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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숙의 하루

2. 남편과의 화해

by 한평화

남편이 한 밤중에 일어나서 라면을 끓인다. 딸그락딸그락, 남편은 다시마를 찾고 양파를 넣어 맛있게 먹는다. 복희도 한 입 좀 먹자며 젓가락을 챙겼다. 남편은 거의 반절을 덜어주었다. 부족했던지 밥통에서 밥을 라면에 섞어 먹었다. 잘 익은 김치는 빠질 수가 없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이가 좋았던가.


복희는 생각했다. 라면 한 개를 끊여 맛있게 먹었던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라면 먹다가도 싸우고 밥 먹다가도 싸웠다. 잠자다가도 싸워 베개를 들고 현관에서 잤으니까. 솔직히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오늘 하루만을 살고 내일 이혼하겠다고, 간신히 지탱하며 살았다. 하루하루가 쌓여 이런 날까지 온 것이었다.

결혼 후, 직장 다니다가 정애라는 친구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점심 식사 후 잠깐 사이에 남편 흉을 많이 보았다. 그나 나나 남편은 가부장적이고 욕을 잘한다는 공통점도 알게 되었다.

정애가 말했다. “퇴근하여 저녁밥 챙겨주고 간신히 쉬려 하는데 커피까지 타 달라고 하니 머리가 돌더라고. 똑같은 맞벌이 부부인데 누구는 편히 쉬고 누구는 상대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것이 형편성이 안 맞다고 생각했어. 이 자식아, 그렇게 살면 안 되지 하며 내 침이나 먹어라 했어. 남편의 커피에 침을 뱉고 스푼으로 잘 저어서 주었지. 맛있게 잘 마시더라고.”

우리는 웃었다. 100% 공감은 했으나 뒷맛은 씁쓸하기도 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우리도 당당히 살아 정의로운 이야기를 하자, 하고 헤어졌다.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해 주는 남편이었다면 우리는 그런 행동을 안 했을 것이다. 아내들은 진정한 수평적 평화를 원했으나 남편들은 과거의 지루한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아내의 성질을 돋우는 일은 참으로 어리섞은 행위이다.


복희의 가정에 지금껏 찾아본 적 없는 행복이 찾아왔다. 자녀 문제를 다 내려놓은 것이다. 걱정한다고 좋아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일들은 자녀만이 해결할 수 있는 자녀의 문제였다.

복희 부부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문 분! 문제들을 분류하고 나누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나누어 내가 책임질 것만을 책임지는 것이다.

문 분을 하면 일이 간편해지며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길은 있었다.

항상 큰소리치고 잘난 척했던 남편이 어찌하여 이렇게 달라졌을까? 생각해 본다. 심장수술로 인하여 담배를 끊게 되어 머리가 맑아지게 되고,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된 것이었을까? 복희의 내조도 남편이 새사람이 되는 길에 한 몫하였다.

사랑하기 전에 이해를 먼저 하자고 생각했다. 사랑은 이해 후에 온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환경을 이해하자고 생각했다.

그가 소리칠 때마다 “그래 착한 아가, 아가도 많이 힘들었겠구나.”라고 실제 말했다.

남편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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