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나만의루틴
*해당글은 실화를 각색했습니다.
김용은은 오늘 과음을 하기로 했다. 그는 술을 즐기지 않는다. 오히려 술을 싫어한다고 할 정도의 사람이었다. 술은 어디까지나 회식 때나 마시는 성격이었고 혼술이라는 건 악몽에서도 해본 적이 없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런 그가 오늘은 술을 많이 마셔보기로 결심했다. 이는 그의 마지막 남은 동기 영훈의 송별식이었기 때문이다. 뭐 마지막이라고는 해도 3명이 이곳에 발령을 받았으니 동기 1명은 2년전에 떠났고 이제 근 3년만에 영훈마저 이곳을 떠나게 - 빠져나가게 - 탈출하게- 프로 소설가라면 분명 중립적이고 좋은 표현을 썼겠지만 여기선 독자님들이 마음에 드는 표현을 하나 골라잡으시면 될 것이다.
여튼 영훈을 떠나보내는 용은의 마음은 그의 단순한 정신구조로는 꽤나 이레적으로 복잡한 마음이었으니 이는 슬픔이라기보다도 귀찮음에 가까웠고 헤어지기 싫은 마음은 있지만 그렇다고 또 헤어진다고 큰일이 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고 또 없으면 없는 대로 그러려니 하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그런 마음이었다,
영훈은 용은과 함께 지낼 때도 혼술을 하곤 했다. 용은은 이걸 이해할 수 없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형 결국 농구는 못하고 가네."
용은이 영훈에게 말했다. 한여름 영훈은 용은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농구를 해보자고 했던 적이 있었다. 언제는 더워서 언제는 비가 와서 언제는 일정이 있어서 미루다 미루다 가을에 시작이자 지금까지 이르렀다.
“그러게. 용은아.”
그러고 보면 영훈과 용은은 크게 어울려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용은의 마음이 괜스레 싱숭생숭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어있다.
평일 퇴근시간 비슷한 나이대의 동료들이 모였다. 물론 여기서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건 용은의 입장이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봐야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으니 대강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일련의 무리들은 고깃집으로 향했다. 힘든 하루를 보낸 사람들이라 모두들 술을 찾았다. 각자 말들이 오고 간다. 헤어짐의 분위기. 그 분위기에 취해 용은은 자신의 주량을 넘어가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형 혼술 하는 건 그만해야 해. 그거 진짜 안 좋아.”
용은이 술에 취해서 영훈에게 말했다. 진심 어린 조언인지 아니면 현대 사회인의 일상적인 모순인지는 생각하는 사람의 몫일 것이다. 한잔 두 잔 들이켜면서 용은은 자기가 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 버터풀 야도란 피존투 또가스 우리 모두 생긴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1)
용은은 포켓몬 만화 엔딩곡을 외우고 있었다.
“또 술에 취했는지 시험해 보는 거야?”
영훈이 말했다. 이건 용은의 습관이었다. 진짜로 취하면 이것마저도 외우지 못한다. 그 좋아하는 포켓몬 마저 잊는다니 술은 참으로 무서운 녀석임에 분명했다.
“취하지 않았네.”
이런 날은 쉽게 취할 수 없다고 용은은 생각했다. 그런 용은의 모습을 보고 다들 용은 답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이내 이리저리 이야기가 복잡하게 이어졌다. 다른 근무지의 상황은 어떻고 업무분장은 어떻게 되고, 그러는 동안 용은은 포켓몬 생각을 잠시 하다가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아니 따라가 본다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형 다른 곳 가서 포켓몬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줘라.”
용은이 대뜸 이상한 말을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영훈은 공무원 교육 때 포켓몬 좋아하는 조원을 만나서 용은에게 소개를 해 준 적이 있었다.
용은의 말에 다들 웃었다. 웃는 걸 보면 용은은 뿌듯함을 느끼며 다시 포켓몬 만화 주제가를 떠올린다.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 버터풀...... 다음이 뭐더라.’
용은에게 오늘은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었지만 딱 하나의 계획은 이룬 모양이다. 그건 과음을 하는 것이었다. 이는 용은만의 계획은 아니었고 이 테이블에 앉아있는 모두의 계획이었다.
“버터풀까지는 생각나는 거 보니 집에 나는 잘 걸어갈 수 있겠어.”
스스로도 다짐인지 웃긴 말인지 모를 말을 하며 용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1)모두 포켓몬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