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 숙소

포르투갈 에어비앤비

by 노니

진작에 비행기표는 끊어뒀고,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에서 발견한 방 사진 한장을 보고, 어려움 없이 바로 결제해버렸다. 가격 대비 훨씬 더 넓직하고 뽀샤시하고 화사하고 깔끔한 방들도 많았지만 상관없었다. 가성비보다 더 중요한 이유, 그냥 내 스타일. 사랑에 빠져버렸다. 여성여성한 프로필 사진의 호스트 gracja에게 번역기를 돌려 첫눈에 반했다고 묵게 해달라고 메세지를 보냈다.



서울을 떠난지 30시간만에 포르투 공항에 도착했다. 메트로가 잘 되어 있다고 했지만 그걸 탈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 바로 택시를 잡았다. 기사 할아버지는 영어를 잘 못하셨고, 나도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핸드폰을 켜 바로 구글 지도를 보여드렸다. 가정집 번지수를 찍어 보여드렸는데 할아버지는 몇 초쯤 힐끗 지도를 들여다 보시더니 바로 출발하셨다.


울랄라. 바깥 잘씨가 끝내준다. 한참을 달리다가 택시가 멈췄다. 뭐라 뭐라 말씀하시고 캐리어를 내려주셨다. 구글맵 딱 5초 보고도 내려주시다니 할아버지 프로. 양쪽 도로에는 주택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좋았어. 야심차게 캐리어를 밀며 대문에 붙은 번지수를 확인하는데 114번지, 다음 116번지...!! 내가 가야할 115번지가 없다. 앞으로 조금 더 갔다가, 뒤로 다시 왔다가. 드륵 드르륵 캐리어를 밀면서 30미터쯤을 계속 왔다 갔다 했다. 분명 여기 어딜텐데, 114번지도 있고 116번지도 있는데, 115번지는 어디 있나. 하늘로 솟았나. 갑자기 멘붕.

그때 114번지 문이 열리더니 한 커플이 나왔다. 순간, 114번지 주민에게 115번지를 물어보면 단박에 찾을 수 있을거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조심스럽게 달려들어(?) 익스큐즈미를 외치며 구글맵 화면을 내밀었다. "아이 원트 투 고 히어" 내 간절한 표정을 보더니, 남자는 핸드폰을 받아들고 지도를 한참 바라봤다. 가로로 보다가 세로로 보다가, 지도를 키웠다가 줄였다가, 한참이나 만지작 거리더니 방금 전 내가 했던 것 처럼 이쪽 저쪽을 왔다갔다 했다. 분명 헷갈리는 것 같은데 길찾기를 좀처럼 포기하지 않았다. 종종 걸음으로 드륵 드륵 캐리어를 끌고 남자 뒤를 따라 다녔다. 여자 친구가 팔짱을 낀 채 우리를 보고 있으니 가시 방석이다. 어디 가시는 길이었을텐데. 물어본게 미안해질 만큼 꽤 여러번을 왔다 갔다 한 뒤에 사거리 횡단 보도 앞에 서서 저 건물 인 것 같다 팔을 뻗어 멀리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말의 내용을 잘 모를때는 되려 쓸데 없는 것이 잘 보인다. 표정이랄지, 말투랄지. 영어를 제대로 못알아 들으니 잘 보였다. 남자는 확신이 없다. 표정도 말투도. 길치 청년, 114번지 거주민이 115번지를 그렇게 해맬 일입니까. 그러나 고마운 건 고마운 거, 땡큐 땡큐 베리 머치. 재빨리 감사 인사를 진심을 담아 건냈다. 선글라스를 끼고 내내 무표정 하게 서 있던 여자친구가 입을 열었다. 굿 럭. 아!

친절한 114번지 커플이 환하게, 사람 좋게 웃으며 갔다. 나도 같이 손을 흔들고 커플이 알려준 방향으로 가봤다. (미심쩍지만) 한번 가봤다. 역시. 115번지는 없었다.

할아버지 기사님이 내려 준 곳으로 돌아왔다. 초심으로 찾자. 그제서야 머리에 제대로 된 생각이 떠올랐다. 호스트에게 메세지를 보내자. 나 다 온 것 같은데, 115번지를 찾을 수가 없어. 몇 초 뒤, 누군가 큰 소리로 나를 부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건너편 건물 발코니에서 누가 양손을 머리 위로 흔들고 있다. 호스트 gracja였다.

처음 만난 포르투가 흠뻑 웃으며 나에게 굿럭, 행운을 빌어준다.

처음 만난 포르투가 있는 힘껏 나에게 손을 흔들어 준다. 아! 안녕, 포르투.




gracja는 넉넉하고 인상 좋은 포르투갈 아가씨였다. 예상대로 친절하고 다정했다. 먼길을 온 나에게 물 한잔을 가져다 주고는, 숨도 쉬지 않고 규칙과 환경을 설명했다. 월요일까지 가족들을 만나러 가서 집을 비우지만 언제든 연락하면 나를 도와줄 친구들이 근처에 있다고 안심을 시켰다. 대형견 루나가 내 주위를 맴돌며 꼬리를 살랑댔다. 숨찼던 첫 인사를 마치고, gracja가 나갔다. 몇 개월간 핸드폰으로 들여다 봤던 그 방안에 와 있다니. 가슴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진짜 나 포르투에 온거야, 꺅.



gracja가 만들어 놓은 포르투갈 회화와 맛집 리스트. 맛집 리스트는 10분 이내의 집 근처의 맛집, 10분 이상 가는 시내의 맛집, 채식주의자를 위한 맛집으로 친절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호스트 gracja는 베지테리언.



마음에 들어.





현관문 열쇠는 목에 걸어 옷 안쪽으로 넣고 다녔다.

방문을 잠그는 열쇠가 따로 없냐고 물어보자, gracja는 옆 방에 묵고 있는 손님은 아주 젠틀하고 우리 집은 단 한번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난 적 없다고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앗, 방문을 잠글 수 없다니. 조금 당황했지만 너무도 확신에 찬 그 표정 덕분에 곧 안심했다. 돈이나 여권도 다 놓고 다녔고, 안 잠기는 문으로 샤워를 했지만 불안하진 않았다.


침대에 누워 창 밖을 보고 있으니 아무 것도 하기 싫어졌다. 30시간의 압박. 이것 저것 먹긴 했지만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것도 벌써 30시간이 넘었다는 얘기. 정신차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나가자.


포르투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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