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요일 풍경, 치앙마이

2017. 10. 15의 기록

by 노니

일요일 아침. 한인 교회 셔틀버스 시간을 알아보고, 조금 더 서둘러 나왔다.

이른 아침 님만해민에 도착해보니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역시 일찍 오길 잘했지,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도착한 곳은 치앙마이 핫스팟 리스트레토 카페.

사람이 워낙 많은 곳이라기에 일부러 일찌감치 온건데 한산한 님만 거리가 무색하게 이 집엔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하긴, 이 아침 시간에 모닝 라테를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나 뿐일까.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플랫화이트를 주문했다. 2017 월드라테아트 1위 챔피온이 바리스타로 있는 곳이라 유명해졌다고 한다. 금방 나온 커피는 쫀득쫀득 진하고 맛있었다.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라테 아트가 전혀 뭉개지지 않는 쫀쫀함이다. 이것이 챔피온의 실력인가, 신기해서 한 컷.

상남자 바리스타의 라테아트 하는 섬세한 손길이 인상적이었다. 점원들도 많고 오고 가는 사람도 많아서 내부는 정신이 없었다. 커피 맛도 좋았고, 북적한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서 한 번은 마시러 가보면 좋겠지만 치앙마이 어느 카페를 들어가도 대부분의 커피가 맛이 좋았던 걸 생각하면 여길 굳이 또 갈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내 생각. 독보적인 맛 까지는 아니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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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네게스트하우스 앞에서 교회 셔틀 성태우를 기다렸다.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성태우가 빼곡히 찼다.

치앙마이 중앙 교회. 예배 잘 드리고, 이번 주도 역시 점심을 얻어 먹고 다시 님만으로 태워다 줄 셔틀 성태우를 기다리며 함께 차를 탈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얘기가 이어지다가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커피 한잔을 하고 가기로. 급 번개.

처음 와보는 마야몰 스타벅스.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신기하게도 정말 교회 끝나고 같은 조 사람들이랑 조모임 하러 온 것 같은 느낌이라 뭔가 익숙했다. 이런 저런 얘기 속에서 서로 자신의 상황들을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현재 무슨 일을 하고 나이가 몇 살이고, 이런 소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퇴사했으니 현재 무직, 결코 적지 않은 나이, 미혼, 또 뭐가 있더라. 내 앞에 붙어버린 조건들을 한번씩 나열하게 될 때마다 새삼 새삼 낯설다고 느껴졌다. 아마도 다른 누가 아니라, 그냥 내 자신이 그 조건들을 놓고 누군가와 저울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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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는 계속 우산을 써도 온 몸이 홀딱 젖을 것 같은 소나기가 내렸다. 쏟아 붓듯 내리는 비에, 비가 그치면 나가자고 미루다보니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혼자 여행은 참 편안하지만 늘 외로움이 따라 붙는 것이기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는 열심히 하려고 애를 썼다. 여행에서의 우연한 상황과 만남은 언제나 신나니까. 열흘 만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내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어 즐거웠다. 일행 중 한 분과는 치앙마이에 있는 일정이 조금 겹쳐서 떠나기 전 언제 저녁이라도 한 번 하자 하고 싶었으나, 뭔가 마지막 순간에 쑥스러워 용기를 못 냈다. 나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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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과 헤어지고서 님만에 오면 들러야지 했던 북스미스에 들렀다.

소문대로 깔끔하고 책이 많아서 구경할 것들이 많았다. 북스미스 바로 길건너 편에는 란라오 서점이 있었다.

따뜻한 조명과 매력적인 미녀 사장님이 계시는 란라오. 아, 이 서점도 되게 괜찮네. 두 서점이 각기 다른 매력이었다.

여러가지 사진집들을 들춰보고 살펴보고 고심끝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집을 샀다.

