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아침 산책
언젠가부터 여행을 가면 아침은 산책으로 시작했다.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오로지 산책만을 위해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가는 때가 많았다. 일상에서는 단 한번도 이른 아침 시간, 일과를 시작하기 이전 오로지 산책만을 위해 외출해본 적은 없었으니, 이건 여행지에서의 습관 같은 것. 밤보다 더 위험한게 새벽이라는 글을 봤는데, 근거가 있는 말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여행지에서도 누군가는 출근을 할테니, 이른 출근 시간 즈음에 맞춰서.
공간이 낯선 까닭에, 밤새 여러번 잠에서 깼다. 하룻밤에 이렇게 여러번 잠에서 깬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여러번. 잠에서 깨어나고 금새 다시 잠들고를 여러번 반복했다. 이것까지 나이 탓을 해야하는걸까, 확실히 시차 적응이 더뎌지긴 한 것 같다. 날이 밝아오는게 느껴졌다. 마침 눈이 떠진 터라 전혀 개운하지 않은 몸으로 일어나, 어제 사놓은 복숭아를 먹고 물을 마시고 산책에 나섰다. 오늘도 날이 끝내주게 좋다. gracja의 집에는 엘레베이터가 있었지만, 내려갈 때는 무조건 타박타박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긴 줄에 연결된 열쇠를 목에 걸어 윗 옷 안쪽으로 넣고 짤랑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아직 이른 아침, 길에는 사람보다 비둘기와 갈매기가 더 많다.
누군가 간밤에 걸터 앉아 마셨을 맥주 한 병. 느슨했던 간 밤의 시간과 차분히 가라앉은 아침의 시간이 교체되기 직전, 아직 채 걷히지 않은 지난 밤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즐거웠다. 자유로이 들이켰을 맥주 한병의 시간을 직접 마주하는 것 보다 그 시간의 흔적과 마주치는 편이 편하다고 생각하다니 나답다.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소심한, 참 나답다. 수 많은 사람들이 바글대던 주말 밤의 흔적은 쓰레기가 가득한 쓰레기통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다. 깨끗해진 아침. 아직은 텅 빈 공원.
이른 아침을 시작하는 잡화점. 오늘의 신문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 끌어 보지만, 여행자는 포르투의 오늘 신문 따위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 보다는 긴 그림자를 만들어 내며 솟아오르는 해와 기분 좋게 부는 바람, 오늘의 날씨가 어떤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다행히 오늘도 날이 좋다.
아직 오픈 전의 가게, 쌓여 있는 의자들이 이 곳의 시간은 아직 어제 밤에 머물러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씩씩한 주인 아주머니가 거뜬히 들어올린 의자들로 시작된 하루. 아직 깨어나지 않은 도시의 거리 위에 천천히 의자를, 아침을 놓는다.
처음 마주한 도루강은 고요했다. 포르투 최고의 관광명소도 이른 아침에는 고요하구나. 먼저 포르투에 도착한 친구가 진짜 여기 포르투 너무 아름답다고, 보는 순간 진짜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고 말했다. 거의 두 달째 유럽의 여러 나라를 찍고나서 도착한 포르투갈에서 그런 코멘트라니. 여기 진짜 장난 아닌가보다, 했었다.
도착해서 내려다보니, 아름답다. 전혀 화려하지 않았다. 아직 사람이 없으니, 관광지 특유의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아침과 잘 어울리는 차분한 풍경이었다. 이제 막 뜨겁게 떠오르는 태양은 주황색 지붕을 하나씩, 전부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햇볕이 공평하게 내 머리통도 따뜻한 데우고 있었다. 처음 맞닥드리는 풍경이지만 조금도 낯설거나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간밤의 시간을 물로 깨끗이 씻어내고 있다. 거리가, 깨끗해진 아침의 얼굴로 나를 맞았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상쾌해지는 풍경이었다. '아침 하늘' 이라고 하면 떠올릴만한 전형적인 색의, 그림같은 하늘.
살아보니 매일 아침 꼭 이런 하늘을 만날 수 있는건 아니었다. 꼭 이런 하늘을 만나야 할 필요가 있는것도 아니었다. 그냥 매일의 주어진 하늘에, 감사로 감격하면 되는건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감사는 커녕, 오늘 하늘이 어땠더라,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없이 살게 되었다. 포르투의 아침 하늘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다음의 난 또, 어느 여행지에서 어떤 하늘을 올려다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낯선 골목에선 더더욱 사람이 스치며 만들어 낸 온기를 찾는다. 정말 으슥한 골목길에도 어김없이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림, 누군가가 깨끗이 빨아 널은 빨래가 있다. 이 골목에 사는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는 재미.
돌아오는 길은 아까보다 훨씬 더, 아침이다. 세련되지 않지만 깨끗이 빨아 빠닥히 말려온 새 테이블보는 간 밤의 흔적들을 깔끔하게 지운 아침의 것이었다. 아까 집을 나섰을 때보다, 문을 연 가게가 많았다. 아침이 시작되었다.
새벽이라기엔 조금 늦고, 아침이라기엔 조금 이른 시간. 집을 나선다. 아직 채 걷어내지 못한 너저분한 새벽의 흔적을 발견하며 걷다보면 어느새 환해진 하늘처럼, 어느새 새벽을 씻어낸 말끔한 아침의 도시가 나를 반긴다.
구석 구석을 훔쳐보다가 이런 순간들을 맞닥뜨릴때마다 나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어진다. 아마 이 시간 즈음에는, 도시도 조금 느슨해져서 거리를 걷는 누군가에게라도 마음을 열어 보이고 싶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