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소개팅

글쓰기 2주차글 주제 나다움

by 드래곤실버

"나다움."


주제를 듣고 나는 몇 달 전 소개팅이 떠올랐다. 올해(2025년) 4월달에 나는 충청남도 천안에서 보훈부와 지자체가 함께 추진한 단체 소개팅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그때는 비가 오는 토요일이었다. 만약 소설이었다면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보훈부에서 남자 직원 6명, 천안시에서 여자 직원 6명이 참가하고 소개팅에 끝날 때 마음에 드는 사람을 적어서 내고 매칭이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일 소개팅이 끝나자마자 천안쪽 여성분들은 모두 빠르게 사라졌다. 혹시나 저녁이라도 함께 먹고 끝나고 대화가 더 있을까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나는 결과가 당연히 좋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칭되는 커플이 아예 없는 것 아닐까?


이건 보훈부의 명예가 걱정될 상황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 내 걱정이 먼저겠지만.


그렇게 비내리는 4월의 토요일 오후 나는 흙탕물에 뒹군 패잔병처럼(아니 우리들은 패잔병과 다름이 없었다.) 천안에서 퇴각했다. 그리고 홍성에 도착해서 우울한 휴일을 보냈다. 희망이라고는 없는 상태로 월요일이 되었고 뜻밖에 일이 생겼다.


내가 매칭이 되었던 것이다.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다. 총 두 커플이 매칭이 되었고 내가 그중 하나였던 것이다. 여러 사정이 있어서 곧바로 그녀와 만나지는 못하고 약 한 달 뒤에 천안에서 다시 한번 만나게 되었다.


내가 그녀와 다시 만난 건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었던 게 컸다. 소개팅 자리에서 말도 유창하게 하지 못했고 중간 중간 어색한 침묵도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말들만 떠들어댔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상대가 누가 누군지도 어지러워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가 나를 1순위로 쓴 이유가 궁금했다. 그렇게 천안에서 다시 그녀를 만나고 우리는 식사를 하고 카페에 갔다. 근황 이야기와 당시 소개팅이야기를 하다가 서로를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하게 되었다.


"그때 나온 남자분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아서 적어 냈어요. 그때 책 이야기 하고 도서관 자주 가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그 6명 중에서 제일 나아서 쓴 거에요."


그녀의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명쾌했다.


내가 소개팅에 나가기 전 많은 사람들이 조언을 해주었다. 말을 많이 듣고 대화주제는 MBTI나 '나는 솔로' 혹은 최신영화 얘기를 하는 게 좋고. 취미로는 운동을 얘기하라던가.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이었다. 소개팅에 시작하기 전에는 나도 그런 정상적인 이야기들을 하면서 대화를 잘 이끌어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개팅 자리 실전에 들어서고 나니 나는 어느새 셜록홈즈와 재밌게 읽은 소설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6번 넘게 후회를 했다.(여성분이 총 6분 나왔으니까.)


"셜록홈즈는 요즘 다시 읽어보면 불합리한 측면이 많아요. 추리소설로는 아가사 크러스티가 더 나은 거 같아요. 그런데 역시 분위기가 대단하죠. 홈즈는 그 캐릭터성이 정말 대단해요."


대강 이런 얘기를 해버리고 말았다. 내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는(것처럼 외관상은 그렇게 보이는)여성분도 있었고 아예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여성분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이 기억에 남아서 나를 선택해 주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다른 분 들하고는 달라서 기억에 남았나 봐요."


확실히 남자 중에서는 나말고는 책 얘기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기억에 남았나 보다. 다른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이 충고해 준 대로 그저 그런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 아는 그런 보편적인 이야기들 말이다.


나는 나다움이라는 건 나 자신이 좋아하는 걸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면 재미없는 이야기만 하기 십상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선 솔직하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 혹은 비난 혹은 뒤에서 하는 이야기들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 솔직해지지 못할 때가 있다. 나는 그때 나다움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를 하고 만화 얘기를 하고 포켓몬 이야기를 한다. 나는 자신에게 솔직하게 살고 싶다. 그게 나 다움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보통의 교훈적인 수필이라면 그렇게 만난 상대와 지금 잘 사귀고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좋은 결말이 냈을 것이다. 분명 나다운 모습을 상대에게 보여주었고 상대는 그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렇게 얘기가 진행되는 게 자연스러우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달랐다. 뭐 쉽게 말해서 잘 이어지지 못했다. 이렇게 예상 밖에 결말로 끝을 맺는 것까지 참 나답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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