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복희, 입원과 퇴원
야윈 얼굴로 복희가 오랜만에 강의실에 나타났다. 반장이 왔다며 수강생들은 복희에게 이것저것 묻고 난리가 났다.
“반장님, 지난번에 재국 씨가 한 말 때문에 서운해서 이제 온 거죠?”
“그 재국 씨가 뭐라 했는데요?”
“몰랐어? 글쎄, 반장이 이 수업을 듣는 동안 자신은 빠지겠다고 했다니까요.”
“허, 참 건방진 소리네.”
“그래서 재국 씨가 반장 앞에서 저렇게 어쩔 줄을 모르는 거야.”
재국은 복희를 힐끗 보며 미안한 듯 인사를 한다. 복희가 못 본척하자, 다시 한번 목례를 하며 복희의 눈치를 본다. 복희는 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어, 고개를 숙여 입을 손으로 가린다. 재국은 더듬더듬 “안녕하세요?” 하고 고개를 숙인다. 복희는 눈 마주추기가 어색하여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재국은 더 가까이 와서 “안녕하세요?” 쑥스러운 듯 말만 간신히 하고 휙 돌아선다.
강사와 길순, 학생들은 모르는 척하며 고개를 돌리고 웃는다.
어색함을 느꼈던 재국은 선생님을 보자 인사를 공손하게 하며 “오늘 제 친구가 도착하면 사무실에 등록시키고 수업 동참해도 되지요?” 하고 물었다.
재국은 목이 빠져라 입구 쪽을 쳐다보다가 두리번거리며 오는 성욱이를 보았다.
“성욱아, 여기” 하며 손을 흔들었다.
“정말, 너니까 어쩔 수 없이 등록하는 거야.”
“나도 마술반 너 때문에 등록했으니, 피장파장이다.”
“여기 복지관 재미있어. 예쁜 할머니도 있고, 미운 할머니도 있고, 매력적 누나도 있고. 재미있게 지내자.”
“그래! 이 옷 너무 초라하지 않아? 너무 점잖지?”
“아니, 세련되고 멋있어. 이러다가 너만 좋아하면 큰일인데.”
재국에게는 이제 자기편이 생긴 거였다. 성욱이 자기를 이해하고 지지해 줄 것임을 믿고 재국은 싱글벙글하며 성욱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왔다.
강사는 재국에게 친구 소개를 부탁했다.
“친구 이름은 박성욱이고 고등학교 친구인데, 정년퇴임한 물리학과 교수예요. 냉철한 이성적 머리로 어떻게 감성적 소설을 이해할지, 끝까지 수업은 잘 따라 할지 걱정이 많이 됩니다.”
“박 성 욱입니다. 저는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하고 학교 수업시간에만 간신히, 점수 때문에 읽었습니다. 많이 읽지도 못했어요. 그렇지만 친구 따라 강남 왔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길순이가 말했다. “여기는 강북인데.”
성욱이가 말했다. “네, 제가 제비입니다. 공학도라도 그 정도는 압니다.”
잘생기고 멋있는 친구를 데리고 온 재국은 들떠있었다. 이제 나도 친구가 생겼다. 내 패를 시원하게 깔아보겠다고 다짐했다.
여기는 유치원이다. 재국은 딸이 이혼하자, 집을 딸과 함께 합치고 외손녀 리라를 돌봐주고 있다. 좀 늦게 유치원 하교시간에 도착하였지만 리라는 없었다. 재국은 정신없이 리라를 외치고 다녔다. 교사는 좀 전에 나갔다고 하고, 재국에게 멘붕이 왔다. 유치원 놀이터와 마당을 휘 접고 다니며 정신없이 찾아본다. 동네 마트에고 가본다.
“안녕하세요? 우리 리라를 보았나요?”
“아~ 매일 같이 다니던 손녀딸이요? 오늘은 못 보았는데···.”
“글쎄, 내가 좀 늦게 유치원에 도착했더니, 없어졌네요.”
“찾아보세요. 저기 창고 뒤쪽도 보시고요.”
“(애타게) 리라야, 리라야! 어디 있어? 할아비 속 터진다.”
“(많이 듣던 목소리, 고개를 갸우뚱하며) 재국 씨? 무슨 일이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아~ 복희 씨군요. 손녀딸 리라가 없어졌어요.”
“마지막 본 사람은요? 어디서요?” 복희는 정신없이 물었다.
“마지막 본 사람은 유치원 선생이고, 유치원 입구에서 인사하고 헤어졌데요.”
“너무 애태우지 마세요. 찾을 수 있어요.”
“(태연한 복희 씨 말투에) 네!? 어떻게 찾나요?”
“유치원으로 어서 가요. 거기서 시작해요.”
“(펄쩍 뛰며) 먼저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들은 유치원 잠깐 들렀다가 못 찾으면 그때 신고해요.”
“우리들? 우리들이라고요?”
“별 뜻 없어요. 애타게 찾는 마음은 같다는 뜻이에요.”
“별 뜻이 있으면 좋겠는데. 딸한테 연락할까요?”
“딸한테는 연락하세요. 잠깐 유치원 근방만 찾아보고 경찰서에 신고한다고요. 그리고 이 상황에 농담이 나와요?”
초등학교 교사였다가 정년퇴임한 복희는 자기 일처럼 적극적이다. 학교에서 숨어버린 학생들을 찾았던 경험들이 생각났다.
“여기서 헤어졌단 말이죠? 바늘귀 하나라도 찾는 심정으로 찾아봐요. 저 실습용 토끼굴이 수상한데요.”
재국은 무릎을 구부리고 고개 숙여 토끼 굴을 한참 쳐다본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굴속에는 흰 토끼 몇 마리가 숨어있었다.
“너무 쉽게 찾으면 재미가 없지요. 아이들 심리를 아니까 곧 찾을 수 있어요. 저 개집이 아무래도 수상한단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