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거리 산책
오늘은 슬쩍 산보하면서 분위기를 좀 보고, 저녁 먹고 들어가서 쉬면 되겠다 싶었다. 이때까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포르투의 거리는 슬- 산보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두세 걸음 떼고 찰칵, 또 한걸음 떼고 찰칵. 똑같은 것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다양한 모양의 타일들, 아기자기 작은 가게들의 감각적인 폰트와 간판들, 그리고 느낌 있는 벽의 낙서와 색감들까지. 도무지 산책,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사방으로 눈이 돌아갔다. 며칠 이 곳에 머물며, 새로운 낯선 거리에 도착할 때마다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은 채 매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찍어온 벽과 바닥과 테이블과 집 사진이 몇 백장쯤 됐으니, 말 다했다. 나에겐 매우 보물 같은 사진이었는데 막상 서울에 와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다 보니 너무 소소해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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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3분 거리 공원, 내가 있는 동안 이 공원에서는 내내 포르투 푸드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덕분에 좀 어둑해져서 집에 들어와도 거리가 북적거렸다.
귀여운 간판
전단지
컬러풀한 플래카드
색감 좋은 브런치 가게 입간판
상큼한 테이블 매트
간판의 폰트도 예쁘고
아기자기한 가게들
벽에 그린 그림
뭔가 장난스러운 벽에 그린 그림 2
또 예쁜 폰트
오드리 헵번 머리에 저거 뭐지
규모 있는 낙서
건물 전체가 이렇게, 느낌 있는 그림으로 뒤덮여 있다.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있는 언니. 느낌 있다.
작은 광장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토요일마다 열린다는 마켓이 한참이었다. 한쪽 부스에는 싱싱한 채소와 과일들이 예쁘게 담겨 있었다. 아마도 유기농일 듯. 빈티지 상품, 헌 책, LP판, 일러스트, 그림, 액세서리 등 규모가 작고 물건은 다소 허접했으나 둘러보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잡다한 것들을 소박하게 가판대에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근데 이 가판대도 너무 느낌 있는 거 아닌지. 블랙&화이트 스트라이프라니 역시 과감해. 이런 디테일이 너무 좋았다. 둘러보는 손님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작은 광장의 가운데는 사람들이 편하게 앉거나 누울 수(?) 있는 매트와 쿠션 등이, 바닥에 놓여 있어서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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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포르투 등 포르투갈의 도시를 일러스트화 해 놓은 엽서가 있어서 구입했다. 카사 다 뮤지카와, 리스본 포르투의 풍경 일러스트. 여행지에서 엽서 안 살 거야 해놓고, 결국 또 엽서를 샀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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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엽서를 팔던 포르투 청년이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서울이라고 답하는 나에게 반색을 하며, 서울은 정말 빅빅 빅-시티라고. 양 손을 바깥으로 휘휘 저으며 '빅, 빅, 빅'이라고 말했다. 자기는 2013년에 8일 동안 한국을 여행했다고 했다. 너무 반가워서 어딜 가봤느냐고 했더니, 어설픈 발음으로 써울, 부싼, 구왕주, 대구라는 지명이 나왔다. 신기해라. 8일 동안 많이도 갔네.
서울과 이 곳 포르투는 너무 다르지 않냐고. 그 순간 머리 속으로 떠올린 서울이, 평생을 나고 자란 내 고향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며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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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한쪽에 많이 몰려 있었다. 뭐지 기웃대 보니 깜찍한 부스가, 3 minute portrait. 종이로 만든 허접한 아니, 깜찍한 포토 부스 앞에 앉으면 저 쾌활하고 사랑스러운 포르투 아가씨가 3분 안에 초상화를 그려주는 것이다. 먼저 손님을 몇 초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러고 나서 손님에게 어울릴 것 같은 종이 색과 사인펜을 신중하게 고르고 나면, 거침없이 과감한 터치로 초상화를 그린다. 3분.
드디어 내 차례가 와서, 앉았다. 의자에 앉아 나는 코리안이라고 먼저 인사를 했더니 이름을 묻는다. 내 이름을 다소 우스꽝스러운 발음으로 몇 번 따라 하고는 하늘색 종이와 주황색 사인펜을 집어 들었다. 슥슥- 3분 동안 나 한번 종이 한번, 여러 번 번갈아 보며 과감하게 선을 그었다. 저렇게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하, 3분 뒤에 포토 부스에서 출력되어 나온 그림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본인이 입으로 게임기 속에서 나올 법한 소리를 따라 하면서 포토 부스 아래쪽에 있는 화살표로 그림을 밀어 넣어준다. 나 진짜 이렇게 생겼어? 따지고 싶은. 그런데 묘하게, 참 못나게 닮아 있었다. 쳇.
돈은 내고 싶은 만큼 내고 오면 된다. 첫날이라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터라 지폐 투척. 재밌었다. 밝은 기운이 맞은편에 앉은 나에게까지 전달될 정도로 내내 함박웃음을 머금은 얼굴이었다.
계속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테이블과 의자의 조화.
아기자기, 창문에 붙은 스티커.
알록달록한 골목 구석구석을 눈으로 좇으며, 울퉁불퉁 돌 길을 걷는 기분이 그만이다. 날씨도 계속 감탄사가 나올 만큼 훌륭하고.
과일 가게 발견. 유럽에 왔으면 납작 복숭아를 먹어야 제 맛. 봉투에 담아 간 복숭아에서 솔솔 단 냄새 풍긴다. 가격은 또 얼마나 착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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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걷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포르투갈은 걷기 좋은 나라가 아니다. 시선을 빼앗을 만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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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첫날, 왕복 한 시간도 안될 거리를 산책 한 기록이다. 모든 그림에 다 감탄하고 모든 집의 외벽을 찍어대고 모든 가게 간판에 어머 어머나 세상에, 감격하느라 어둑어둑해져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곳에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걸까. 포르투의 사람들이 점점 궁금해졌다. 오늘 걸었던 거리 말고 그 위 골목으로 올라가면, 그다음 길로 꺾으면 또 어떤 가게들이 있을까, 또 어떤 그림들이 숨어 있을까 궁금해졌다. 아까 내 얼굴을 그려주던 포르투갈 아가씨의 장난기 가득 담긴 동그란 눈망울이 떠올랐다. 사랑스러워, 딱 그 느낌.
이 곳, 너무나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