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은 뭐가 좋냐면
어제 도착한 게스트들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 어젯밤은 별 이야기 나누지 못하고 각자 잠들었는데 오늘 아침 식탁에서 수다 보따리가 터졌다.
게스트하우스의 주방 식탁이라는 건 묘한 것.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사람들을 말하게 한다. 나도 여기서 주절 주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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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대화를 나눈 분 중 한 분은 강릉 여행이 끝나고 이틀 뒤에, 인도로 여행을 떠난다고 하셨다. 인도라니. 인도 같은(?) 나라에 딱히 환상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여행자는 여행 이야기에 마음이 쉽게 열리는 법. 여행에 대해 서로 한참을 떠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게스트가 덧붙인 말에 마음 속에 퉁, 울림이 있다.
"실업 급여 끝나기만 기다렸어요. 끝나면 바로 떠나려고"
실업 급여가 끝나기 전에, 다른 일자리를 찾으려 애쓰는 것이 보통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말이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그러게 다음 취업의 시작이 꼭 돈 때문일 필요는 없는 건데 말이다.
인도=위험한 나라, 라는 공식에 조심히 다녀오라는 얘기들을 하다가 또 한 게스트가 말했다. 그래도 여행하다 죽으면 행복한 거 아니냐고. 일하다가 죽는 것보다 낫지 않냐고. 무슨 논리야 그게. 무논리다. 비교 선택지가 다소 파격적이고 극단적이긴 했지만, 우리 모두 그 말에 허허 웃었다. 생각도 못했던 이야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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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렇게 다 다른 거다, 사람이. 그러니 '보통'이라는 것에 메이지 말자고.
일주일 전이랑 마당 풍경이 또 다른 느낌이다. 봄의 정원. 효지씨 말이 조금 더 봄이 깊어지면 자두나무에 꽃이 활짝 핀다고 했다. 그럼 정말 예쁘다고 했는데 그 풍경도 궁금해라.
믿기지 않는 개화의 속도, 눈으로만 세어도 어제와는 다른 꽃송이 갯수 좀 보라지. 부지런히 피우시는 아버지, 정말이지 부지런하신 분. 팝콘 같은 꽃이 따뜻한 햇볕을 받아 톡톡, 봉우리를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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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첫 일정이자 유일한 일정. 웨이브라운지 방문.
어제 앉고 싶었던 라라랜드 액자 자리에 앉았다.
카페 벽에는 끊임없이 뮤직비디오가 바뀌어 나왔다. 오, 이진아다. 이번 강릉에서도 때때로 함께 했다. 듣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노래를 만들어줘서 늘 고마와요. 전할 길 없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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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핫하다는 책이 비치되어 있어 꺼내다 읽기 시작했다.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
전문성 갖춘다고 뭐가 달라질까. 최고의 큐레이션 해 놓으면 교보문고 손님이 여기로 오겠나.
부럽다는 말 들으면 뭐라고 대답하나?
어차피 다 거짓말이다. 대답할 게 뭐 있나. 진짜 부러우면 지가 서점 차리겠지. 각자 나름의 기준으로 49가 아닌 51을 취하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나. 스스로 포기한 49의 아쉬움을 부럽다고 말해서 무슨 의미가 있나.
서점을 하겠다는 소식에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하려는 일에 대해 주변에 잘 안 묻는다. 걱정하는 소리 들어 뭐 하나. 걱정 안 해줘도 안 될 일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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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쿨한 인터뷰에 그만 현실 웃음이 터질 정도였다. 오 마이갓. 그래서 책이 정말 팔릴 거라고 생각했냐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성공을 했느냐 아니냐 이런 얘길 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 않겠는가. 사실 목차를 보니 이미 사라진 서점도(아마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단단하게 여물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가슴속이 참 시원해졌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를 장담하지 않는 현재의 이야기라서 더 공감이 갔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하듯 말하지 않았다. 그게 맞지 않겠는가. 앞일을 장담하는 쪽이, 나의 전 생애를 거는 거창함이 훨씬 더 위태롭게 느껴지는 현실을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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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배껴 적고 싶은 글귀가 많았는데 이번 여행 따라 수첩을 안 챙겼다. 아쉬운 대로 수첩을 사려고 근처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 갔다. 예전 내가 초등학생일 때 학교 앞 구멍가게 겸 만물상처럼 좁은 문방구 안이 아이들과 잡화들로 가득했다. 내가 들어서자 주인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애기 찾으러 왔어요?" (짐작건대 엄마들이 데리러 오는 시간이 늦어지면, 혹 문방구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게 해주기도 하는 듯). 애기 엄마라니.
