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카페의 큰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따뜻한 햇빛을 쐬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렇다. 이 한 문장이 상상케 하는, 그 완벽한 분위기를 누리고 있었다.
좋은 시간을 누리려고 일부러 찾아간 곳, 그 시간을 보상받는 듯한 만족할 만한 시간이었다. 좋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적당한 볼륨의 낯선 음악, 손님이라곤 나와 가장 먼 곳에 앉은 한 명뿐, 말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조용한 실내, 창 밖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맛있는 커피, 통유리 너머로는 평화로운 동네 풍경, 자주 밑줄 긋게 만드는 좋은 책. 정말이지 완벽한 토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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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창 밖, 내 시야의 끝에 이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누군가가 들어왔다. 우산이 꽂힌 낡은 캐리어를 끌고, 지나치게 두껍게 옷을 껴 입은, 누추한 차림의 허리가 약간 굽은 아저씨가 아주 아주 천천히 걷는다. 아니 앉는다. 아니 다시 걷는다. 아니 다시 멈춰 선다. 30m도 안 되는 거리를 걷는데 아주 자주 멈춰 섰다가 땅을 짚고 앉곤 했다. 너무나 천천히 걷는다.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에 들어왔다. 때로는 세 걸음, 다섯 걸음, 어떤 때는 두 걸음밖에 못 걷고 멈춰 서기도 한다. 걷고, 멈춰 서고, 아주 느리게 땅을 짚으며 앉고, 다시 일어나 걷는다. 무슨 일일까, 아프신가, 몸이 불편한가, 탈진하기 직전인 건가. 나가 볼까, 아니 그냥 있을까.
충분히 고민하다 못해 되레 주저할 만큼, 아저씨는 아주 천천히 내 곁을 지나갔다. 창 하나를 곁에 두고, 바로 내 곁에 주저앉았다가 일어나시는 동안에도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일, 이, 삼, 사, 오. 길게도 못 앉아 계시고, 오초쯤 지나면 다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간다. 걷는 다기보다는 몸을 옮긴다.
아저씨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관찰만 하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밖으로 뛰어 나갔다. 바깥공기가 어쩜 이렇게 기분 좋은 온도일까. 약간 싸늘하던 살갗에 따뜻한 바람이 스쳤다. 맞아. 오늘 이렇게 완벽한 토요일 오후였지.
몇 걸음 못 간 곳에, 아저씨가 앉아 계셨다.
"괜찮으세요? 어디가 아프세요?"
기운이 없다고 하셨다. 며칠 째 먹은 게 없다고. 나는 노숙자라고.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고 들어와서 지갑에 있는 돈을 꺼냈다. 오늘 다행히 지갑에 현금이 있다. 만 원짜리를 아저씨께 건넸다. 그때, 아저씨가 온 얼굴을 구기며 왈칵 눈물을 흘리셨다. 아... 나는 아마도 저런 표정은 처음 본다. 나를 향해 저런 표정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같은 표정으로 울컥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저런 표정으로 감사를 받을 만한 일을 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은 몇 년째 노숙자고, 가족도 없고, 병원비를 못 내서 병원에서 3번째 쫓겨났지만 여전히 온몸이 아프고, 치료받을 돈은 없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은 게 없다고 하셨다. 걸을 힘이 없다고. 돈을 받자마자 자기의 이야기를 마구 쏟아냈다. 여전히 아까 같은 표정으로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다가 바보 같이 말했다. "괜찮으세요?" 너무 괜찮지 않아 보이는 아저씨를 보면서 저런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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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사드시지 말고 꼭 식사하세요" 알코올 의존증이라고 하시는 아저씨가 염려됐다. "여기 어디 식사하실 데가 있나?" 주제넘게 말하며 주위를 휘휘 둘러보니, 아저씨가 손을 저으며 아는 데가 있다고 하신다. 그러더니 싱글벙글 웃으면서 벌떡 일어나셨다. 아까보다는 훨씬 몸에 힘이 들어가 있다. "복 받으세요." 인사를 하고 몸을 앞으로 옮기기 위해 돌아서셨다. "건강하세요" 나도 꾸벅, 인사를 하며 대답했다. 온몸이 아프고 치료받을 돈도 없다는 아저씨를 보면서 건강하시라니, 대책 없이 또 바보 같은 말이었다. 아저씨는 한 걸음을 떼려다가 뒤를 보고 말했다. "내가 쉰여섯 살이에요"
어떤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만 갑갑해졌다. 너무 적은 나이다. 그리고 순간, 내 생각에 아찔해진다. 아직도 살아갈 날이 지나치게 많이 남았다는 생각,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고 지난할 것 같다는 생각,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나는 그만, 그 시간들이 버거워진 것이다. 모두 무의식 중에 스친 생각이다. 글로 적고 나니 참 무섭다. 적은 나이라니, 지긋한 생을 마무리하기에 적다는 것인가.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적다'라고 말한 것인가. 내가 뭔데 남의 시간을 버거워하는 것인가.
아저씨의 마지막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실 잘 모르겠다. 걸을 힘조차 없던 아저씨가 누군가 쥐어준 만원을 들고 열심히 앞으로 걷는다. 며칠 만에 한 끼 식사를 하러 가신다. 부디 그곳에서 냄새난다고 박대받는 일 없이, 맛있는 식사를 하시길. 그걸로 또 하루, 밖에서 지낼 수 있는 힘을 얻으시길. 혹 술을 사드 신대도 내가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부디.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의 행동이 타인에, 세상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또 얼마만큼의 영향도 미칠 수 없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