하다가 원망하다가 무뎌지다가, 다시 희망을 품다가. 파도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조금은 익숙해져 버린 방식으로 노련하게 생의 파도를 타고 있었다.
해야만 하는 경험과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경험에, 나의 결핍에 마음을 쓰는 동안 잊고 있었다. 어디 경험이란 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던가. 어디 경험이란 게 질을 따질 수 있는 것이던가. 우리의 모든 시간은 어떤 경험들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싫건 좋건, 그렇게 채워진 경험이 만들어낸 눈으로 세상을, 상대를, 나를 들여다본다. 참으로 정직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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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어보지 않은 H의 경험을 들으며 예전에 비해 조금 더 자주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된 것으로 그동안의 내 시간들이 실감 났다. 누군가의 결핍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 준 결핍된 나의 경험에 감사할 지경이었다. 나의 불안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H와, H의 결핍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는 나. 10살이나 차이나는 우리는 마주 앉아 한참 동안 ’지긋지긋한 세상살이와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또다시 그 장면이 생각났다. 나무를 살피던 사람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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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지난 시간을 살살 어루만지는 지금 우리의 순간이, 그때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며 H의 이야기에 깊이깊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