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새로운 시작이다.
무엇을 쓸까?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소설에서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작가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작가는 응어리진 상처와 고통, 행복과 불행, 유토피아 등을 버무려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아놓는다. 내 안에 꿈틀거리는 무엇인가를 내놓기 위하여 여러 장르 가운데 나는 소설을 택했다.
소설의 제목은 ‘말숙의 하루’이다. 말숙을 중심으로 주인공 둘이 더 있으니 곧 세 가정의 이야기이다. 겉으로는 세 가정 모두 행복해 보였지만 가정마다 숨겨진 비밀이야기가 있었다. 말숙은 아파트 10층에 살면서 같은 라인의 경희와 옥희를 알게 된다.
처음 집을 보러 온 날, 베란다 앞의 작은 숲에 정신이 뿅 간 말숙은 시세보다 비싼 집값을 계약했음에도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다. 베란다 바로 앞에는 아카시아나무 그 뒤 언덕을 오르면 오래된 상수리나무 소나무 단풍나무가 울창하게 서있다. 숲에는 고라니 두 마리가 살고 있었고 눈 오는 날에는 청설모가 숨겨둔 도토리를 찾아 입에 볼록 넣고 나무를 오르는 것도 다 보였다. 얼마 전에는 새끼 고라니까지 세 마리가 보였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집중에서는 최고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아 불편함이 없었고 아파트가격도 시세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흠이라면 큰길에서 10분 걷는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관리실에서 고쳐 주웠고 그때 바로 위 11층에 살던 경희를 알게 되었다. 둘은 가끔 만나 동네에서 운동도 하며 식사도 같이 하는 친구가 되었다. 아파트 둘레길을 걸으면서 9층에 사는 가희를 알게 되고 소설 내용은 풍부해졌다.
‘말숙의 하루’는 처음에는 말숙 가족과 일상 삶의 순간들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경희와 가희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의 폭이 차쯤 넓혀진다. 개인에서 주변이웃, 사회, 정치와 세계정세로 대화가 번지면서 말숙의 일상은 다채로워진다. 셋이 친해지면서 서로의 비밀이야기를 터놓게 되었고 그들은 모두 어떤 상처를 입고 있음을 알았다. 부모님의 딸이었고 자녀들의 엄마였던 그들이 나이가 듦에 자신을 찾아가면서 행복해 보이지만 그들은 사실 아픈 상처를 부여안고 끙끙되고 있었다. 그것도 몇십 년 동안을.
평범해 보이지만 행복하면서 불행한 가족이야기, 과거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가족끼리 상처를 주고받는 이야기, 상처를 극복하려는 노력 등 가족들의 숨겨진 비밀 이야기가 전개된다, 고민하면서 그들은 결국 1차적 결론을 내렸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상처라는 것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누구의 잘못이라 말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상처가 영광이라면서 그들은 결국 누구의 상처가 가장 큰가를 내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