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프로젝트

주제: 일로만난사람들

by 드래곤실버

*해당글은 실화를 각색한 글입니다.


“에이 뭐 그런 걸 걱정하고 그래.”


민원대 내 옆자리에 신규공무원인 그녀가 내게 말했다.


“아니 어려울 텐데?”


자신만만한 그녀의 표정. 나는 약간 못 미더웠다. 내 입장에서는 분명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나는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그 프로젝트는 이름하야 ‘히딩크 프로젝트’이다.


히딩크 프로젝트란 2002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한 히딩크호의 주요 정책인 존댓말 금지에서 크게 감명을 받은 내가 멋대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이다.


"홍명보 형님 이쪽으로 공을 주세요." 하고 있다가는 한 세월이 지나가 버린다는 것이다. 이게 요점이다.


우리 민원대 필드플레이어 간에는 서로 말을 편하게 해야 소통도 잘되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는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동료들과는 말을 편하게 하고 싶었다. 내가 94년생이기 때문에 대략 90년대생까지를 기준으로 잡았다.


맨 처음 프로젝트의 대상은 업무가 바뀌면서 내 자리에 후임으로 온 신규인 친구였다. 그는 99년생으로 나보다 5살이 적은 친구였다.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그 기회가 잘 오지 않았었다. 둘 다 내향적인 성격이라서 더 어려웠다. 몇 달이 지나고 과 회식을 했던 날 술이 몇 잔 들어갔을 때 나는 그에게 말을 편하게 하자고 제안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형 동생이 되었다. 인생에 드문 생산적인 회식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00주사님 안녕하세요."


나는 그에게 무심결에 존댓말을 써버리고 말았다. 내가 그렇게 말을 하니 그 또한 나에게 존댓말을 했다. 서로 말을 편하게 하겠다는 상호조약이 한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걸 다시 돌리는 데는 다시 몇 달이 걸렸다.


다음 기회에 나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 나는 다짐했다.


그 후로 나는 말을 편하게 한다고 하면 정말 이를 악물고 말을 편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나도 이 문장을 쓰면서 굉장히 모순적인 문장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말을 편하게 한다고 하고 다시 존댓말을 하게 되는 비극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나는 이를 악물고 말을 편하게 한다.


두 번째는 그다음 새로 온 신규 2명이었다. 남자 1명, 여자 1명인데 남자는 나보다 동생이고 여자는 나보다 누나인데 워낙 외향적인 누나라 도움을 많이 받았다. 원래 계획은 1명씩 말을 놓는 것이었고 남자 쪽 먼저 말을 편하게 하려고 했었다. 내가 저녁을 쏘고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내 히딩크 프로젝트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서로 말을 편하게 하자고 한다. 이게 내 계획이었다.


"그래? 그럼 용은아 나랑도 말 편하게 하자."


내가 히딩크 프로젝트에 대해 말하니 누나가 그럼 자기랑도 말을 편하게 하자고 했다. 그렇게 1+1으로 우당당탕. 만족스러웠다. 이렇게만 갑시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내 옆자리에 오게 된 신규 공무원이 대상이었다. 원래대로라면 5개월 6개월 이상의 숙려기간이 필요했지만 어쩌다 보니 히딩크 프로젝트가 가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호칭이었다. 지금까지는 동생-형, 누나 정도의 호칭으로 해결이 되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오빠라는 호칭이 나와야 하는데.


이상하지 않나?


나는 속으로 호칭을 생각해 봤다. 내 이름에 쌤을 붙여서 용은쌤이라고 부르거나 주사님이라고 부르고 말을 편하게 한다던가 그런 게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사건 당일


"안녕."


나는 세상 옹졸하게 손을 약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그 광경을 보고 웃고. 뭐 그렇게 아침인사는 끝이 났다. 헌데 평소보다 옆자리 말수가 줄어들었다.


"이거 호칭이 어려운데."


그녀가 말했다.


"내가 그랬잖아! 쉽지 않다니까."


"오빠는 좀 이상하고. 그럼 뭐라 그러지."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건 좀 부담스럽지?"


응.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내 이름에 쌤을 붙이는 건 어때? 내 고민의 결과임."


"그것도 이상한데. 별로야"


그렇게 나름의 긴 고민 끝에 호칭은 주사님에 말은 편하게 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주사님 이거 디브레인 예산 배정 어떻게 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사소하고 귀여운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