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은 뭐가 좋냐면
비와 추위가 지나고 나니 겉옷을 입을 수 없는 날씨가 이어졌다.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금세 미세먼지로 뒤덮여 버렸다. 쳇. 별로 한 것 없이 지난 주말인데 여행 중에도 월요일은 괜히 월요일 같은 기분이다.
일단 준비하고 나갔다. 그래도 돌아다니긴 해야겠어서. 아침부터 예쁜 교양이. 기여운 교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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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내려오면서 정확히 정해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막연히는 3-4일쯤 있다가 주말 전에 올라가야지 생각했었다. 그랬던 게 그냥저냥 주말이 지나갔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니, 사실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로 접어 들었다. 점점 생각이 없어졌다. 이럴 땐 그냥 좋았던 곳을 가는 게 제일.
초당으로 향했다.
툇마루 오픈 시간에 맞춰 슬슬 움직였다. 지난주, 비 오고 춥고, 황량했던 마른 나무에도 생명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럼 그럼 이런 게 봄이지.
이 커피가 또 생각나서 찾았다. 사실 라테 한 잔 미리 마셨고, 또 한 잔 더. 툇마루 시그니처 커피와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 디저트. 맛있었다. 추천.
뭔가 중독성 있는 달달함과 고소함. 많이 달지 않고 끝까지 맛이 좋다.
로고 예뻐효. 날이 좋긴 한데 온통 미세 먼지. 월요일 오전이라 사람이 많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침부터 커플들이 예쁘고 화사하게 차려입고 와 앉았다. 아 세상에는 예쁜 사람도 많고 멋진 사람도 많기도 많아라.
강릉 토박이 청년이 차린 카페, 주말에는 줄 서서 들어가는 집이 맞나 보다. 웨이팅을 기록해 놓는 종이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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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구남매집을 방문했다.
오늘은 순두부가 안된다고 하셔서 청국장을 먹었는데, 뭔가 내 스타일 아니었다. 이 타이밍은 맛있는 걸 먹어줘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하필 입에 안 맞을 건 뭐람. 밥이랑 반찬만 먹고, 순두부는 걍 다 남겼다. 분명 밥을 먹었는데도 뭔가 영 꿀꿀한 마음에 반드시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며 맞은편에 있는 돌솥밥 집에 다시(?) 들어갔다. 점심시간도 아닌 애매한 시간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를 보시더니, 사장님께서 1인분씩은 안 판다며 문전박대(?) 하셨다. 아니 왜 때문에 돌솥밥을 1인분씩 안 파는 거죠? 다른 것도 아니고 돌솥에 1인분씩 짓는 밥이잖아요. 묻고 싶었으나, 그냥 나왔다. 쏘아붙일 기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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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경치는 좋네, 미세먼지는 그득하지만.
초당동에서 빠져나왔다.
할 것도 갈 곳도 없고, 기분까지 별로에, 맛없는 밥까지 먹은 터라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가 돼버렸다. 이때 지난번에 방문 못했던 깨북 책방이 생각났다. 재밌는 책을 사서 읽으면 기분이 좀 괜찮아지려나 싶어서, 안목해변에 있다는 깨북에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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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 해변에서는 뭔가 작은 축제가 한창이었다. 미세 먼지가 그득한 해변에 선베드를 깔아 놓고 있다니. 볼 건 없었다. 일부러 갈 것까지 없을. 깨북도 한쪽에서 축제에 참여 중이었는데 책이 거의 없었다. 일부러 갈 것까지 없을... 책방 에는 책이 꽤 많았다. 아마 축제 기간에는 커피에 관련된 책만 진열 중인가 보다.
아... 말끝마다 미세 먼지 미세 먼지 하는 상태인 걸 보니, 오늘은 그냥 바깥 돌아다니지 말고 얼른 들어가야겠다 싶었다.
이른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들어갔다. 크흡.
맥주 한 캔을 사가지고 들어가 낮술을 했다. 알딸딸. 음주 블로그를 하고, 씻고, 빈둥대고, 책을 읽고, 새로 오는 게스트를 위해 내 자리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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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교양 넘치는 차분한 교양이지만, 어쩐 일인지 오고 가는 길에 본 교양이가 너무 힘이 없어 보였던 게 생각나서 해가 진 뒤에 교양이를 데리고 효지씨와 산책을 나섰다. 강아지 산책은 처음 시켜보는데 정말 신기했다.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귀여운 목소리로 강아지에게 인사를 하고, 웃으며 우리에게 말을 건다. 처음 만난 세계. 여행 중 강아지 산책이라니, 멋지군.
며칠 전에 도서관에서 들춰봤던 책이 생각났다. 반려동물을 키우면 나를 몰라도 내 반려견을 아는 사람들이 생긴다고. 사람들이 나에게 쉽게 말을 걸 수 있게 된다고.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 본 적 없는 나는 잘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었는데, 운 좋게도 며칠 만에 그 기분을 조금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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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하루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만큼 아무 생각 없었던 하루였다. 제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나간 하루였다. 이건 또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