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마음이 여기저기 닿아 있었다 : 카사 다 뮤지카

포르투의 casa da musica

by 노니

사실 건축물에 큰 관심은 없는 듯 하지만 포르투에서 유명한 곳이니 들러 보고 싶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마음이 가닿지 않는건 어쩜 당연한 일, 건축에 대해 내가 뭘 알겠는가. 여행을 준비하는 중에 '가이드 투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연주를 보러 가지 않는 이상은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콘서트홀에는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자신도 없는 영어 가이드 투어에 대해 확인하려고 미리 까사다뮤지카 공식홈페이지에 들어가보았다. 이것저것 클릭하다 발견한 꿀정보! 세랄베스 미술관과 통합권으로 끊으면 3.5유로 저렴하게 끊을 수 있다. 가이드투어만은 7.5유로 미술관만은 10유로. 각각 끊으면 17.5유로 인데, 통합권은 14유로. 오예.


영어 가이드 투어는 매일 10시 / 11시 / 4시 / 5시에 진행된다는 정보도 미리 확인했다. 공식홈페이지가 꽤 볼만 했다. http://www.casadamusica.com/en/


포르투 메트로 넘나 마음에 들고. 역이 모두 정말 깨끗하고 좋았다. 리스본의 트램처럼 그냥 찻길 도로위를 달린다. 카사 다 뮤지카 역의 로고, 저 동그라미 M이 원래 메트로 로고인데, 뮤지카의 m에 박아 넣는 센스. 역시 감각의 도시 포르투다. 역에서 나와서 주변을 빙 둘러보면 저어쪽에서 특이한 건물이 눈에 걸린다, 못 찾을 수가 없다.

건물 가까이에서는 제대로 외관 전체를 담을 수가 없었다. 이 건축물은 보통의 건물과는 아주 다르다. 건물 하부의 면적이 상부의 면적보다 좁다. 가장 중요한 메인 콘서트홀이 음향에 가장 좋다는 직육면체 모양으로 되어 있고, 그걸 이고 있는 하단은 좁은 면적만을 사용해서 지어졌다. 그리고 그 불균형한 형태를 그대로 노출시켜 깍아지른 듯한 위태로운 경사를 만들었다. 건축에 기역자도 모르지만 보면 안다. 범상치 않은 건물이다. 그리고 굉장히 현대적인 건물이다. 맞은 편에는 형형색색의 페인칠을 한, 낡은 타일이 붙어있는 포르투갈 특유의 전통건물들이 그대로 있었다. 둘은 서로 어색한 듯, 조화로운 듯, 한 공간에 마주보고 서서 적당히 어우러져 있었다. 10시 조금 지나 가이드 투어 시간에 맞춰 도착, 얼른 표를 끊고 기다리고 있으니 곧 가이드가 왔다. 오늘 함께 투어를 할 인원은 7명.

내부는 약간 어두운 조명에 메탈 소재를 사용하여 외관만큼이나 현대적인 분위기.

가이드 투어 시작. 영어 가이드를 능수능란하게 들을 만큼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뭐 들리는거 들어보는거지, 정도의 마음으로 투어 시작. 그러면서도 긴장한게 사실이다. 투어를 진행할 가이드는 깔끔한 청년, 좀 훈남이었다. 호리호리한 몸에 잘 어울리는 하늘색 루즈핏 셔츠의 소매 끝은 무심히 접어 올렸고, 블랙 팬츠는 몸에 적당히 핏, 거기에 검정 반스 운동화로 마무리. 변태 같습니까. 원래 좀 잘 훑는다. 1.5리터짜리 물통을 들고 침착하게 가이드를 시작했다.

제일 처음 들른 곳은 메인홀이었다. 메인홀의 이름은 SALA SUGGIA. 유명한 포르투기 여성 첼리스트 SUGGIA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단다. 멋지다. 인포메이션에서부터 느낀거지만 이 건물은 겉도 속도, 정말 다양한 소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콘크리트와 메탈, 우드에 유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벽에 있는 저 뱀 같은 무늬는 진짜 금이라고 했다. 리얼 골드. 좌석 줄 표시도 엄청 감각적. 의자도 특이했는데 앞 뒤 의자 간격이 꽤 넓은 편이었다. 사람이 앉아 있지 않을때면 엉덩이 닿는 바닥의 면적이 2/3정도만 나와 있어서 통로를 넓게 사용할 수 있고, 자리에 앉으면 나머지 면적이 모두 나와서 편안히 앉을 수 있었다(설명이 전달되려나). 세심해라.

이 건물의 모든 공간은 메인홀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했다. 앞 쪽 공간, 뒤 쪽 공간, 위에, 왼쪽, 오른쪽에 각각 있는 공간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듣고 각각의 공간으로 향했다.

외벽이 통유리로 된 방은 나머지 벽면이 모두 아줄레주였다. 아름답다. 바깥으로 보이는 포르투의 주택들.