서점을 나오니 갑자기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그랩을 부르고 기다리는데, 근처까지 다 온 택시가 빙빙 돌다가 캔슬하고 돌아가버렸다. 마야몰 근처가 워낙에 차가 많은 곳인데다가, 차가 막히는 일요일 저녁이니, 그런가보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이 부글부글거렸다.

삐까번쩍 마야몰 맞은 편, 사람이 좀 적은 쪽에서 다시 그랩을 불렀다. 처음 그랩을 부르고 정확히 45분만에 택시에 탔다. 그 사이 날도 저물었다. 견디기 괴로운 매연에 띵해지고, 비 온 뒤 습기에 온통 땀 범벅. 불쾌지수도 급 상승했다. 참 별 것도 아닌데, 이때는 누가 툭 건들기만 해도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버렸다. 다행히 울어버리기 전에 기사님이 도착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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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내려서 근처에서 국수를 먹었다. 뭔가 스트레스 받았을 때는 매운게 당긴다더니 한껏 매운 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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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이 빠진 접시에 학생들이 자리를 채운 식당에서 저녁을 허겁지겁 먹었다.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조금 놀람. 지금 다시 봐도 침 고인다.

매운 입을 호호 불어가며 수박 주스를 시켰다. 엄청 신선한 재료에 깔끔해보이는 가게였는데, 밍밍했다. 이런. 수박주스는 달디 달아야 제 맛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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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라오에서 구입한 사진집, <once ubon a time>과 란라오 서점 스케치 엽서. 가운데 장미 놓고 허세샷. 나중에 찾아보니 태국관광청 공식 인스타그램에 '태국여행 중 기념으로 살만한 태국 서적'의 목록에 올라와 있는 걸 보고, 사람 눈은 다 거기서 거기구나 했다. 소개글을 옮겨 보자면, <Once upon a time이 아닌 Once ubon a time. 우본(ubon) 지역에서 촬영된 이 사진집은 전형적인 태국의 시골 할아버지가 맥북과 스타벅스커피를 들고 있는 등 방콕의 힙스터를 흉내내는 재미있는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 같이 사진이 참 재밌었다.

The color of belief, 참 멋진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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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조금은 싱숭한 밤이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마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는 시간들을 살아오면서 언제나 나의 마음과 생각을 기록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썼다. 나에게는 참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내가 잘한다거나 좋아한다거나, 특별한 의미 부여 없이 늘 썼다. 기뻐서 쓰고, 슬퍼서 쓰고. 우울해서 쓰고 아파서 쓰고. 일기장을 채우고 SNS를 채우는 글들을 보고 사람들이 공감해주면 참 기뻤다. 언젠가부터 '쓰기'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보고 공감하고 아- 참 좋다, 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막연히 동경하기 시작했다. 너무 막연했지만 일단 많이 쓰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계속 썼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글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정도까지의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회사라는 도피처가 있을 때는 그 정도의 막연함도 괜찮았다. 내 본업은 따로 있으니까. 그런데 막상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니 그 다음이 뭔지를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이전보다 더 자주, 자꾸 막연해졌다.

급할 것 없으니 일단 계속 써보자. 하다가도 뭘 써야 하나 멍해지고. 내가 뭘 한다고 뭐가 될까, 하는 생각으로 깊어지고. 지금은 아직 그 막연함을 맞닥뜨리는 것 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니, 밤이 깊어 온전한 침묵 속에 혼자 남겨지면 한 없이 싱숭생숭한 마음이 생겼다. 한치 앞을 모르는 주제에 미래를 고민했다. 고민의 끝이 대부분 '나는 할 수 있다.'로 다다른 적이 없지만, 그래도 또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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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꿈 같은 것이 아니라, 견디는 방법이었으니까. 모든 평범했던, 또 평범하지 않았던 내 시간을 견디는 방법. 그러니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계속 쓰는 수 밖엔 없다. 또 이렇게 매번 똑같은 말을 하며, 이 막연한 두려움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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