_ 그만둬야 할 때라고 생각해서 그만뒀다. 굳이 이유를 더할 필요 있을까.
_ 어차피 매일이 위기다. 옆에서 누가 폐업을 한다고 위기감이 더해지는 건 아니다.
_ 친구가 유부남과 결혼을 하겠다면 말릴 수도 있겠지만 서점을 하겠다는 사람을 내가 말릴 이유는 없다. 대학시절 현업 종사자가 자기 분야 오지 말라 조언하는 거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본인부터 그만둘 것이지. 어째서 후배들 꿈에 초를 치나. 서점이 하고 싶으면 하시라, 어차피 각자 인생이다.
_ 답이 없다 하지 않나. 하지만 질문이 없는 게 더 큰 문제라 생각한다. 지식은 넘치지만 질문은 없는 나라. 당장 답이 없다 한들 질문을 멈춰버린다면 언젠가 답을 찾을 가능성조차 사라지는 것 아니겠나.
다 읽지는 못했지만 정말 정말 재밌게 읽었다. 이 책이 매거진이었다니. 정기구독이 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지만, 돈이 없어 꾹 참았다. 아쉽고 또 아쉽다. 언젠가 또 방문해서 읽어야지.
해가 좋은 낮 시간을 종일 카페에 죽치고 있다가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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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교양이 밤 산책.
어쩐 일인지 오늘은 또 유난히 강아지를 피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한 아주머니가 교양이를 보면서 "입마개 하셔야죠. 저흰 아주 무서워요."라고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했다. 그때부터, 강아지에 대해 반응하는 사람들이 예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부터 강아지의 존재를 인식하고 빙 돌아 걷는 사람들이 있었다.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싫어하는 모습이 인식되니 저절로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효지씨가 줄을 짧게 잡았다. 예뻐하는 사람만 보일 때는 한없이 당당했던 산책길이었는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인식하고 나니 사방이 조심해야 할 것 투성이었다. 강아지 산책 3일차 애송이의 새로운 경험. 여기서 해보지 않았으면, 어쩌면 평생 해보지 못했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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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마치고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새로운 게스트도 숙소 근처라고 연락이 왔다. 오늘은 또 새로운 분과 함께 하는 밤. 새로 오신 게스트는 먼저 올라가시고, 효지씨와 식탁에 앉아 온갖 수다를 떨다 씻으러 올라갔는데, 게스트 분께서 물어보신다. 혹시 누구 아니세요. 내 블로그 얘기였다. 엄머 너무너무 놀람. 블로그에 올린 첫 번째 강릉 여행기에 댓글을 다셨던 분이라고 했다. 핫. 당황스러움과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쑥스러움, 복잡한 기분이었다. 내가 뭐라고 써놨더라. 매일매일 싸질러 놓은 말이 좀 많아야지. 누군가, 처음 본 사람이 블로그 속 나(?)를 안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긴장이 됐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후줄근한 모습일 때 만날 건 뭐람. 흐흐흐. 씻으러 간다며 후닥닥 방을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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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씻고, 정신을 좀 차린 다음에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니, 예정에 없던 1박이었지만 블로그를 보고 이곳, 모안하우스에 와보고 싶었던 터라 별 고민 없이 자고 가기로 결정했다고, 오길 잘했다고 하셨다. 괜히 뿌듯한 기분. 우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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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1층으로 내려왔다. 보통은 먼저 일어난 효지씨가 거실 커튼을 활짝 열어놔 줘서, 아침 햇볕이 참 예쁘게 들어오는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오늘은 커튼이 닫혀 있어서 내가 커튼을 열었다. 그랬더니.
교양이가 쪼르르.
