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숙의 하루

10.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by 한평화

일주일 넘게 단종 앓이를 했다. 영화가 끝나자 가슴이 멍하며 단종의 일생이 눈에 밟혔다. 집 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세종대왕 아버지는 문종, 단종은 완전한 도덕성과 정통성을 함께 승계한 왕이었다. 한글을 창제한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정사를 같이하며 측우기를 발명한 아버지 문종, 영특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단종이었다. 그러나 아버지 문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세력이 강했던 숙부 세조가 왕위를 무력으로 강탈하고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세조는 사육신처럼 단종 주위 사람들을 죽이거나 모두 유배지로 보냈다. 큰할아버지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도 도와주지 않았고 세조의 행위를 묵인했다. 단종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1살 때 어머니가 죽고, 6살 때 할머니가 죽고, 10살 때 할아버지 세종이 죽었다.

12살 때 아빠가 죽었고, 13살 때 계유정난을 맞았고 15살 때 상왕으로 밀려났다.

12세에 즉위한 단종은 16세에 강원도 영월 유배지로 쫓겨났고 17세에 죽었다.


이 영화는 언뜻 보면 권력을 가진 자가 힘없는 자를 짓밟는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다. 16세의 무기력한 단종은 영월 청령포로 유배 와서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자살을 시도한다. 영월 관아의 관리였던 엄흥도는 가장 가까이에서 단종을 보필하는 인물이다. 그가 절벽 끝에서 떨어지려는 왕을 구해준다. 놀란 엄흥도는 어버이의 마음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단종을 혼내준다. 왕은 왜 나를 구해주는가를 물었고 엄흥도는 우리도 잘살고 싶었다며 죄지은 조정 관리들의 유배지로 선정되기 위한 그동안의 노력을 말한다.

유배지에 오는 대신에게 글공부를 배우고 나라의 관리가 되어 마을을 잘살게 하고 싶었다는 말을 듣는다. 확실히 한국의 교육은 조상 때부터 유별났다. 왕과 백성의 벽은 조금씩 허물어진다. 배우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남녀노소 차별 없이 글공부를 시작한다. 왕과 민초가 배우면서 소통하고 웃음 넘치는 행복한 나날이 잠시 이어진다.

왕은 백성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왕은 삶의 태도가 달라지며 눈동자에도 힘이 생긴다. 약방의 감초였던 엄흥도의 익살은 슬프면서도 웃음을 주었다.

왕과 백성이 함께 즐기고 있을 때, 백성을 덮치려 하는 호랑이가 산에서 나타난다. 모두 겁먹고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왕은 목숨 걸고 활을 쏘아 코앞까지 닦아온 호랑이를 쓰러뜨린다. 땀을 흘리며 지켜보았던 백성은 왕과 혼연일치가 되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왕은 자신의 백성을 위하여 목숨을 던질 때, 비로소 왕이 왕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단종에게는 백성이라는 자신이 돌보아야만 되는 어여쁜 백성이 생긴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신을 포기하고 세종의 횡포에 억눌리며 살았던 수동적 태도에서 이제는 백성을 적극적으로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할아버지가 왕이었고 아버지가 왕이어서 저절로 왕이 되었으나 이제는 내 뜻대로 살겠노라며 금성대군 숙부에게 편지를 쓴다. 거사에 가담하겠다는 뜻이다. 거사에 성공하면 좋고 실패한다 해도 백성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 일이니까 괜찮다는 뜻이다.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며 결연의 편지를 쓴다.

야속하게도 거사는 실패했다. 지략가인 한명회는 금성대군과 단종의 주위를 일찍이 예의주시하였다. 금성대군 노비의 밀고로 계획이 발각된다. 한명회는 산 위에서 단종의 움직임을 지켜보았고 단종과 금성대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패했다.


악한 자와 선한 자와 싸울 때 보통 악한 자가 더 많이 준비하고 이긴다. 선의 사람은 도리가 아니다 싶으면 쉽게 지치고 일을 접는다. 악의 사람은 이기려고 더러운 방법과 수단을 모두 동원한다. 자신이 착하다고 생각하는가? 착하다면 약하면 안 된다. 진정한 착함은 강함에서 나온다고 한다. 힘이 없는 친절은 주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착하다면 그만큼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좀 착하다고 하는 편이니까 실력을 쌓고 강해져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엄흥도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우리는 영웅의 희생은 거절하면서도 영웅을 꿈꾸고 그리며 살고 있다. 목숨을 내걸고 단종의 시신을 묻어준 엄흥도, 그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동강에 앉아 물장구치는 어린 단종과 동강에 떠있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엄흥도가 한 장면으로 이어 나왔다.

엄흥도는 “옳은 일을 하고 화를 당하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며 동강에 떠있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다.

나는 참 비겁하게 살았다. 그래, 바른말을 할 때는 하자. 뼈 때리는 말도 해보자. 나는 물렁하게 살아왔다. 엄흥도 같은 영웅을 새로이 만났으니 가슴이 꿈틀거렸다.

장항준 감독의 말이 생각난다. 관객이 2000만이 넘으면 안 된다. 뒤에 있는 한국 영화들이 있다. 영화인이 골고루 잘 살아야 한다. 골목에 한 집만 번성하는 것은 그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 영화계를 위해서 골고루 잘 되어야 한다. 동료 영화감독들이 좋은 영화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저와 제 동료들이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면서도 엄흥도와 비슷한 사람이 과거에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숨 걸고 시신을 수습하는 엄흥도가 있다면, 목숨 걸고 자기 무덤을 내주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있었다. 요셉은 지금부터 2000년 전 로마가 세계를 통치한 시대의 로마 공회원이었다. 공회원은 지금의 국회의원보다 권력이 더 센 자리이다. 요셉은 자신의 신분상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예수의 시신을 수습했다. 엄흥도가 한밤중에 시신을 묻었다면, 요셉은 시퍼런 대낮에 빌라도에 가서 예수를 장사 지내겠다며 시체를 요구했다. 그 후 요셉은 오랫동안 감방에 살았다. 빌라도는 주기도문에 나오는 그 유대의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이다. 우리는 권력에 따르는 다수를 한 부류로 뭉뚱그려 구석에 쑤셔둔다. 그러나 양심에 따르는 소수는 소중히 가슴에 새긴다. 그런 사람이 세상을 만들고 우리는 살맛 난다고 말한다. 주위의 억울한 일, 작은 일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산악인 엄홍길이 엄흥도의 후예는 아닌지 생뚱맞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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