바깥이 그대로 내다 보이는 작은 홀, 그랜드피아노와 빨간 벽면이 인상적이었다. 연주가 이루어지는 콘서트 홀의 유리는 평면이 아니라 물결무늬를 하고 있었는데, 소리가 통유리에 와서 부딪히고 튕겨지는 것보다, 이렇게 물결 무늬를 이룬 쪽에 부딪힐 때 울림이 더 좋다고 했다. 내가 정확히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해한대로 눈에 보이지는 않는 소리가 나와 다양한 굴곡과 방향으로 흩어지는 모양을 상상했다.

이 방은 벽에 기하학적인 무늬의 타일이 붙어 있다. 어느 방은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져 있었고, 어느 방은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부딪혀도 다치지 않을 신기한 소재의 벽면으로, 또 어느 방은 비스듬히 누울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곳들도 있었다. 흥미를 끌 수 있도록 각각의 방이 모두 다른 색, 다른 모양,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주황색 벽, 보라색 천장, 공간들은 모두 흥미로웠다. 어디서고 포르투 도시, 바깥을 볼 수 있도록 유리 벽으로, 또 어디서고 메인홀을 볼 수 있도록 연계되어 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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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는 약 1시간이 조금 넘게 진행되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들을테다, 하는 마음으로 들었기에 왠만큼 이해한 것 같았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불편을 느낄 정도의 시간은 아니었다. 다만 갑자기 던지는 질문이나 그에 대한 대답은 도저히 내용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적당히 이해하고, 이해 안되는 건 넘기고. 이걸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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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타고 포르투갈에 오는 동안 읽었던 책은 한 건축가와 그의 사무소에 관한 이야기였다. 엄청난 몰입감을 주거나 긴장감을 줄만한 소설은 아니어서 비행기에서도 경유지에서도 느릿 느릿 속도를 내지 않고 대강 편안하게 읽어 넘겼는데, 아 신기했다. 그 책을 읽고 이 곳을 봐서 그런걸까. 공간을 만진 건축가의 마음이 자꾸 내게 와서 닿는 것 같았다. 사람이 앉지 않아 공간을 비울 때는 통로로 넓게 쓰고, 사람이 앉을때는 되도록 편안히 앉을 수 있도록 의자 엉덩이 부분의 면적을 조절한다거나. 통유리보다 물결 무늬의 유리를 사용해서 소리의 파장을 좀 더 좋게 만든다거나. 관객들이 앉은 자리에서 연주를 들으며 해가 지는 장면을 볼 수 있는 무대 뒤 유리 벽면이라던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에 감쪽같이 숨겨져 있던 간식 냉장고라던가. 사람을 향한 세심한 마음, 존재 이유와 목적에 따른 적정 기술력,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봐도 아름다울 수 있는 미감. 그런것들이 참 귀하게 느껴졌다. 좋은 타이밍에 좋은 책을 읽었다. 소설 속에서 치밀하게 공간을 설계하는 무라이 사무소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이 공간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는 설계자의 마음이 다양한 굴곡과 방향으로 다가와 공간의 곳곳에 와 닿는 상상을 했다.




내려와보니 다음 타임의 가이드 투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일찍와서 듣길 잘했다. 휴.

즐거웠다, 상상 이상으로.


홈페이지를 캡쳐한 화면. 상단의 카사 다 무지카 폰트 앞에 건물 아이콘, 진짜 딱 저렇게 생겼다.

폰트도 아이콘도 다 마음에 쏙 든다.

내려와서 일 층 cafe에 갔다. 굉장히 한산했다. 커피와 크루아상, 2.5유로. 바깥에 비하면 약간 비싼편이긴 하지만 이 정도도 훌륭하다. 커피는 쏘쏘, 크루아상이 정말 맛있었다. 페도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노트북을 열어 작업하고 계시던 할아버지, 뭔가 멋져서 자꾸 시선이 갔다.

건물 주변의 바닥도 평지가 아니다. 다양한 형태의 굴곡을 그리고 있는 덕분에, 저녁이 되면 스케이터들의 연습장소가 된다고 한다. 여러모로 힙한 곳. 정말 어디 하나 평범한 부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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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렘 콜하스인데 특이하게도 네덜란드 사람이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문화적인 건물을 만들어 보자! 해놓고 네덜란드 건축가에게 맡겼다니, 갑자기 DDP가 생각난다. 이라크 출신의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디디피. 말도 탈도 많았지만 지금은 뭐 또 자연스럽게 있어야 할 자리에 제대로 있는 것 같은 느낌. 여튼 렘 콜하스는 우리나라의 리움박물관 설계와 서울대학교 미술관 설계에 참여하기도 했단다. 신기하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에 한번 꼭 가보고 싶어졌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한낮의 거리를 조금 걸어서 다시 역으로 왔다. 이 근처 어디서고 시선의 끝에는, 매번 저 독특하고 특이한 건물이 걸린다. 한번 쯤 와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건축에 문외한이라면 건축물에 자체에 대해 찾아보기 보다는 차라리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를 읽어보는게 나을지도. 건축가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독특한 재미가 있었다. 모두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곳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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