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친구
* 해당 글은 실제 있을 법한 일을 허구로 구성한 글입니다.
오늘은 승진 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동기형이 승진을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형자리로 향한다. 내가 걸음을 옮기기 전부터 다른 사람들이 민원대에 앉아있는 형을 둘러싸고 있었다.
"김주사 축하해. 그동안 마음고생 심했을 텐데."
"아휴 요번에는 저도 긴장 좀 했네요. 감사합니다."
"축하해. 잘됐네. 순리대로 됐네."
"감사합니다. 아유 주사님이요 잘 챙겨주셔서 그런 거죠."
비슷비슷한 말들이 오고 간다. 시상식에 한 장면 같은 것을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본다,
-다들 고마워.-
동기 메신저방에서 형의 메시지가 올라온다. 기분이 묘하다. 이번 승진에 나는 어림없는 순번이었고 형은 승진할 할 순번이었다. 오늘 발표가 나기 전까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축하를 받고 있는 형을 보니 지금 상황이 의식이 됐다.
여기서 너무 호들갑 떨면서 축하하는 것도 이상할 것 같고. 타이밍 놓쳐서 가만히 있는 것도 이상할 거 같았다. 외교 행사나 협약을 맺는 것처럼 또는 공무원이 현수막 들고 파이팅이나 손가락 하트로 사진 찍는것마냥 잘 모르고 어색하지만 아무튼 축하를 하면 될 터였다.
'의식하지 말고 완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를 한다. 그냥 축하'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형은 다른 선배와 얘기 중이다. 그 둘은 각자 준비해 둔 너스레를 떤다.
“내가 다른 곳에도 다 좋게 말해주고 주사님 PR을 얼마나 해줬는지 알아요?”
“아유 감사합니다. 주사님 덕을 제가 많이 봤네요.”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그런 건 거의 없었어요. 김주사 껄껄.”
“에이 그렇게 말씀하셔도 잘 알아요. 제가 형님 덕을 많이 봤죠. 하하하.”
하하하. 영양가라고는 전혀 없는 대화가 끝나고 시작된 신사들의 웃음 시간이 끝나면 드디어 내 차례다. 내가 너무 지금 내 감정을 의식하는 걸까. 아니라 이 감정을 의식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거 아닐까?
지금의 나는 어떤가?
안 비굴하면 어쩌고 비굴하면 어쩌고 그렇다고 순순히 축하해 주기에는 목에 가시가 약간 걸린 거 같았다. 점심 구내식당에서 나온 고등어를 뼈를 잘 발라내지 못하고 먹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형. 승진했네. 축하해."
"그래 고맙다. 용원아."
잠시 침묵. 눈빛 교환. 나도 어색하고 형도 어색하다. 우리들(그러니까 나와 형 모두) 인생이라는 게 승리보다는 패배에 익숙했다. 지금 형은 내 앞에서는 환하게 웃지를 못하고 입꼬리가 찔끔찔끔 올라가고 있었다.
이런 때는 역시나 먹는 얘기다!
"우리 또 뭉쳐서 한잔해야지. 형 승진턱도 쏘고."
"아이고. 그래 뭐든 쏘지. 얘기만 해? 어디 갈까? 다음 주에 우리 애들 톡방에는 일정 곧바로 잡자."
"와 형 이제는 우리 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네. 이거 어떻게 수행이라도 붙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시답잖은 농담을 던진다. 찜찜해. 솔직히 말해서 정말 솔직히 말해서 순순히 축하해 주기는 어렵다. 마음이 복잡하다. 안 좋은 쪽으로. 순수하게 축하를 못하는 내가 창피하기도 하고 이게 뭔 장관이 되는 것도 차관이 되는 것도 정승이나 판서가 되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되려 비웃을 것 같은 일인데.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이 감정을 미약하게나마 붙잡고 있다.
“미안. 지금 전화가 와서.”
형은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기를 들고 달려 나간다. 작은 용기를 냈던 나는 다시 내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퇴근 전까지 팀장님과 과장님이 괜히 내 옆으로 와선 어깨를 토닥거리고 갔다. 마치 누군가 지금 우울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퇴근. 하필이면 오늘 나는 형 옆자리에 차를 댔다.
“형 오늘 정말 축하해. 그리고 내일 보자.”
“그래. 고맙다. 내일 보자. 다음 주에 애들하고 저녁 같이 먹고 술 한잔 해야지.”
“그거 좋지. 형 하고는 오래간만에 꼭 한잔하고 싶어.”
이건 정말 정말 진짜로 하는 말이었다.
“하하. 알겠어. 그래. 그래. 다음 주에 꼭 시간 낼게.”
형이 내 말에 웃었다. 나는 메신저방에 여론을 유도해서 형이 꼭 비싸고 맛있는 걸로 저녁을 쏘개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퇴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