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엄마가 일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이 좋았다. 학교를 다녀와서 문을 열면 엄마가 반겨주는 봄 햇살 같던 따뜻한 집. 나는 그 집의 따뜻한 온기가 좋았다. 그래서 나도 어른이 돼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일을 하지 않고 집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따뜻하게 반겨줘야지,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운 집을 만들어야지.' 중학생 때부터 어렴풋이 가졌던 꿈이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느긋하고 따뜻한 꿈과는 다르게, 나는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공부든 뭐든 다 잘하고 싶었다. 밤을 새워 공부해서라도 시험을 제일 잘 보고 싶었고, 체력장도 꼭 1급을 받아야만 하고, 모든 과목들의 수행평가까지 완벽히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아이. 아침부터 계획을 세워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보니 고 2 때쯤 고민이 생겼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일을 안 하고 집에만 있기는 아깝지 않나?'
물론 열심히 공부한 것들을 나중에 아이를 키울 때 써먹으면 되지만 그러기엔 내 마음이 2%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찝찝한 고민을 안고 고3이 되었을 때 좋은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내가 일하고 남편이 집에 있으면 되겠네!! 꼭 엄마가 집에 있어야만 따뜻한 집인 건 아니지, 가정적인 백수 남편을 만나면 되겠다!" 그리고 그날부터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나 백수랑 결혼할래!
엄마는 정말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몇 개월이 지나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 나를 보며 그건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생각을 바꾸지 않으니 그 이후에는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바뀌겠지' 하고 포기하셨던 것 같다.
물론 그 진지하고 호기롭던 계획은 나의 직장생활 일 년 차에 처참히 무너졌다. '안 되겠다. 남편이 일하고, 내가 집에 있어야겠다.' 그리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로 몸과 마음이 탈탈 털리면서 '아 집에 있는 것도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고민들에도 계속해서 바뀌지 않았던 건 우리 아이에게 내가 경험한 '따뜻한 집'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꽉 채운 육아휴직을 끝내고 어린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직장으로 다시 돌아갈 때 '나는 이 직장을 오래 못 다니고, 우리 아이에게 금방 돌아오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러 상황을 돌고 돌아 감사하게도 근무 시간이 짧은 직장을 찾게 되어, 우리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우리 아이에게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찬 집을 만들어주고 싶다. 내 커리어를 조금 포기하고 일하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아이의 소소한 일상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아이의 일상 속 풍성한 경험들과 순간순간의 감정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현모양처일 줄 알았던 나는 집안일도 요리도 잘 못하고, 정돈된 집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나중에 우리 아이가 어린 시절을 기억할 때, 우리 집을 봄 햇살 같이 따뜻했던 곳으로 기억하면 좋겠다. 그래서 힘들 때나 지칠 때 집을 떠올리며, 그 기억 한 조각으로 쉼과 위로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백수가 아닌 워커홀릭 남편과 결혼했다. 역시 사람일은 모르는 거다)
*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