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가 안 돼요.

by 드래곤실버

밤 11시 50분.


"저기 학생 여기 세탁기가 안되는데."


코인 세탁기가 설치된 편의점은 쉽게 잠들지 못하나 보다. 카운터에서 멀리 떨어진 코인 세탁기와 건조기 구역에서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입을 다물고 코인세탁기 앞으로 갔다.


"아니 내가 동전을 넣었는데 얘가 반응을 안 하네?"


'이 밤중에 왜 세탁을 하시는 건가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여자는 헝클어진 머리에 펑퍼짐한 복장이었다.


"잠시만요. 제가 살펴볼게요."


나는 이 세탁기들과 건조기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른다. 그냥 살펴보는 척하고 지금 해결할 수 없으니 낮에 연락을 드리겠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 이게 좀 잘 안되네"

나는 동전 투입구와 그 위쪽 부분을 건드려본다. 필사적으로 연기를 한다.


"죄송합니다. 저는 고치기 어려울 거 같고요. 낮에 세탁기 서비스팀이 따로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 제가 전달할게요."


"아니. 그럼 지금 내 빨래는 어떻게 하고?"


여자가 갈라진 목소리로 날카롭게 말했다.


"그건. 선생님 세탁물은 제가 일단 다른 세탁기에 옮겨드리고. 빨래를 할 수 있도록 할게요. "


"아니 아니. 지금 내가 낸 돈은 어떡하고?"


지금 뭐 어쩌란 말인가. 이 밤중에.


"알겠습니다. 우선 저희 사장님에게 연락해 볼게요."


이제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 연락을 한다고 해도 받을 리가 없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해보지만 결과는 역시나이다.


"어쩔 거예요. 지금."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지도 모른 채 나는 여자에게 일단 죄송하다고 말했다.


"5000원 넣으셨죠? 제가 그 돈은 드릴 테니까 다른 세탁기에서 세탁하세요."


시급의 절반 정도가 그냥 사라지게 되었지만 밤늦게 말싸움을 하기 싫었다. 그것도 위험해 보이는 사람이랑.


"아니. 그러면 다른 세탁기는 잘되는지 어떻게 아냐고? 지금."


이제 반말에 시작되었다.


"이 세탁기만 안 되는 건지 여기 다른 거도 안 되는 건지 모르는 거잖아. 그거 책임질 수 있어?"


"아니. 제가 왜 그걸 책임져요?"


"그럼 책임질 사람을 데려 오던가! 지금 이걸 어쩔 거야?"


"그래서 다른 세탁기로 옮기면 된다고 말씀드리잖아요."


"아니 나는 이 세탁기에 세탁물을 넣어 놓았고. 이 세탁기가 왜 고장이 난 거야?"


왜 하필 내가 야간일 때 이런 아줌마가 온 걸까. 나는 내 운이 원망스럽다.


"어쩔 거야 그래서?"


"일단 빨래를 꺼내서 다른 세탁기에 넣죠. 세탁 비용은 제가 환불해 드릴게요."


"나는 그게 싫다니까?"


그럼 어쩌란 말이냐고.


"당장 고쳐봐요. 이 세탁기."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이상한 사람이다. 이 밤에 빨래를 하는 것부터 고집을 부리는 것까지 예사는 아니다.


"지금 코인세탁기 회사에 연락해 볼게요."


-지금은 업무시간이 끝났으니 ~ -


"전화를 안 받네요. 9시는 넘어야 연락이 될 거 같은데요."


"나는 지금 세탁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는 돌고 돈다. 오늘이 끝나고 내일이 올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학생 지금 어쩔 거야."


"아니.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아침은 돼야 다들 연락이 된다고요."


"그럼 세탁기가 고장 난 게 맞다는 거야? 지금?"


"그런 말은 아닌데. 지금 밤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봐요. 이제 12시네. 지금 일하고 있는 데는 경찰이나 경비하는데 밖에 없을 거라고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카운터로 향했다. 뭐라고 하든 대답할 것도 없고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예상외로 그 이상한 여자는 세탁기에서 자신의 빨래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카운터로 다가왔다.


"내일 오후에는 저 세탁기 고쳐놔."


지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인가.


"왜요? 내일 오셔서 확인이라도 하시게요?"


아줌마는 내 말에 대꾸도 없이 자신의 빨래 바구니를 들고나갔다. 이제 좀 쉴 수 있겠다. 나머지 시간 동안 온 손님은 5명 정말 아무런 탈도 일도 없었다.


"누나 고생했지? 밤에 별일 없었죠?"


내 다음 시간 알바가 도착했다. 나는 세탁기와 이상한 아줌마에 대해서 설명했다. 내 말을 들으며 그는 세탁기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웃겨 지금 낮에 또 찾아온다고 했다니까. 조심해 또 올지도 몰라."


"이 세탁기 가지고 그랬다는 거죠? 흠. 뭔가 좀 이상한데요."


"뭐가?"

"이건 빨래 냄새라기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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