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고등학교 동창
말숙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떠들고 웃고 떠났다. 화숙과 말숙이 남았다. 화숙이 웃으며 곁에 왔다. 화숙 부부사이가 가장 힘들다고 소문은 나 있었다.
화숙이 말숙에게 물었다. “너도 부부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어떻게 좋아졌어?
“나는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내가 죽일 수는 없으니까 교통사고라도 나서 세상에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랐어.”
“나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했어.” 화숙이 말했다.
“분노가 가슴에 가득 차 있어 다른 방법이 없을 때, 그랬어.”
“그러다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지. 왜?”
“어느 날, 그가 불쌍해지기 시작했어. 심장수술을 받은 후였지. 의사선생이 담배 피우면 바로 죽을 수도 있다고 했지. 거의 50년을 피워왔었으니까.”
“끊었어? 힘들었겠다.”
“어디서 담배냄새가 나면 미치겠다고 하면서도, 살고는 싶었든지 열심히 운동하고 끊었어. 과거에는 죽는 것이 뭐가 어렵냐고 했었는데, 말짱 도루묵이었어. 지금은 삶의 의지가 더 생겼어.”
“사람이 변하려면 어떤 계기가 필요하네.”
“계기가 오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계기 없이도 좋게 변하면 좋은 일이지.”
“요즘 나는 ‘부긍통’을 사용해.” 화숙이 말했다.
“처음 듣는 말인데?”
“부정 긍정통의 약자지. 부정을 긍정으로 만드는 통이야.”
“어떻게 이용하는데?”
“저금통처럼 상자를 하나 만들어 ‘부긍통‘이라고 크게 쓰지. 남편이 부정적 말을 할 때, 통을 내밀며 돈 만원을 넣으라고 해.”
“남편이 잘하고 있어? 너는 부정적 말을 안 할 것이고.”
“처음에는 어려웠어. 그래도 말없이 통을 내밀어. 말은 안 하니까 싸움은 없고 남편도 귀찮은지 만원을 통에 넣어.”
“와, 성공했네. 부정적 말은 좀 줄었겠네.”
“돈이 아까워서 그러기도 하겠지만 부정적 말이 많이 줄어서 수입이 적어졌어.”
“하하, 호호.”
“나는 나이가 먹는 것이 좋은데, 너도 그렇지?” 말숙이 물었다.
“좋은 것이 훨씬 많아. 사는데 애걸복걸 안 하지, 조금 부족해도 넘어가지.”
“할머니가 되어서 그런지 모든 일에 많이 너그러워졌어. 좀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
“그렇지. 마음이 평안해. 일단 경쟁에서 물러났지. 싸울 일도 없어지고.”
“욕심도 없어지고, 먹고 싶은 마음도 좀 없어졌어. 너도 그래?”
“우선 소화를 못 시키니까, 적게 먹어.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어.”
“어떤 때는 먹는 맛이 없어져서 좋고, 또 먹는 맛이 없어 사는 맛도 줄어들고.”
“사는 맛도 다시 만들어야겠어. 먹는 일 말고 다른 일에. 음악을 많이 듣고 있어.”
“클래식을 고집했는데 가끔 트로트도 잘 들어. 삶의 고뇌가 직방으로 전해와.”
“맞아, 트로트는 ‘사랑이 저만치 가네.’라고 거르지 않고 표현한다면, 시는 ‘개여울에 홀로 앉아.’라고 에둘러서 노래하지.”
“맞아, 김소월의 개여울, 좋지.”
“우리 좋은 음악도 많이 듣고 시 감상도 많이 하자.”
“그래, 우리 언제 만나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볼까?”
“좋지, 용산에 있는 국립박물관 시간 나면 서로 연락하자.”
말숙과 화숙은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