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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평화 Oct 04. 2023

8. 대중교통을 타면 생기는 일

자리 양보 (1)

여기는 경기도 용인시 남쪽 변방이다. 

오늘은 서울에서 친구를 만나 좋아하는 글에 관한 수업을 듣는 날이다. 매주 한번 가지만 갈 때마다 마음이 설렌다.


마을버스를 탔다. 노안으로 눈이 자꾸 침침해지니까 몸도 따라 기가 빠지고 아침부터 피곤했다. 어떤 아가씨가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고마웠고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두 세 정거장이 지나갔을까, 시린 눈을 떠보니 그 아가씨가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 그는 한쪽 다리를 저는 것이었다. 저 다리로 어떻게 아플 텐데. 나에게까지 자리를 양보해 주다니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그의 수수하고 평온한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그대여, 그런 마음과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승리할 것이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오늘 보낸 양보는 배가 되어 돌아올 것이네.

나도 생각날 때마다 그대를 응원할 것이네.


오늘은 참 다채로운 날이다. 비슷한 또래의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탔다. 마침 빈자리가 있어 앉았다. 

저쪽에서 한 여학생이 내 앞에 서더니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나는 갈 길이 멀었는데도 아까 다리 아픈 그녀가 생각나서 자리를 양보했다.

나는 자연히 양보한 자리 앞에 서있었다. 갑자기 지하철이 덜컹거렸다. 내 몸이 잠시 그녀 앞으로 흔들렸다. 그러자 그녀가 갑자기 자동적으로 나를 세게 미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계속 신사역까지 서서 가려고 했는데, 야속했다. 


한편 나는 매몰찬 젊은 그녀를 이해하고 싶었다. 얼마나 지하철에서 시달렸겠는가.  그녀는 나름대로 지하철에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을 것이다. 

그래, 당하지만 말고 이상한 사람이 오면 그렇게 밀어, 그렇지만 나는 아니잖아. 

책을 읽는 그에게 좀 섭섭했지만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스스로 위로하며 수업 현장으로 들어갔다. 


수업 후 집에 가는 지하철이다. 나보다 연세가 있어 보이는 백발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고 계속 서서 갔다. 서서 보니 앉아있는 젊은 여인의 수첩에 몽골글자가 저절로 보였다. 그녀는 수첩을 가방에 넣더니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계속 서서 가는 그녀와 앉은 나의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웃었고, 나는 그녀에게 양손 엄지 척을 해주었다. 몽골여인의 웃음에서 한국 문화를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양보 문화를 주고받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젊은이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그들의 심리와 당면한 처지를 알아보고 가능하면 그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양보한 그녀도 매몰찬 그녀도 힘든 현대를 살아가는 방식이 틀릴 뿐이다.

내 딸을 이해하고 사랑하듯이 비슷하게 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내가 가까이 가면 그들은 고슴도치가 되어 나를 밀어낼 것이다.


내가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보듯이 그들도 내 행동을 볼 것이다.

이제 어른처럼 제대로 행동해야겠다. 자리를 받지만 말고 주기도 해야 한다. 

지하철에서 어느 상황이 오든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다. 

어른 노릇이 어렵겠지만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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