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팬에서 나와 불속으로?! 08.
서울시 50 플러스재단/캠퍼스/센터는 인생 전환기를 준비하는 서울시 중장년 세대를 위해서 일자리, 경력설계, 직업교육, 사회참여를 지원해 주는 곳이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이런 기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후에 관심을 갖고 1:1 컨설팅도 받아보고, 직무기술서 첨삭지도도 받아보았는데 유용했다.
다음 커리어를 찾는 여행 <경력설계 트립(T.R.I.P)>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일과 경력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던 나에 대한 이해와 제2의 경력대안에 대한 탐색 기회가 되었다.
명함이 없이 지내는 시기에 겪었던 불만족스러움과 불안함의 원인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한국인은 사회적 정체성(회사, 직책, 직업, 학교, 가족 등)이 자아정체감의 2/3나 차지한다는 강사님의 설명에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남들처럼’, ‘남들보다’를 생각하며 ‘경력의 사다리’를 오를 것이 아니라 ‘남들과 내가 다른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커리어 모자이크’를 만들어 가라는 강사님 말씀에 큰 여운이 남았다. 수평적 성장을 토대로 다양한 커리어를 가꾸어가고, 깊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멀리 조망해서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 인생시계로 계산해 보면 아직 정오 12시에도 도달하지 않은 한창 일할 시간이라는 것에 용기가 생겼다.
진단도구 ‘커리어 앵커’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커리어나 직업 선택에 있어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경향성을 의미하는데, 역량/동기/가치를 중심으로 자기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커리어상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자신의 강점과 미래에 요구되는 역량 간 간극을 찾아 필요한 역량을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특히, ‘사람책과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은 전직 대기업 임원 출신의 퇴직자의 강의를 직접 듣고 질의응답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루에 2명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는데, 너무나 주옥같은 말씀들이었다.
# 경험은 결코 늙지 않는다 : 나는 기존에 내가 쌓아온 경험이 유용하지 않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서 속상했었는데, 이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다.
# 과거의 나에 집착 안 한다. 세상이 만만치 않다. 내려놓아라 : 이 말씀 역시 나한테 너무나 필요한 말씀이었다.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 100% 좋은 것도 100% 나쁜 것도 없다 : 이 이야기는 내가 처한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기왕이면 좀 더 긍정적인 면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살아남는 것이 경쟁력이다. 자신감, 집중력, 배려, 열정을 가져라.
# 실패 경험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실패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 전문성과 고유함을 갖춰서 대체 불가한 사람이 돼라.
# 퇴직 후에 필요한 것은 두꺼운 얼굴과 체력이다.
# 길은 만들면서 가는 것이다.
# 잘한 선택인지 아닌지는 가봐야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기업 임원까지 하셨던 분 역시 퇴직 후에는 좌충우돌하며 적응 중이시고, 소소한 아르바이트 일자리마저도 감사한 마음으로 경험해 보려고 하신다는 말씀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무언가 좀 더 열심히 해 보아야겠다는 의지에 불씨가 던져진 날이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박차고 나와 좌충우돌했던 1년 남짓의 시간, 정들었던 일터와 동료들에게서 떠나 프리랜서 코치로서의 삶을 살아봤던 시간에 대한 평가를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좋고 나쁨을 떠나서 나는 시스템 안에서 일할 때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고 성취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