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혼자 있는 시간
인싸
명사 ‘인사이더’라는 뜻으로,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 ‘인사이더’를 세게 발음하면서 다소 변형한 형태로 표기한 것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나는 9월부터 10월 동안 바쁜 주말을 보냈다. 9월에는 일주일 일본 여행, 추석이 끝나고는 제주도에서 포켓몬 마라톤, 그다음 주에는 글램핑까지 과연 이것이 인싸의 삶이란 거구나. 나는 스스로 생각했다. 게다가 중간중간 토요일에는 글쓰기 모임까지(여행 일정으로 10월에는 참가가 저조했지만)
이렇게까지 밝고 활동적인 생활을 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되도록 이면 이끼나 곰팡이처럼 그늘에서 움직이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주말에는 자주 가는 카페에 가는 것 외에는 움직이기 싫고(처음 가는 카페는 익숙하지 않아서 싫다.). 집안에만 있고 싶다. 좋아하는 포켓몬게임이나 신작 애니나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 낭비를 하면서 사는 게 나란 인간이었을 텐데.
나는 너무 많이 바뀐 것 같다. 심지어 글램핑을 갔던 10월은 포켓몬 신작 게임이 발매되었다. 게임이 발매된 주말에 나는 글램핑을 갔다. 2020년도 김용은이라면 절대 상상도 못 할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 신작 포켓몬 게임을 내버려 두고 그- 불편하고 얻을 것도 없는 글램핑을 간다고? 누가 강제로 시킨 게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을 거다. 이건 김용은에게는 타락이라면 타락이고 회개라고 하면 회개일 텐데. 내가 지금 회계업무를 맡고 있으니 회개에 더 가깝지 않을까 혼자 생각한다.
포켓몬 칼로스 지방의 미르시티를 여행하는 것은 너무 즐겁고 행복한 일이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글램핑을 끝으로 다시 관사로 돌아온 나는 계속 쓰러져있었다. 너무 피곤했다.
'인싸 놈들은 이런 늘 이런 주말을 보내는 건가. 새로운 신작 포켓몬 게임을 두고 잠을 자야 하다니.'
그런데 나는 마라톤도 가고 이제 자차가 있어서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고 친구들이랑 글램핑도 가고 스스로 인싸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접근해본 적은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인싸의 삶을 나름 잘 견디고 있는 것 같다. 회사사람들하고 저녁도 잘 먹고 술도 잘 마시고 가끔 대화 도중 관련이 적은 포켓몬 얘기를 길게 쏟아내서 분위기를 가볍게 작살내는 것만 빼면 사회적 상호작용도 순탄히 이루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인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사랑하는 포켓몬을 앞에 두고 지금 쓰러져 있는 거 아닌가?
할 말이 없다.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잤다. 되도록 휴일에는 6km가량 달리기 연습을 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포켓몬 게임을 하고 싶었는데. 예전 같으면 내 시간을 뺏겼다는 생각을 해서 기분 나빠했을 것이다. 한창때 나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싫어했던 적이 있다. 그때에 비하면 정말 많이 변했다.
그렇게 피곤한 주말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진다. 새로 나온 포켓몬 게임을 하고,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고, 애니를 보고, 파우스트를 읽고 브런치에 연재할 글을 적는다.
오래간만에 고등학교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예전의 나라면 데면데면 잘 지낸다고 답하고 끝났겠지만 이번에는 만날 약속을 잡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즐겁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전에 나라면 글쓰기 모임, 독서모임도 안 했을 거고
예전에 나라면 제주도에 포켓몬 마라톤을 하려 가지 않았을 거고
예전에 나라면 브런치에 글 연재도 안 했을 거고
예전에 나라면 친구가 만나자고 하면 귀찮다고 했을 거고
예전에 나라면 동료들과 놀러 가는 것도 같이 저녁을 먹는 것도 다 거절했을 거다.
나에겐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했었다. 사람들 하고 만나고 소통하는 일은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인싸의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나는 또 인싸처럼 살려고 살려고 한다. 내년에는 어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까? 그리고 다음번 모임은 어떻게 할까? 등등. 나는 인싸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