현관을 열어주니 슬금 들어온다. 아 기여워.
현관에 걸터앉아 쓰다듬어 주기 시작하면 저렇게 사르르 눈을 반쯤 감는다. 아우 아우 예뽀. 매일 아침 이렇게 몇 분씩 교양이를 쓰다듬었다. 이거 정말 좋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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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으로 나와서 마지막 날의 모안 하우스를 또 사진 속에 담았다. 자두 가지 끝에도 봄이.
교양이와 모안 하우스 투 샷.
언빌리버블. 믿어지세요, 며칠 사이, 매화가 만개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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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주인아주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오늘 하늘은 또 처음 보는 하늘이다. 구름 범벅. 너무 예쁜 하늘이었다. 효지씨가 마지막으로 바다 한번 더? 해서 콜! 을 외쳤다. 안목으로 시작해서 안목으로 끝나는 강릉 여행. 효지씨 덕분에 여느 때의 혼자 여행보다 훨씬 기동력 좋게 여러 곳을 다니고,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어머나, 떠나기 아쉽게 마지막 바다는 왜 이렇게 예쁜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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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도 저녁부터는 구름 비 예보가 있어서 그런지 벌써부터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랑은 또 달라서, 바다가 약간 어두운 빛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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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던 좋은 사람들을 매몰차게 놓아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주기적으로 관계를 위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밀어내지나 않으면 다행이게. 참 고약한 습관이다. 많지 않더라도, 곁에 사람이 남아 있어서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있었나보다 생각하면 참 나쁘다 싶다가도. 어찌 보면 모두가 그렇게 관계 맺는지도 모르겠구나 싶다. 누구라서 모든 인연을 안고 업고 가겠는가. 떠나온 강릉에서 지금 내 곁에 남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분명 소중한 사람들이다. 놓치고 싶지 않은.
사순절 기도 제목으로 내가 놓아버린 관계에 대해 적었다. 어째서 그들이 그 순간에 떠올랐는지 알 수 없었지만. 스트레스 받으며 관계 맺는 것에 대해서는 쿨해질 수 있는 것이 어른의 관계라고, 쉽게 쉽게 놓아버린 사람들이 자꾸 생각났다. 그 사람 앞에서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관계가 싫더라고 말했던, 내 입에서 나온 낯선 말들을 떠올리며 울어버렸다.
사실은, 사실은 그들이 싫었던 게 아니다. 그들 곁에 있었던, 과거의 내가 싫었다.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걸로, 쉽게 현재의 나를 만들어 왔다. 지금 나는 안 그래, 그때랑은 달라. 이렇게 착각하고 있는데 과거의 나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들이 편안할리 있었겠는가.
나는 왜 그렇게 나를 예뻐하지 못했던 걸까. 생각해보면 주변으로부터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았는데, 나는 나를 사랑하는데 서툴렀다.
여기까지 적고 나서, 내 손이 또 자연스레 이런 말을 이어 쓰고 있다.
'참 흔한 얘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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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겪고, 남들보다 배로 반응하고, 남들보다 유난스레 굴고, 그게 난데. 사실 그게 그냥 나인데. 남들은 그런 나를 아무렇지 않게 바라봐 주는데 나만 나에게 참 빡빡하게 군다. 누구나 겪는 흔한 일들인데 나는 내게 너무 특별한 일처럼 유난을 떠는가 싶어, 저런 말 들 뒤로 숨었다.
‘알아 나도 이거 흔한 얘긴 거. 알아 너도 느껴본 적 있는 감정인 거’
내가 우스워지는 게 싫다는 이유로. 상처받기 싫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참 많이도 감싸고 숨기고 아끼고 포기했다. 용기 내야 할 순간이 더 많았는데. 여행이 길어질수록 곁에 있는 사람이 보였고, 곁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보였고, 그리고 다시 내가 보였다. 예뻐해 줘야 할 나를 보니, 다시 찾아야 할 사람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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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올라갈 용기가 생겼다. 일상을 다시금 마주할 수 있는 용기. 결국 이러려고 떠나오게 되는 건가 싶다. 떠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려주지 않아도, 이번 강릉에서도 착실하게, 여행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