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꿈이 있다면 목마름을 채울 수 있을 텐데
매주 토요일에 말숙은 봉사하는 곳으로 간다. 초등학생 몇 명을 가르친다. 논술, 역사, 사회, 국어 거의 전 과목이다. 학생 중에는 남매가 있었다. 엄마는 암으로 돌아가셨고 아빠는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떨어져서 누워있었다. 남매는 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가끔 시집간 고모가 그들에게 옷도 사주곤 한다. 세 살 더 먹은 누나는 자신의 현실을 이해하고 남의 눈치를 보며 도움을 받고 이겨나가는 편이었다. 살아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남동생은 적당히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누나만큼 살갑지도 못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분노가 쌓여있었다.
할머니가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생계를 이루고 있다. 손주들이 말을 듣지 않을수록 엄하게 키웠다. 동네 요양원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피곤할 텐데 쉴 새도 없이 저녁을 챙기고 집안일을 한다. 할머니가 기둥이었다. 다리 아픈 아들이 속상해하면 달래주었다. 손주들은 할머니 말을 무서워했다. 그녀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손주들의 책과 학용품들도 할머니가 사주었고 배우는 데에는 돈을 아낌없이 써주었다. 손녀의 이름은 희수이고 동생은 희석이었다.
말숙은 요즘 희석의 수업태도가 더욱 불성실함을 느꼈다. 그가 첫 수업 시간에 한 말이 생각났다.
“희석은 이해를 참 잘하는구나. 꿈은 있는지 궁금하네.” 말숙이 웃으며 물었다.
“꿈은 있으나 내용은 말할 수 없어요.” 희석은 초등학교 1학년이지만 함부로 말하지도 않고 나름의 기준이 있는 야무진 아이였다.
“내용은 다음에 말해도 괜찮아. 꿈이 있으면 어려움을 이길 수도 있으니까. 아까 보니까 물구나무서기 잘하던데.” 말숙이 다음 말을 이어갔다.
“보여드릴게요.” 묻지도 안 했는데 희석이 답했다.
“와, 자세가 반듯하고 흔들림이 없네. 희석이 참 멋있다.” 말숙은 박수를 쳐주었다.
이렇게 긍정적 아이였는데, 오늘은 세상만사가 귀찮은 듯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희석아, 뭐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 오늘은 저기압이네.
“선생님, 저 꿈이 사라졌어요. 꿈을 잡을 기분이 나질 않아요.”
“왜, 지금이라도 다시 꿈을 잡아볼까?”
“잡기 싫어요. 이루어지지 않을 거니까요.”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니까, 잡아나 보자. 이루어질 수도 있어.”
“싫어요. 아빠도 싫고 할머니도 싫고 누나도 세상도 다 싫어졌어요.”
“희석이가 힘이 빠지면 나도 힘이 빠지는데.” 말숙이 말했다.
“우리 아파트 뒤쪽으로 한번 뛰어갔다 올까?” 말숙은 아이들을 데리고 뒷산으로 갔다. 아이들은 수업이 없다고 좋아하며 따라왔다.
희석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다. 엄마의 부재, 그것은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었다. 아빠와 할머니와 고모가 아무리 잘해주어도 그 빈자리와는 견줄 수 없다. 지금의 희석에게 엄마는 세상이요. 그의 모든 것이다.
희석아! 너의 허기진 배를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는 것은 꿈이란다.
잃어버린 너의 꿈을 찾아보자. 꿈은 너의 생명줄이란다.
아무도 너를 버린 것이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